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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밀라노 칙령(라틴어 : Edictum Mediolanense, 그리스어: Διάταγμα τῶν Μεδιολάνων , Diatagma tōn Mediolanōn )은 서기 313년, 로마 제국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정치적 합의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도시 메디올라눔에서 회동하여 이루어졌다. 이 조치는 단순한 종교적 선언이라기보다는, 이전 갈레리우스 황제가 세르디카에서 공포한 종교 관용령을 확장하고, 기독교인에 대한 제도적 박해를 종식시키기 위한 정치적 협약이었다.

밀라노 칙령은 기독교에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였으며, 신자들이 신앙을 이유로 형벌을 받거나 종교 활동을 제한받지 않도록 규정하였다. 다만, 이 칙령은 기독교를 제국의 공식 국교로 지정하지는 않았으며, 국교화는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을 통해 이루어졌다. 밀라노 칙령은 결과적으로 기독교가 제국 사회 속에서 제도적 보호를 받는 종교로 자리 잡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제국 내 종교 정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칙령의 원문은 초대 교회사 저술가인 락탄티우스의 『박해자들의 죽음』과,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오스가 쓴 『교회사』에 전해지나, 두 문헌 간에는 서술 방식과 내용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락탄티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해당 문서는 동방 제국의 각 지방 총독에게 보내진 리키니우스의 서신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공식적인 칙령의 형식을 띠지 않는다. 이 서신은 리키니우스가 막시미누스를 물리치고 동방을 장악한 직후, 니코메디아에서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전해진 ‘밀라노 칙령’이라는 명칭이나 형식이 실제 존재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줄어들었으며,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은 후대 교회사가들에 의해 형성된 전승에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라노 칙령이라는 용어는 여전히 서기 4세기 초 로마 제국이 기독교에 대해 근본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로 전환한 역사적 전기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