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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라남도자치시
파일:여수시 CI.svg
여수시
麗水市
Yeosu City
시청 소재지
시청로 1 (학동)
광역자치단체
하위 행정구역
1 6 20
면적
512.26㎢
인구
271,696명[1]
인구밀도
531.71명/㎢
시장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정기명 (초선)
시의회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2석
4석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6석
국회의원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주철현 (초선)[2]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김회재 (초선)[3]
상징
시화
시목
시조
지역번호
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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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상징
2. 역사3. 지리4. 인구5. 교통6. 경제
6.1. 산업6.2. 상권6.3. 금융
7. 관광8. 교육
8.1. 초/중/고등학교8.2. 대학교
9. 정치10. 군사11. 하위 행정구역12. 사건 사고13. 여담14. 출신 인물
14.1. 여수의 가공인물
15. 국내자매도시
15.1. 국외자매도시

1. 개요[편집]

전라남도.

전라남도 2위인 272,826명의 인구와 전남 GDP의 50% 가량을 만들어내며 전라남도 수출액의 74.4%를 담당하고 1,316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등, 전남의 핵심적인 도시다. 한려해상,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두 국립공원 모두 여수시 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중 한려해상의 가 여수시를 의미한다.[6]

여수시는 여수엑스포 직후인 2010년대부터 도시의 모습이나 위상이 급격하게 변화했다. 별 볼일없는 시골이었던 돌산이 최고급 펜션들로 가득차고 헤엄쳐도 갈 거리지만 다리가 없던 경도엔 2조원짜리 리조트가 들어왔으며 구도심이던 대교동 인근이 관광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지구의 변화는 그 축을 같이한다. 따라서 여수시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2010년대를 기준으로 구분해서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1.1. 상징[편집]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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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지명의 유래[편집]

여수라는 명칭은 고려 태조 23년(940) 행정 구역 개편시 해읍현을 여수현으로 변경하면서 사용하게 됐으며, '여수(麗水)'는 3면이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고려 태조 왕건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순행할 때, “이 지역은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다운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묻자 신하들이 “물이 좋아서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습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명을 여수(麗水)라 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여수가 물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요새도 '물 좋다'라는 말이 '(여자들의) 미모가 좋다'는 뜻으로 통하는 속어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근본이 있는 발언이라 말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예쁜 것으로 말하는 도시는 주로 순천시. 여수는 돈으로 대표된다.

2.2. 임진왜란[편집]

1592년(선조 25) 4월 14일을 기하여 일본군의 대군이 침략을 시작했다. 임진왜란 초기에 경상도좌수영·우수영의 수군도 일본군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이미 여수 지방에서 거북선을 건조하여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이순신은 본영과 휘하 각 진의 전선을 동원해 경상도 남해안으로 진출했다. 이순신은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했다. 옥포·합포·당항포·율포·노량·한산도 등에서 왜의 수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때 전라남도 지방 각처의 수령과 만호가 함께 출정했다.

낙안군수 신호(申浩), 흥양현감 배흥립(裵興立),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 보성군수 김득광(金得光), 녹도만호 정운(鄭運), 방답진첨사 이순신(李純信), 사도첨사 김완(金浣), 여도권관 김인영(金仁英) 등이 이순신과 함께 공을 세웠다. 이순신의 연전연승의 전공에는 전라도 사람들이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이순신의 승리로 인해 임진왜란 초기 국면에서 전라도가 보전될 수 있었다. 이에 전라도에서는 왜적을 이 땅에서 격퇴하고자 하는 수많은 의병이 일어났다. 이러한 전라도 의병의 활약에 조선군이 전열을 정비하고 또한 명나라 군대가 원조하면서 전세는 조선에 유리하게 전환됐다.

1593년(선조 26) 8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고 여수에 통제사영을 설치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여수가 지리상으로 외딴 곳이므로 왜와 해전을 벌이는 데는 지세가 불리하다는 이유로 본영은 그대로 남겨둔 채 한산도로 본진을 옮겨갔다. 한산도는 선박을 감추어 놓기가 좋으며 또한 왜의 수군이 남해안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1597년(선조 30) 1월 명나라와의 화의 교섭이 결렬되자 일본의 20만 군대가 다시 조선을 침범하면서 정유재란이 발발했다. 이 해 2월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투옥되었다. 원균이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왜의 수군과 대적했으나 대패했다. 왜군은 섬진강을 따라 구례 운봉을 지나 전라도 내륙까지 침범하였다.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됐다. 장흥의 회령, 포진 등 남해안 일대에 흩어져 있던 전선과 병사를 모아 해남의 어란포(於蘭浦)와 진도의 명량(鳴梁)에서 왜군을 대파했다.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여수 지역에서는 정철(1544~1595)·정린(1556~1595)·정춘(1555~1594)의 활동이 주목된다. 1592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들은 재산을 털어 이순신의 휘하로 정운(鄭運)·송희립(宋希立) 등과 함께 당항포로 진격하는 등 많은 전장에 참여했다. 이들은 여수 지역에 기반을 둔 창원정씨 사람들로서 후에 가곡사에 배향되었다. 지금은 여수시 웅천동에 위치한 오충사에 배향되어 있다.

이들과 함께 여수 지역에서는 흥국사를 중심으로 한 의승수군(義僧水軍)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직 관료, 무과 출신, 유생, 승려 등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봉기하여 전라도 수군과 결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라좌수영 산하의 의승수군은 상설군으로 편제되어 흥국사에 주둔을 하게 된다. 승대장의 휘하의 인원을 사찰 내의 각 전각과 산내의 암자에 편성시키고 있었는데, 지금의 여수시 한산사와 석천사 등지에도 파견되어 있었다.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에 진남관 동편에 있던 승청(僧廳)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승군의 역할을 짐작해 볼 수 있다.

2.3. 여수·순천 10.19 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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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김용옥이 2018년 10월 30일을 맞아 이를 주제로 강연하러 여수에 왔다.

2.4. '통합' 여수시의 출범[편집]

1949년 8월 14일 여수읍이 여수부로 승격하면서 여수군이 여수시여천군으로 분리되었다. 1966년부터 여천군 삼일면과 쌍봉면에 여천공업단지가 조성되었고 1970년대 들어 우리나라 유수의 석유화학공업단지로 발전하면서 이 지역의 인구가 크게 늘고 주거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이에 따라 1976년 이 지역이 여천군에서 분리되어 전라남도 여천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80년 12월 1일에는 돌산대교가 착공되어 1984년에 준공되었다. 1986년에 여천출장소는 여천시로 승격되었다. 원래의 여수군이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라고 하는 2시 1군의 행정 체계가 된 것이다. 1996년 「도농 복합 형태의 시 설치에 따른 행정 특례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정부에서 여수시의 통합을 유도했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여수 시민들의 자발적인 발의로 다시 통합이 논의되었고, 1998년 4월 1일을 기하여 오늘의 통합 여수시로 다시 출범했다.

한편 1989년 여수수산전문대학이 여수수산대학으로, 1993년 여수수산대학교로, 다시 1998년에는 여수대학교(개교기념일: 5월 1일)로 승격하였다가, 2006년 전남대학교(개교기념일: 6월 9일)와 통합되어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가 되었다.

통합 여수시의 출범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제의 발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이다. 중앙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시행에 의한 것이 아닌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하여 통합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9] 여수인은 그간의 역사 경험에서 오는 자각과 미래를 향한 실천적 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러한 선택을 하였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여수 지방은 새로운 천년을 향한 역사, 문화, 경제 역량을 결집할 수 있게 되어 남중해안권의 중심도시로 앞길을 나가고 있는 만큼 그리하여 2012 여수 엑스포를 유치하기도 했다.

3. 지리[편집]

북쪽으로 순천시, 광양시와 접해있다.

3.1. 자연지리[편집]

전반적으로 리아스식 해안 지형에 따라서 해안지대는 산악지대가 펼쳐지는 반면 내륙에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여수시는 대표적인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철은 서늘하고 겨울철은 온난하며, 강수량도 풍부하여 사계절 생활하기 좋은 지역이다.

겨울엔 여수시 북쪽에 위치한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영향으로 북쪽에 높은 산이 거의 없는데도 (가장 높은 산인 영취산이 510m) 찬바람이 내려오지 못한다. 1월달 평균온도가 부산이랑 맞먹는 1.8°C. 공단이 어지간히 큰 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부산만큼 눈이 안온다. 그래서 서울에서 일상적으로 오는 눈이 폭설로 느껴질 정도다. 심지어 눈이 안 오는 해도 있다. 눈이 오는 해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눈이 5cm만 와도 도시 전체가 마비될 정도. 2005년 말, 폭설이 내려서 여수시내 학교가 휴교령을 내린 적도 있었다. 심지어 시내버스도 멈춘다! 실제로 2012년 겨울에 여수중학교는 5cm 정도의 눈에 강당이 무너졌다. 건축 자체도 눈에 대비되어있지 않았고 이를 통해 여수에 얼마나 눈이 오지 않는지 알수있는 부분. 하지만 몇년에 한번 그런일이 일어날까 말까 하니 제설차량도, 제설함도 없다. 삼가 웅천지구 재개발 등으로 조금이나마 제설함이 설치되었다. 여수에는 비가 내리는데 바로 북쪽의 순천이나 광양에는 눈이 쌓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땅의 모양이 알파벳 Y와 비슷하다.

3.2. 도시구조[편집]

대체로 과거부터 항구가 발달한 도시였으므로 여수항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었으며 구도심을 중심으로 조선소와 금융기관, 관공서와 상가가 집중 밀집되었다. 이 때문에 여수항 일대(여수읍)가 1949년에 일찌감치 여수시로 독립한 반면 여천군의 유일한 읍인 돌산은 육지와 연결되지 못하여 독립된 시가지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여천군 삼일읍/쌍봉면 일대가 국가산단의 배후도시로써 1986년 여천시로 승격되면서 여천시 지역에 시가지가 들어서게 되었고, 삼여 통합 직전에는 여천군 돌산읍 우두리 일원에 택지개발이 진행되어 그 일부가 시가지화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의 도시 구조는 여수시 원도심 중심의 단핵구조를 가진 도시형태의 성격을 띠면서 여천 지역은 여수의 하위생활권역으로 기능했다.

이런 여수지역의 단핵구조는 1990년대부터 어느정도 깨진다. 특히 여수시 문수동과 여서동 지구를 개발하면서 시의 일부 기능이 이동을 하였고, 다시 1998년 삼려(여수시/여천시/여천군)가 통합하면서 시청을 비롯한 여수시의 일부 기능이 여천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후에도 토지용도의 상업용지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아직도 금융기관과 관공서 등 각종 상권이 밀집한 중심상권을 유지해 왔으나, 현재는 원도심의 공동화가 심각해지고있다. 학생들 대부분이 원도심 대신 여천에 있는 '흥국상가'를 주로 이용하고 상권도 많이 이동하였다.

한편 여서-문수지구와 바로 연계되는 웅천지구의 건설이 완료될 경우에 여수 지역내의 최대 상권지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웅천지구는 계획 인구 28,000명에 마리나항을 갖추고 있는 택지개발사업이다. 당초 순천시 신대지구 개발사업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계획인구(30,000명)를 가지고 추진되어 분양의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사업 완료 시에는 죽림지구 ~ 기존 여천시 지구 ~ 웅천지구 ~ 여서-문수지구, 신월-국동지구 ~ 여수도심지구 ~ 우두 택지지구까지 여수 지역의 시가지가 모두 이어지게 되며 여서-문수 + 웅천지구가 확고한 상업적 중심지구로서 여수 지역내에서 우위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웅천지구에 한화건설에서 29층 규모의 주상복합 단지인 ‘디 아일랜드’ 건설이 완료되었다. 웅천지구는 이제 디 아일랜드, 자이 더 스위트, 골드클래스 테라스힐, 등으로 대표되는 신규 아파트들, 그리고 인근의 기성 부촌인 우림필유, 지웰 3차와 맞물려 여수시 부촌으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하고있다. 전남권 집값의 독보적 1인자로 30평대도 6억 5천 수준에 최대 15-20억원대의 아파트까지 위치해있다.

사람들이 술 먹으러 가는 곳은 대체로 여서동(구 송원백화점 건물 앞)[10], 봉산동(마늘시장)[11], 학동(부영 3차)이 있다. 2019년 현재는 관광객들은 해양공원 일원을 많이 찾으며, 산단근로자들은 무선 여천동 선원동 경계선을 많이 이용하며, (구)여수권 시민은 중앙동, 여서동 일원을 이용하며, (구)여천권 시민은 부영 3단지 일원을 많이 이용한다. 10대 중고등학생들은 아주 외진 곳에 사는 게 아닌 이상, 중앙동 시내에서 노는 경향이 있다. 그곳에 롯데리아, 대궁게임랜드, 화장품가게, 옷가게, 카페 등이 있다. 사실 이쪽에 중고등학교가 많다. 여수중과 여수고등학교, 여수여중과 여수여자고등학교, 종고중과 여수공업고등학교가 있다.

3.2.1. 통합청사 문제 - 구 여수시와 여천시 간의 반목[편집]

구 여수시와 여천시, 여천군이 통합하며 하나의 도시가 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도시구조상 여수와 여천이 갈린다.[12] 사는 곳에 따라서 여수 사람과 여천 사람으로 나뉘고 터미널, 등을 따로 사용하고 있으며, 떡밥이 있을때마다 이권 문제로 반목하기도 한다. 통합 후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무원들은 구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공무원 출신별로 파벌을 지을 정도다. 심지어 같은 시이며, 같은 교육지원청이 관할하는 한 학군임에도 정작 중/고등학교는 여수, 여천을 나누어 돌린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중에 하나가 통합청사 문제인데, 이는 1998년 3려 통합 당시로부터 거슬러가는 일이다. 당시 여수시에 비해 여천시, 여천군 지역은 통합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았으며, 특히 이름의 측면에서 그랬다. 이름의 정통성이야 당연히 여수시가 가지고 있었고 인구 역시 여수시가 여천시, 여천군을 합친 것보다 5만명이나 더 많은 상황이었다. 하지 여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행정구역은 2개나 있었기 때문. 이 때문에 통합시의 명칭을 여수시로 하는 대신 시청사 여천지역 배치, 의원 정족수 동일구성, 예산 30% 옛 여천군 배정, 공공기관 여천시 이전 등등을 여수시가 양보하기로 합의하였고 이에 따라 통합시의 1청사는 학동에 구 여천시청으로 결정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인구 7만 8천명의 신생시이던 여천시의 청사는 통합 이후 30만이 넘는 도시가 관장해야 할 모든 기구들이 다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때문에 상당수 기구와 시의회 등은 여서동의 구 여수시청을 2청사 삼아 입주되었고, 돌산읍에 있는 구 여천군청을 3청사로 세계 되었다. 이렇게 청사가 3개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이 미관상으로 보나, 업무 효율적으로 보나 좋을 리 없었으나, IMF 외환위기 등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며 어영부영 세월이 흘렀다. 물론 현재는 1청사로 불리는 구 여천시청에 대부분의 기관이 자리잡았지만...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2004년. 당시 2012 여수 엑스포를 유치 준비 중이던 여수시는 박람회장 부지로 여수신항만과 그 일대를 점찍었고, 이를 위해 2청사로 쓰고 있던 여서동 청사(구 여수시청)[13]와 신항만에 들어가있던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의 청사를 교환하고 해수청 부지를 박람회장에 편입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학동의 1청사는 여수시의 전 기구를 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2청사에 있던 기구들을 각각 조각내어 돌산읍의 3청사 등 곳곳으로 분산배치하도록 하였는데...

3려 통합 이후 여천 쪽으로 발전이 쏠리는 것에 자존심 상해하던 구 여수시 주민들이 반발하게 된다. 정통성과 인구 모두 여수시가 가지고 있었음에도 통합 때문에 그동안 지역발전을 위해서 여천 쪽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도 다 참아왔는데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었다. 해수청 건물은 낡고 신항만 인근 공시지가도 여서동보다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등가교환 원칙에 어긋나고, 시청사=전 시민의 재산인데 김충석 시장 맘대로 처분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며, 건물을 쓰려고 바꾸는 것도 아니고 해수청 인수해서 철거하려고 교환한다는게 말이 되냐는 의견에, 교환조건 맞추려고 신항만 인근 공시지가를 과다하게 높게 책정했다는 점에 등 비판이 빗발쳤다. 나중에 순천시, 광양시 등과 통합하게 되면[14] 여수 지역에 2개 이상의 구청이 생길텐데 구 청사로 활용하려면 남겨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무엇보다 "2청사마저 없어지면 구도심 상권 다 죽게 생겼다. 이놈들아"란 의견이 강했다(...) 한편 구 여천시 주민들 역시 "기회는 이때다" 라며 어서 빨리 여천에 통합시청 설치하라고 들고 일어났다. 주민투표 여론도 높았다.

이렇게 청사 이전이 구 여수시 주민들과 여천시 주민들간 싸움으로 번질려는 와중에 당시 김충석 여수시장은 담화문을 통해 '우리는 여수엑스포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여수엑스포 하려면 해수청 부지가 꼭 필요하다. 어쨌든 3려통합 당시 1청사를 여천시에 둔다는 원칙에는 안 벗어난다.(2,3청사 없다고 안했다)'라고 강변했으며, 무엇보다 '순천, 광양이랑 통합하면 순천 놈들이 우리 여수에 2개 구청 만들어 줄 것 같음?[15] 통합하면 순천만 좋아지고, 여수랑 광양은 개털된다. 해양수산청이 자꾸 광양으로 도주하려고 하고 있고, 해수청 나가면 세관, 검역소 등 관련 기관들 다 빠져 나가기 때문에 이 기회에 크고 아름다운 청사를 하사함으로써 발목을 잡아야 한다' 등등의 논리를 내놓으며 주민들을 설득하려 하였다. 여기에 더해 시장은 행정절차도 마련하지 않은 채로[16] 청사 이전을 먼저 하는 선집행 후절차라는 주민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정을 펼치기에 이른다. 결국 원안대로 2005년 8월에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이 여서동 청사를 양도받아 들어오고, 남은 자리[17]에 여수시의회와 중부민원출장소와 차량등록사업소, 도시미화과만 남게 되었으며, 나머지 기구들은 돌산 청사 및 곳곳으로 분산이전 되었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까지 갔고, 2006년 지방선거로 2010년 지방선거로 시장이 한번 바뀌고 다시 김 시장이 돌아와 엑스포 개최가 확정된 2011년까지 끌어왔으나 법률상 하자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구 여천시 주민들이 원하는 통합청사가 완성된 것은 아니기에 지금도 심심하면 통합청사 떡밥이 터져나오고 있으며, 2014년 현재까지도 여수시 청사는 3개로 나뉘어 있고, 이 문제는 영원한 여수시의 숙제가 되고있다.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중에 하나라면 책임읍면동제의 확대적용 시 여수시에도 적용하는 방법을 건의해봐야 할 것이다. 위에 서술된 대로 외지인들도 위성사진만 보고도 느껴질 정도...

돌산 3청사 부지에 전라남도국제교육원이 들어서게 되면서 3청사에 있던 부서들이 옮길 대체 부지를 놓고 또 논란이 벌어졌다. 일단 후보 지역으로는 여서동 2청사와 현 시청사 부지 등이 있다. 시의회에서 여서동 2청사 부지 안이 부결되는 등 논란이 일어나다가, 결국 문수동의 옛 여명학교 건물을 보수하여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안전진단 결과 여명학교 건물은 D등급 판정을 받아서 대규모 보강공사를 하거나 허물고 재건축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서 일단 구) 여수시 권역의 전남대학교 여수 국동캠퍼스의 건물로 부서를 이전해서 국동임시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수시 측에서는 아예 여천에 있는 1청사 부지에 별관을 지어서 통합 청사를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청사 이전 당시 상황처럼 역시 주변 주민 및 상인들의 반발이 상당한 상태이다.

4. 인구[편집]

파일:여수시 CI.svg
전라남도 여수시 인구추이 (1966~현재)
1966년 258,163명 (여수시 101,851명 + 여천군 156,312명)
1970년 270,380명 (여수시 113,580명 + 여천군 156,800명)
1975년[1973년] 281,767명 (여수시 130,405명 + 여천군 151,362명)
1976년 9월 1일 여천군 삼일면 + 쌍봉면 → 전라남도 여천출장소 분리
1980년 306,806명 (여수시 160,906명 + 여천출장소 44,464명 + 여천군 101,436명)
1985년 312,779명 (여수시 171,874명 + 여천출장소 53,663명 + 여천군 87,242명)
1986년 1월 1일 전라남도 여천출장소여천시로 개편
1990년 305,472명 (여수시 173,135명 + 여천시 63,797명 + 여천군 68,540명)
1995년 329,139명 (여수시 185,551명 + 여천시 77,864명 + 여천군 65,724명)
1998년 4월 1일 여수시+여천시+여천군여수시 통합
2000년 323,913명
2005년 301,389명
2010년 293,488명
2015년 290,168명
2020년 280,242명
2023년 11월 271,949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0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읍면동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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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동 42,479명
쌍봉동 31,981명
소라면 22,064명
여천동 20,104명
문수동 19,721명
여서동 16,938명
돌산읍 12,681명[19]
미평동 10,946명
국동 10,634명
만덕동 10,212명
둔덕동 9,783명
주삼동 7,870명
월호동 7,203명
화양면 6,274명
율촌면 5,967명
광림동 5,680명
대교동 4,909명
동문동 4,343명
중앙동 4,012명
충무동 3,597명
서강동 3,326명
한려동 2,815명
남면 2,717명
삼일동 2,153명
화정면 2,095명[20]
삼산면 2,021명
묘도동 1,134명
2023년 4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4.5만 명, 각 읍면동별 색깔은 각각 舊 여수시, 舊 여천시, 舊 여천군 지역임.

전남 1위 인구를 두고 순천과 엎치락뒤치락하는 관계이다. 2019년 3월 일시적으로 순천에게 1위 자리를 뺏겼다가 다음 달에 재탈환했지만 2020년 7월 다시 순천에게 뒤쳐진 이후 2022년 현재까지도 1위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여수의 인구는 1992년 333,194명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2006년 30만대가 붕괴되었고 2021년에는 28만명 선도 무너졌다.

수산자원감소등 신규산단 조성부진과 기존 석유.화학산업위주에서 벗어날 일자리 다각화 창출부진도 인구감소를 부추졌고 특히 공공기관 이전과 정주여건이 너무나 낡아진 구)여수시권역의 인구감소가 너무 심한것으로 알고 있어 1998년 4월 기준 188,558명에서 2022년 3월말 118,633명으로 7만명 넘게 줄어들었고 구)여천시지역은 웅천택지 개발에도 불구하고 81,040명에서 103,489명으로 늘어나는데 그쳤으며 구)여천군 권역은 소라면 죽림택지와 돌산읍 우두택지 조성에도 불구하고 율촌지역 개발에 대한 너무나 부진한 것 때문에 61,285명에서 54,422명으로 줄어들었으니 구)여수시권역 인구감소가 여수시 전체 인구감소를 견인한 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전국 시군구 인구소멸위험지수 현황(2022년 3월 기준)에서 전남도내 20만명 이상의 도시에서 최초로 (0.482)가 나와 전남 5개시 중 나주 다음으로 두번째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소멸위험 진입에 들어가버려 위기를 느낀 여수시는 가만히 두고보고만 있을 수 없어 만흥, 소제, 엑스포, 웅천, 죽림 등의 주거단지, 여천역세권개발, 묘도, 율촌 등의 산업단지와 화양면 옥적리 한옥농공단지, 경도, 화양 등의 관광단지 등 굵직한 사업들로 반등을 노리고 있다.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에 다니는 학생들더러 주소지를 여수시로 이전할 것을 권하고 있다. 여수 사람들은 예상 외로 전대 여캠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수에 있는 학교임에도 전남대학교라는 이름 때문에 광주의 학생들이 입학하는 비율이 높으니, 여수시는 이 점을 의식하여 광주 시민들의 주소 이전을 노리는 걸로 보인다. 이를테면 2015년 2월 문화사회과학대학의 오리엔테이션을 디오션리조트에서 진행했는데, 여수시청의 직원이 와서 주소지 이전의 혜택을 이야기하며 주소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학기 중에도 학교식당 등에서도 시청 직원들이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신청서를 받기도 한다. 이후 2018년 2학기에 여수시가 다시 한 번 칼을 뽑았다. 1년 동안 6개월씩 나누어 도합 50만원의 지원금을 준다고 한다. 2018년 9월 16일자 글을 읽어보자. 그런데 대학생들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타지에서 온 학생들이 전대 여캠을 졸업하는 순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무척 높으므로 결국 임시방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선거구도 이 추세대로 간다면 21대 총선에서는 인구를 빨아들이고 있는 순천시가 분구되고, 인구가 줄고 있는 여수시가 합구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간신히 유지되었다.[21] 하지만 이대로 인구감소가 계속된다면 22대 총선에서 합구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우려감에 2022년 지방선거에서 여수시장에 출마하는 입지자들마다 율촌지역 택지내지 신도시개발을 통한 지역 인구 늘리기로 적극적인 공론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5. 교통[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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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쪽으로만 땅이 연결돼있는 반도라서 2012년 이전까지는 교통을 순천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2012 여수 엑스포 개최 덕분에 전라선 신호개량 및 고속화사업으로 KTX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여수 - 순천 간 자동차전용도로가 신설되면서 서울, 광주 방향으로의 교통은 단순히 순천 외곽을 거쳐가게 되었으며, 부산, 경남 방향으로는 이순신대교를 통해 더욱 빠르게 갈 수 있게 되면서 교통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2010년대 들어서 여수시의 경제력과 막대한 관광수요 덕에 교통사업을 추진하는 족족 승인이 나고 있다. 여수시에 지어진/지어질 해상 교량은 총 19개로 이미 모두 승인이 떨어져 2024년 내로 착공한다. 고흥-완도군이 서로를 이으려는 6개 연도교 사업이 몇년째 지지부진한 것과 큰 대비를 이룬다.

여수시의 주요 다리들은 다음과 같다.

백리섬섬길 1단계
고흥 - 적금도 - 낭도 - 둔병도 - 조발도 - 화양면을 다리로 잇는다.

백리섬섬길 2단계(20년 착공)
화양면 - 백야도 - 제도 - 개도 - 월호도 - 화태도 - 돌산도를 잇는다.

금오도 연륙교 사업(24년 착공)
월호도 - 대두라도 - 금오도를 잇는다.

돌산대교/거북선대교
돌산에 놓여진 2개의 다리

이순신대교-묘도대교
여수산단과 광양항을 잇는다.


여수 화양면 적금도와 고흥 영남면을 잇는 연륙교인 팔영대교익산지방국토관리청공고 제2016-322호에 의거하여 2016년 12월 27일에 개통되었다. 또한 미래에셋증권이 경도에 투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경도와 신월동을 잇는 다리를 짓겠다는 계획도 있다. 2020년 2월 화양면에서 적금도를 잇는 네 교량이 공식적으로 개통되었다.

여수 관내로 진입하는 고속도로는 없지만, 엑스포로 인해 생긴 자동차전용도로 엑스포대로가 엄청난 직진성을 띄고 순천완주고속도로 동순천 나들목과 직통으로 이어져있어, 굳이 돈을 내고 통과해야 하는 고속도로로 변경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톨게이트만 없으면 고속도로 끝난줄도 모른다. 때 마침, 민선8기에 들어 지역정치권을 중심으로 호남고속도로 여수연장을 전남도에 요청했다.

율촌수생약국 앞 정류장에서는 여수시 시내버스(31~34, 330)와 순천시 시내버스(94~96, 960)를 연결할 수 있다. 참고로 여수에서 순천으로 택시 타고 가면, 4만원이 나온다. 물론 순천에서 여수를 가는 것도 마찬가지. 무궁화호 기차가 가장 싸고 빠르다. 2,600원에다 20분만에 도착하기 때문.

2021년 8월 24일, 전남 여수시와 경남 남해군의 숙원 사업인 '여수∼남해 해저터널'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자 여수시와 지역 정치권이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해저터널은 2027년에 개통될 예정이며, 약 90분 걸리던 교통 시간이 무려 10분으로 단축될 전망이다. 터널은 여수 신덕해수욕장과 가깝다. 여수 - 남해 해저터널 여수시 추진위원회 회장 안규철 外 추진위원회 일동은 여수시내 현수막을 통해 김회재 국회의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서울따릉이, 세종시어울링 등과 같은 공공자전거 서비스인 여수랑을 시에서 운영하고 있다.

6. 경제[편집]

파일:전남지역별GRDP.png
여수시의 경제력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전라남도 그 자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엄청난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전남 최대규모의 수산업, 단일규모 세계 최대크기의 화학 산단, 전국적으로 손에 꼽히는 관광지로서의 급부상까지 전국적으로 도시 규모에 비해 유래없는 총 생산량을 보이고 있다.

2018년 기준 총 생산량이 무려 26조 4,800억원으로 전남의 다른 시들인 광양, 순천, 목포, 나주시의 총생산을 합친 것보다 크다.

6.1. 산업[편집]

전통적으로 돈이 상당히 많은 지역이다. 유명한 옛말로 "여수에서 돈 자랑 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 과거에는 수산업으로 돈을 만졌고 근현대에는 밀수(…), 현대는 석유화학단지를 통해 돈을 만진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인접한 광양시와 더불어 전라남도의 핵심 산업지역이다. 여수와 광양이 전라남도 경제의 생산력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광양만 지역이 전라남도의 마지막 남은 밥줄(...) 2013년에는 여수세무서가 전국 세무서세수입 4위를 기록 하기도 했다.

타지 사람은 보통 수산업을 여수의 주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통합 이전의 여수의 경제에 수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과거 수산업이 융성할 때는 여수 한정으로 "쥐포 팔아 학교 보낸다"라는 농담이 나돌 정도였다. 실제로 여수의 수산물 가공업에 쥐포 제조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사실 쥐포와 연관되었다는 것은 일반적인 통설이고 여수와 돈과 관련된 것은 훨씬 이전 일제강점기부터 나온 말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전남 동부권의 對일본 모항은 여수였기 때문에 해운업이 주변에 비해서 발달했었고 철도 노선 등 사회간접 자본이 충실하게 투자되고 있었다. 익산과 여수를 연결하는 전라선이 개통되고 이 철도가 여수항과 직결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여수의 수산업 인구 규모는 정부의 어획강도 감축사업의 일환으로 현재 계속적으로 어선의 감척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양식업과 수협공판장의 경매 절차의 투명성확보를 바탕으로 하여서 목포와 완도 일대의 활어 위판이 이루어 지고 있다. 정부는 다기능 어항사업의 일환으로 국동항에 다기능 어항이 조성되었다.

농업분야에서 2020년 12월 기준, 경지면적은 101.57㎢ 가운데 논이 38.38㎢, 밭은 63.19㎢이며, 과수원은 약0.6㎢ 경지율은 약 20%다. 소라평야를 비롯한 여러 곳의 평지에서 벼농사가 성하고, 특히 광양만 안의 덕양·화치마을은 광복전에 일군 간척지가 넓고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져서 벼의 생산량이 많은 곳이다. 농가인구는 41,669명(2008년 현재)이다. 그 밖에 주요 농산물은 보리·밀·콩·팥 등이다. 완만하게 경사진 밭에서는 잡곡과 고구마의 생산량이 많다. 수박·오이·고추·참깨·마늘 등의 생산도 많다. 또 참깨·들깨·땅콩 등이 특용작물로 생산된다. 유자·배·복숭아·포도·감·밤·대추·은행·표고버섯 등의 임산물이 재배 생산된다.

농업은 밭작물 위주에서 벗어나 도시근교농업인 화훼와 축산업, 한약재인 택사 등 약용 식물의 재배로 전환되면서 농가 소득의 증대가 꾀해지고 있다. 특히 돌산도에서 대규모로 재배되는 갓은 김치로 담가져서 소위 ‘돌산 갓김치’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축산업으로 1998년 현재 한우 9,437마리, 돼지 30,362마리, 산양 538마리, 사슴 252마리, 개 6,923마리, 칠면조 15마리, 닭 665,087마리, 오리 899마리 등이 사육되고 있으며, 양봉 10,091마리도 행해지고 있다.

도농복합시임에도 불구하고 억대 부농가수는 2010년엔 17농가, 2011년에는 23농가, 2012년에는 21농가로 그쳐있는 것에 여수시 관계자는 “억대 농업인의 수가 타 시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은 드넓은 농지가 부족한 지역 여건 탓”이라며 “강소농을 집중 육성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그러나 현재 여수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시 북쪽 여수 여천에 위치한 여수국가산업단지와 그 안에 있는 GS칼텍스, 롯데케미칼, 삼남석유화학, 남해화학(구 제7비료공장), 여천NCC, DL케미칼, 한화솔루션, LG화학, 금호석유화학 등의 수많은 대기업들이다. 울산광역시의 국가석유산단 다음으로 규모가 큰 곳임에도 타 지역민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석유화학 부문만으로는 동양 최대 규모의 산단이다. 이 석유화학 회사들의 평균연봉은 국내에서도 최정상급으로 꼽히고 생산직군의 경우에도 억대 연봉이 꿈이 아닌 회사들이다. 바다 건너에 있는 포스코에 비해서도 차이가 꽤나 많이 날 정도로 페이가 좋은 회사들이다보니 이쪽 사람들은 돈이 상당히 많다.

일반산단으로는 수산물 가공하는 오천동소재 오천일반산단이 있고 율촌산단인 경우 조성이 마무리 된 1산단과 티스푼 공사중인 2산단, 예정중인 3산단이 있으며 묘도 서쪽해변에 산을 깎아 묘도녹색산단이 조성 중에 있다. 농공단지는 화양면 화동리일원의 화양농공단지와 조성중인 옥적리 한옥특화농공단지가 있다. 그 외로 신월동해변에 한화(구 한국화약) 공장이 있다.

여수시의 흑역사이지만, 한때 여수의 지역경제를 먹여살렸던 산업(?)중 하나로 밀수가 있었다. 여수를 기반으로 한 밀수업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존재해왔고, 특히 일본과의 수교 이후 여수는 부산의 뒤를 잇는 밀수 주력항이었다. 주로 일본에서 상품들을 밀수입하여 여수를 통해 국내에 유통시켰던 것. 1970년대까지 여수의 밀수 수준은 상상을 초월했고, 당시엔 여수 인구의 절반이 밀수로 먹고산다는 헛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급기야 1975년 8월에는 밀수를 단속하던 세관원이 밀수 혐의자에게 살해당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수 등지에 대한 대대적인 밀수 단속이 이루어져 밀수 조직들이 대부분 적발되었으며, 이후 여수시에서 밀수업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2000년대 이후에는 관광 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결정적인 계기가 2012년 2012 여수 엑스포로, 행사 자체는 대박을 쳤다고 보기 힘들지만 여수시의 인지도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엑스포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가 대성공하면서 관광 명소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자연환경과 입지, 경관 등이 우수한 것을 바탕으로 외지인의 부동산 투자 또한 증가하였다. 여수 엑스포 유치 확정 전후로 더욱 늘어났는데 특히 유력 대기업 총수들의 개인적인 부동산 투자가 잇달았다. 통일그룹문선명의 경우는 개인적인 투자는 물론 회사 차원에서도 화양면에 복합관광단지 조성, 소호동에 디오션리조트(구 파라오션 워터파크) 건설을 위해 많은 규모의 토지를 매입하기도 했다. 특히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소라면 궁항마을 여자만에,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GS그룹 일가[22]는 율촌 산업단지 부근에 개인적인 목적으로 섬이나 토지를 사들여 화제가 되었다.

6.2. 상권[편집]

여수시의 상권은 각각 구 여천과 구 여수가 다르다. 옛 여천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주로 롯데마트 여천점을 가며, 옛 여수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주로 이마트 여수점을 간다. 다만, 여수시 율촌면은 여수보단 순천이 가깝기 때문에 상권 구분에서 주로 순천시 상권으로 구별되는 편이다.

구도심인 중앙동-교동 지역이 가장 큰 상권 지역이며 그 다음으로 신도심인 여서동 지역과 쌍봉동 지역이 뒤따르고 있다. 과거에는 상권이 구도심 1극 체제로 구성되었으나 여서동-문수동이 개발되면서 상권이 많이 옮겨진 상태이며 특히 유흥 업소들의 경우엔 아예 여서동 지역이 주축으로 자리 잡은 편. 그래도 일반적인 쇼핑의 경우엔 구도심 지역이 더욱 우월하다. 2010년대 이후에는 여서동 지역도 핫플레이스의 위치를 신기동 부영3단지 4거리 지역으로 많이 빼앗긴 편. 그 외에 '여수 밤바다'가 뜨면서 종포해양공원과 웅천해변공원 인근의 상권도 점차 성장하고 있다.

여서동의 술집은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담합 후 가격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4,500원이었던 맥주병이 5,000으로, 4,000원이었던 소주병이 4,500원으로 오른다. 안주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봉산동, 부영3차, 웅천지구 등도 이와 같이 담합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전통시장으로는 쌍봉동의 진남시장과 도깨비시장, 서교동의 서시장과 교동의 여수수산시장 등이 있다. 모두 상설시장이지만 가장 규모가 큰 서시장은 5일장의 성격을 가진 상설시장이다. 그러니까 매일 장이 열리되 5일에 한번씩 더 크게 장이 열리는 식.

구도심 지역에 단관 극장이 몇개 있었으나 90년대 후반에 모두 폐업하고 일반 상가로 바뀌었다. 특이한게 오래된 단관이긴 했지만 관객석 규모 자체는 상당히 대형이었다. 쌍봉동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1개 있었으나 관 수만 멀티플렉스이지 각 규모는 일반 영화관의 절반 수준이라 수요가 줄다가 결국 망했고 건물은 일반 상가로 전환. 또한 웅천 지구에 CGV 여수웅천이 2015년 2월 11일에 개관했다. 한편 여서동에도 롯데시네마 극장이 있었으나 2016년 4월부로 여서동 롯데시네마가 폐관되었고 여수식자재마트가 자리잡았다. 웅천택지개발지구 CGV 옆에 메가박스 여수웅천이 2017년 12월 20일에 개관하였다. 이 웅천메가박스는 작정이라도 한 듯 CGV건물을 아예 가려버릴 정도의 큰 규모로 많은 관객을 확보하는 중이다. 또한 기본적인 편의시설 정도만 들어선 다른 극장과는 달리 이 웅천 메가박스는 올리브영, 달콤커피, 메가팻 등의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복합상업시설로 발전할 준비가 된 상태이다.

2018년 7월 12일, 여수 중앙쇼핑 건물 2층에 꿈뜨락몰(청년몰)을 개장해서 초반에는 큰 관심을 모았지만, 다른 지역의 청년몰들과 마찬가지로 얼마 안 되어 잊히기 시작했다. 결국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솔루션을 받게 되었다.

대형 할인점은 세 곳이 있다. 롯데마트 여수점(국동, 2006년 개장), 롯데마트 여천점(무선로, 2005년 개장), 이마트 여수점(오림동, 2002년 개장)이다. 롯데마트 국동점은 전라도에서 가장 매장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는 비효율적인 곳에 입점해서 자동차가 있지 않다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또한 매출이 의무 발주량에 비해 낮아 물건에 할인 표시를 붙이는 경향이 많다. 반면 이마트와 롯데마트 여천점은 비교적 장사가 잘 되어, 할인 태그를 볼 일이 없다. 이마트는 직원들을 향한 복지 및 대우가 압도적이게 뛰어나서, 롯데마트의 행복사원(소위 여사님들)들이 이마트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반대는 거의 없다. 여수에 들어오려던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은 여수시 소상공인들의 반대로 들어오지를 못했다. 들어왔다면 전남 최초의 창고형 매장이 되었을 것이다.[23] 하지만 몇 년도 안가 엎어졌다.[24]

2021년을 맞아 롯데마트 여수점롯데몰로 리뉴얼한다는 소식을 알렸으며, 5월 5일에 롯데몰 여수점으로 정식 개장했다. 참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20년 여수를 방문하여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서 운영하는 벨메르 호텔과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 등을 방문했는데, 롯데케미칼 직원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한 직원이 여수에는 쇼핑할만한 곳이 없다고 건의하자, 신동빈 회장의 지시로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가 최초로 협업하여 원래 있던 롯데마트 여수점을 리뉴얼해 2021년 롯데몰 여수점을 개장하였다. 이곳에 입점한 명품브랜드 편집숍 롯데탑스가 오픈 첫달 파주 아울렛을 제치고 전국 1위를 할 정도로 롯데몰 여수점이 크게 성공하자 롯데쇼핑은 이를 본보기로 삼아 전국적으로 롯데마트 지점들을 폐점하여 이익을 개선하려는 전략 대신 기존 점포들을 리뉴얼하는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2000년대 초까지 여서동에 송원백화점[25]이 있었으나 경영난으로 수차례 휴업이 이어지다가 결국 폐점되었다. 해당 건물은 1995년 11월 고려쇼핑이 쇼핑시설로 개점하여 1년여 영업하다 송원백화점이 96년 11월 인수를 결정하여 97년 말 송원백화점으로 개점, 2000년대 초까지 영업하였다. 송원백화점의 고려쇼핑 인수 당시 기사 폐점 이후엔 호텔로 바뀌었다. 그래도 아직은 해당 건물을 '옛 송원백화점' 또는 '구 송원백화점' 식으로 많이 부르고 있다. 당시 이렇다할 랜드마크가 없던 여서동 지역에 생긴 큰 백화점이라는 상징성이 있어 당시부터 랜드마크로서 확실히 시민들에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물의 위치 또한 여수의 신도심인 여서동에서도 핵심 상권 지역이라서 여수 시민들에게 강하게 인식이 박혀있다. 실제 송원백화점이었던 기간은 4년여 정도에 불과하지만 랜드마크로서의 각인효과가 매우 커 폐업후 백화점이 아니게 된지 2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해당 건물과 지역 일대는 송원백화점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

쌍봉동의 쌍봉사거리에 세제백화점이 있지만, 이름만 백화점이지 실제로는 1,2층에 상점들이 있고 그 위에는 사무실 등이 있는 평범한 상가 건물이다. 그래도 위치 자체는 위의 옛 송원백화점처럼 좋아서 랜드마크 역할은 해 준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여수, 돌산갓, 돌산갓김치, 거문도 , 여자만 새꼬막이 등록되어 있다.

6.3. 금융[편집]

7. 관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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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전국 2위 규모인 1,358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관광도시이다.

2012년에 신월동에 히든베이호텔(구 여수연도관광호텔)이 문을 열었다. 2013년에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개관 10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봉헌학원 이사장이자 히든베이 호텔의 김재호 대표의 과거 인터뷰를 읽어보자.

남면 횡간리에 관왕묘가 존재한다. 조선 후기에 세운 걸로 추정되며, 여수시의 유일한 관왕묘이다.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는 소호동에 디오션리조트, 거문도에 호텔을 짓는 등 여수에 꽤나 투자했지만(2005년), 문선명 사후 여수에 관심이 끊겼다.

2018년 7월 12일, 여수시 중앙쇼핑 건물 2층에 청년몰인 꿈뜨락몰을 열어 인기를 얻었다.

시민감동연구소의 한창진 대표가 2018년부터 여수 역사가 담긴 달력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여수시에도 특유의 전통주가 있다. 여수주조공사여수막걸리가 여수에서뿐만 아니라 타지에서도 무척 인기 많다. 또한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에 위치한 여남주조공사가 순곡 돌산 生동동주에 이어 쑥 및 호박으로도 막걸리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해풍쑥 생 막걸리웰빙 호박 동동주다. 참고로 호박 동동주는 호박이 비싸서, 사실상 단종되었다(2020년). 이어 개도주조장의 개도 막걸리, 장성군의 (주)청산녹수가 만든 여수밤바다 막걸리 등이 있다.

2000년대 초에, 여수시를 연고로 한 농구팀이 있었다.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2000~2001)이자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2001~2003)이었다. 이 팀은 2003년 재정난으로 부산으로 이전하다 2021년에 수원으로 이전하여 수원 kt 소닉붐으로 개명하여 활동하고 있다.

2019년 세계한상대회는 10월 22~24일, 여수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중국의 진박회(進博會, 중국국제수입박람회)와 비교해보자.

2019년 말 여수-고흥을 잇는 교량을 연결하는 계획이 탄력을 받고 있다.

2015년 전국노래자랑에 처음 나왔고, 2019년에 다시 한 번 나왔다.

2019년 10월 5~6일, 여수 진남문예회관에서 2019 손양원목사 순교 70주년 뮤직&드라마 콘서트를 상연했다. 첫날 권오봉 여수시장, 주승용 국회부의장, 최도자 국회의원 등이 자리했다.

2019년 11월 9일, 호남 최초로 로드 FC를 개최했다.

2019년 12월 27일, 웅천지구에 이순신도서관을 열었다.

2020년 1월 16일, 유한회사 KMT경식 대표이사는 초대 민선 여수시체육회장에 취임했다.

2020년 1월 18일, 유소년 축구클럽 여수FC U-18을 창단했다. 이는 여수정보 1월 21일자 1면에 나온다.

2020년 1월 23일, 백종원의 '맛남의 광장', 일본산 가다랑어포 대체할 훈연멸치 개발했다. 여수공항에서 촬영을 진행한 것은 덤.

2020년 5월 29일, 웹 드라마 호접몽(好蝶夢)을 공개했다.

8. 교육[편집]

여수시도 저출산으로 학령 인구가 감소하는 문제를 피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2000년대까지만 해도 여수구봉중학교, 여수진남여자중학교 등 1학군 중학교들은 9학급으로 신입생들을 받았다. 10여년이 지나 2018년이 되자, 중앙여중, 진성여중, 충덕중은 신입생(2005년생)들을 무려 3개 학급으로 편성했다. 1학군의 2018년 신입생(2005년생)들은 평균적으로 4개 학급으로 나뉜다고 보면 된다. 2학군 학교들은 학령 인구가 좀 높아서, 대체로 학년마다 6~7학급을 두고 있다.

여수시에서도 도전 골든벨출연한 사례있다. 그리고 여수시민의 이름으로 세 번이나 골든벨을 울렸다.
회차 및 방송일
출연 학교 또는 특집
수상
비고
14회 (1999년 12월 17일)
여수정보과학고등학교
9대 골든벨 수상
특성화고 최초로 골든벨을 울림
16회 (1999년 12월 31일)
왕중왕 특집
준왕중왕
여수정보과학고등학교 학생 출연
116회(2002년 01월 06일)
여수중앙여자고등학교
264회(2005년 02월 27일)
신춘특집
최후의 1인: 여수여자고등학교
287회(2005년 08월 07일)
여수국제청소년축제
최후의 1~4인: 여수고등학교
478회(2009년 05월 31일)
여수부영여자고등학교
631회(2012년 07월 08일)
여수충무고등학교
637회(2012년 09월 09일)
여수화양고등학교
87대 골든벨 수상
689회(2013년 09월 22일)
추석 특집 도전! 고향 골든벨
95대 골든벨 수상
여수여남고등학교 학생 출연
769회(2015년 03월 08일)
여수부영여자고등학교
799회(2015년 12월 27일)
왕중왕 특집
부영여자고등학교 학생 출연
809회(2016년 03월 06일)
여수석유화학고등학교

8.1. 초/중/고등학교[편집]


공립 유치원은 성산유치원(2006)과 송현유치원(2017)의 두 곳이 있다.

특수학교도 한 곳이 있다. 여수여명학교(1990)를 가리키는데, 이곳은 과거에 문수동에 위치했으나 2013년에 소라면으로 이전했다. 지체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동백원이 그 옆에 있다.

여수시내 초등학교: 67개 초등학교가 있다. 1978년에 자산초등학교가 신설됐으나, 2012년에 폐교되었다고 한다.

여수시내에 28개 중학교가 있다. 그중 1학군에 여수구봉중학교, 여수여자중학교, 문수중학교 등 9개 학교가 있다. 이 중에 문수중학교만이 남녀공학이지만, 언젠가부터 남녀 분반으로 신입생들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2학군은 소위 여천으로 분류하는 곳인데, 무선중, 웅천중 등을 포함하여 6개 학교가 있다. 여도중, 여양중, 돌산중 등은 기타 학군으로 분류된다. 여도초등학교 및 여도중학교는 과거에 여수국가산업단지 임직원의 자녀들이 입학했으나 요새는 그 제약이 풀렸다. 1학군을 제외하면 모두 남녀공학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비평준화 시절(~2004)에는 일반계 남고 중에서 여수고등학교, 여천고등학교, 한영고등학교(사립) 순으로 평균 성적이 높았고, 일반계 여고 중에서는 여수여자고등학교, 여수중앙여자고등학교(사립), 여수부영여자고등학교 순서로 평균 성적이 높았다. 당시에 여수고와 여수여고가 명문고로 분류되어 순천고등학교순천여자고등학교와 경쟁 구도를 이루었고 서울대 등 명문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높았다. 1988년생들은 2004년에 중학교를 졸업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이 세대를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라 부르며, 2005년에 중학교를 졸업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한 1989년생들을 평준화 1세대로 부른다. 평준화 이후(2005~) 여수고와 여수여고의 명성이 옛날 같지 않으며, 한영고 졸업생들이 서울대에 가장 많이 간다고 한다. 비평준화로 분류된 학교가 있는데, 화양고등학교, 여양고등학교, 여남고등학교(남면)가 있다. 여담이지만 비평준화 시절에 여수고를 졸업한 학원장들은 여수고 학원장 동문회를 결성하여 결속을 다지고있다. 학원에 여수고 마크가 붙어 있다면 하나같이 여수고 학원장 동문회에 속한다.[29]

여수시내 90년생들, 즉 평준화 2세대가 2006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에는 이들 중 상위권 학생들은 여수시내 고등학교가 아닌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 이를테면 장성고등학교, 담양에 있는 담양한빛고등학교창평고등학교 등에 많이 갔다. 상위권 학생들이 타지역으로 가게 되는 인재 유출을 걱정한 여수시는 특단의 결정을 내리는데, 여수시내에서 100등 이내에 들었던[30] 학생들 중 여수시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겨울 방학동안 영국에 여행 보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수시민들의 민원으로, 이후엔 이런 혜택이 사라졌다고 한다. 2020년대에 들어 교내 5% 이내에 든 학생은 여수시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장학금 5백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여수시내 일반계 고등학교들은 강제적으로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해야 했다. 모 고등학교의 1~2학년은 9시 50분에 하교했는데, 학원 차량들이 학원생들을 싣기 위해 교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들은 대체적으로 11시에 하교했는데, 그 시간에 시내버스가 끊겨서 같은 동네에 사는 학생들끼리 돈을 모아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시기에 특성화고등학교들도 대학진학반이란 이름으로 야간자율학습을 실시했다.

2010년대에 들어 여수공업고등학교일반계 고등학교를 앞질렀다는 말이 있다. 즉 공업고등학교(아마도 기계과로 추정)에 탈락한 학생들이 일반계고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일반계고에 탈락한 학생들이 특성화고에 가던 과거에 비하면 위상이 역전된 셈이다. 순천시에서도 순천공고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이 일반계에 입학하는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대학 졸업자가 취업 시장에서 갖는 위상이 낮아진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2015년 2학기, 여수한영고등학교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하고 말았다. 한 교사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조카(당시 2학년, 1998년생)에게 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유출했는데, 이 눈치 없는 조카가 친구들에게 모든 걸 실토해버렸다. 결국 삼촌 선생님과 조카 학생이 나란히 처벌 받았다. 이 학교는 2019년 말에 조국과 금태섭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사자성어를 한문 시험에 출제해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2000년대 중반에 여수시에 특목고를 세운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그 계획은 불발되고 일반계 고등학교가 들어섰다. 원래 한려고등학교라는 교명으로 개교할 계획이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바뀌면서 2006년에 일반계 남녀공학 여수충무고등학교가 개교했다. 2006년 입학생(1990년생)이 1회 졸업생이 되었다. 이 학교는 정문을 통과한 후 건물로 들어가는 길에, 경사가 무척 심하다. 진성여중/여고보다 경사가 높다.

이후 2016년, 여도중학교를 폐교하고 사립 외국어고등학교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여도초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하여 여수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특성화고로 여수공업고등학교, 여수정보과학고등학교(구 여수상업고등학교), 진성여자고등학교, 여수석유과학고등학교(구 전자화학고등학교), 여수해양과학고등학교(구 돌산실업고등학교)가 있다.

2016년 9월, 웅천지구에 여수송현초등학교가 개교되었다. 이리하여 웅천지구는 초등학교 둘(웅천초, 여수송현초), 중학교 하나(웅천중)를 갖추었다. 과거에 웅천동으로 여수여자중학교를 이전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인근 주민(관문동)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충덕중학교는 폐교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엑스포타운 아파트단지 조성으로 인한 인구 유입으로 없는 일이 되었다.

무선중학교와 석유화학고등학교, 여수여자중학교과 여수여자고등학교, 여선중학교와 여천중학교는 공립학교임에도 서로 붙어있다. 문수중학교와 정보과학고등학교는 서로 맞은편에 위치해있다. 안산중학교와 부영여자고등학교도 비교적 가깝다.

여수시내 학교에서도 예외없이 운동부를 운영한다. 서초등학교의 야구부, 미평초등학교 및 구봉중학교의 축구부, 여수중학교의 야구부 및 태권도부, 종고중학교의 권투부, 충덕중학교의 럭비부, 문수중학교의 양궁부, 무선중학교의 유도부 및 요트부, 여수고등학교의 태권도부 및 요트부, 여수여중 및 여수여고의 사격부, 안산중학교 및 충무고등학교의 육상부, 여수공업고등학교의 씨름부, 여수화양고등학교의 농구부, 정보과학고등학교의 유도부 등이 있다.

다음 학교들이 여수시내 사립학교이다. 참고로 한영고등학교와 진성여중-여고는 같은 재단(봉헌학원)에 속한다. 종고중 및 공고도 같은 재단(여수공학원)에 속하며, 운동장을 공유한다고 한다.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중앙여중-여고(천성학원), 여양중-고등학교(춘당학원), 여도초등학교 및 중학교(여도학원)도 각각 같은 재단에 속한다. 한영고등학교 및 한영대학(2~3년제 전문대학)도 마찬가지.
초등학교: 여도초등학교
중학교: 여수중앙여자중학교, 여수종고중학교, 여양중학교, 여도중학교, 진성여자중학교
고등학교: 여수중앙여자고등학교, 여수공업고등학교, 여양고등학교, 여수정보과학고등학교, 진성여자고등학교, 여수한영고등학교

8.2. 대학교[편집]

4년제 대학과 2~3년제 대학이 각각 하나씩 있다.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구 여수대학교)가 여수시내 유일 4년제이자 국립대학이다. 과거 국동에 캠퍼스가 있었으나 2000년대 중반에 둔덕동으로 이사갔다. 국동에 남아있는 것은 '국동캠퍼스'라 부르며, 버스 정류장 근처에 기숙사(남자 전용, 미래학사)가 있다. 한편 통학버스를 놓친 기숙사생은 777 버스666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데, 국동에서 둔덕동에 가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 대학교는 여수시에 있음에도 여수 거주자들이 입학하는 비율은 낮고, 오히려 '전남대학교'라는 이름 때문에 광주광역시 출신 학생들이 많다. 오히려 국립대를 원하는 여수시 고3들은 최소 순천대에 입학하려고 한다. 일례로 순천대학교 09학번에 여수시 출신들이 무척 많았다.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의 영어학 전공은 2016년 2학기를 맞아 교육대학원 영어교육전공을 개설했다. 이후 적절한 과정을 거쳐 5학기 교육을 마친 사람들에게 교원 자격증(영어)를 발급하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교육대학원에 입학하길 희망하던 기혼 여성들은 이제 순천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집 앞에서 교육대학원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전남대학교와 구 여수대학교가 2006년에 통합한 이래 10년 이상 되었는데, 전남대학교의 광주캠퍼스가 여수캠퍼스에 있던 학과를 뺏어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통합과 동시에 구 여수대학교의 행정학과가 광주캠퍼스의 행정학과에 통합되었고, 2016년 3월 여수캠퍼스 문화사회과학대학 시각디자인학과는 광주캠퍼스의 미술학과에 통폐합되었다. 2019년 말에는 여수캠퍼스의 해양기술학부 해양토목공학과가 광주캠퍼스 토목공학과에 통폐합되었다. 화제의 중심이었던 특수교육학부는 2020학번부터 광주캠퍼스에서 생활한다.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 동문회는 이런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여 2015년을 맞아 여수캠퍼스를 전남대에서 분리 및 독립시킴으로써 여수대학교로 돌아가게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어 2018년 10월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 위상회복 추진위원회' 등이 여서동 시청(2청사)에 현수막을 걸어서 특수교육학부가 광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2016년 12월2018년 5월 기사를 읽어보자.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특수교육학부를 광주에 이전하는 게 맞지만, 여수캠퍼스 동문회는 이를 지역민을 기만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31] 이 이슈를 아라방송에서 취재했다. 이전 문제는 잠정적으로 보류되었다. 그리고 전대신문에서도 다뤘다. 2019년 2월 26일 KBS뉴스9(순천)에 따르면, 특수교육학부는 점진적으로 이전될 전망이다. 2020년부터 신입생들은 광주에 입학한다고 한다. 여수MBC News+에서도 다뤘다.

2021학년 입시에서 지방대들은 입학 정원이 미달되자 추가 모집을 시도했다.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예외는 아니어서, 200명 이상 미달되었다고 한다.

학과 통.폐합으로 인한 심각성을 깨달은 전남대는 3개 첨단학과를 신설하였고, 그 덕에 2021학년 신입생 모집인원은 833명으로 기존의 700여명에서 20% 순증되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지역 사회는 여수에 전남대 의대와 대학병원 설립 ‘촉구’했고 지역 도의원도 "통합 이후 전남대 여수캠퍼스 지원 미비" 지적 하는등 넘어야 할 산들이 여전히 너무나 많다.

또한 2021년 10월 말 여수캠퍼스에서 열린 글로컬 강소캠퍼스 발전방안 심포지엄에서 여수캠퍼스 첨단학과 신설을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을 폄훼하는 발언과 관련으로 전남대 여수캠 총동문회가 학교당국의 사과를 촉구하고 나서기까지 하면서 오히려 불만이 커지고 있다.

2~3년제로 한영대학교가 있다. 한영고등학교, 진성여중-여고와 같이 봉헌학원에 속한다. 한영대학교는 2018년 6월 말 MBC 뉴스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입학 및 출석에서 잡음이 있다. 학생들을 불법적으로 모집했다고 한다. 이어 학위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그리고 12월까지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유령 학생이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12월 19일) 유령 학생은 F 학점을 받고 유아교육과는 폐지되었다.

9. 정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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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군사[편집]

둔덕동에 예비군부대가 있다. 이 부대는 해안경계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해안지역에 경계초소를 설치하여 운용하고 있다. 해군은 거문도에 해상감시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11. 하위 행정구역[편집]

12. 사건 사고[편집]

1995년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다.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로 불리는 것으로 태풍을 피해서 원해로 나가고 있던 대형 유조선이 소리도 해안에 좌초한 것. 당연하겠지만 당시 여수 주변의 어족 자원과 양식장들이 엄청난 피해를 받았다. 기름도 기름이거니와 그때는 유화제의 유독성에 대해서 확정되지도 않았을 때라 유화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기 때문...[32] 이때 기름유출에 직격탄을 받은 섬지역 인구가 급감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당시 사고가 난 회사는 LG정유(현재는 GS칼텍스)였다. 그 당시도 700톤이라고 하던 기름 유출량은 5035톤으로 늘어났다.

1998년 12월, 북한군의 반잠수정이 여수시 돌산읍 임포 지역 앞바다에 침투했다. 국군은 이를 발견하고 침몰시켰다. 여수 반잠수정 전시관이 이 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을 다루고 있다. 반잠수정을 발견한 이등병 김태완 군은 60일 포상휴가를 받아, 가족과 헬기를 타고 고향 서울시에 돌아갔다.

1999년 8월, 공립학교 교사, 사립학교 교사, 학원장 등이 카드 도박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2002년 여수에서 에이즈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다. 어느 한 접대부가 윤락가에서 1년 6개월 간 관계를 맺다 6월 5일 경찰에 검거되었는데[33], 이 소식을 들은 여수 시민들의 에이즈 항체 검사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 다행히 대부분의 검사가 음성.

2005년 말에는 여수 중장비학원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범인을 검거하지 못해 미제로 남았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을 통해 널리 알려진 미제사건 중 하나다.

2014년 1월 31일 낙포동 GS칼텍스 원유2부두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로 일대가 큰 혼란을 빚었다. 주민들은 낙담하였으며 임명 때부터 여야 구분없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진보 보수 안 가리고 열불나게 할 정도로 한심한 사고대처를 보여주다 더 이상은 안되겠던지 박근혜 대통령이 2월 6일 해임시켰다.[34] 당시 유출된 기름은 최초 800L 에서 16만4000리터로 바뀌더니 다시 약 75만 리터로 추정된다고 기사가 났다. 한번도 아니고 벌써 2번째 기름 유출 사고다. 어업의 메카였던 여수가 현재 정부와 GS칼텍스가 니탓 네탓 하면서 보상금 문제로 다투고 있다. 사실 가장 과실이 큰 가해자는 선장, 도선사 및 선사라 할 수 있으나 외국회사라 뒷짐 지고 피해복구나 보상에서 발빼려 하는데도 거의 비난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주철현 당시 여수시장의 핵심 공약대로 '여수 사립외고 설립 추진위원회' 출범하면서 여도중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이게 되자, 학교 측과 큰 갈등을 빚었던 것이 화제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여수시의 여도중학교 강제 통폐합 및 사립외고 설립 추진 논란 문서 참조.

참고로 두 번의 기름유출사고 모두 여수에 있는 해상국립공원에 피해를 입혔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서쪽 끝자락이 여수 오동도-만성리 해수욕장인데 여기는 낙포동과 가깝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동쪽 끝자락은 여수 돌산-금오도-소리도인데 여기는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사고가 일어난 곳이다.

2017년 2월 24일에는 '두살배기 시신 유기장소'서 10㎝ 안팎 뼛조각이 나와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20년 11월에는 여수를 뒤흔든 강력범죄가 두 개나 일어났다. 먼저의 것은 치정문제로, 시전동 아파트 입구에서 50대 여성이 묻지마 칼질을 당했다. 나중의 것은 주요 언론사를 통해 대서특필 되었는데, 무려 2세 아이가 냉장고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2021년 9월 27일 자정에 전남 여수 덕충동 A아파트에서 8층에 사는 30대 남성이 층간소음에 불만을 품고 9층에 찾아가 4명에게 칼을 휘둘러 그 중 60대 부부에 중상을 입히고 40대 부부(딸과 사위)를 사망케 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사건 후 고인이 운영하던 가게에 애도의 조화가 놓였다. 87년생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마체테를 휘둘렀다는 소문이 있다. 공동주택에서 산다는 것은...

2022년 6월 30일 새벽, 화살 총 들고 파출소 습격…"잡아달라" 경찰이 112 신고
며칠 전 전남 여수에서 복면을 쓴 20대 남성이 파출소에 들어가 화살 총을 쏘며 난동을 부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파출소에 있던 경찰들이 범인을 잡기는커녕 몸을 숨기고 112에 신고를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2022년 11월 2일 밤 시간대, 여수의 한 공사 현장에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해당 공사 현장의 미완공 건축물이 붕괴가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현장의 인근에 거주중이거나 근무를 하던 100명 가량의 사람들은 황급히 대피했고, 아직 사용도 하지 않았던 미완공 건축물이였기 때문에 인근 구역 내에서의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도 1 다만 해당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에 이를 우려한 시민들이 관할 공공기관에 대응 관련 문의를 넣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네티즌들의 또 다른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보도 2

최근에는 여수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입주를 앞두고 거의 노예계약서에 가까운 특약사항 변경 계약서로 인해 논란이 벌어졌다. 예를 들면 해약할 경우 내는 위약금의 부담 개월이 잔여의무임대개월에서 의무임대개월수로 변경되었거나 위약금의 금리를 해약 전월 한국은행 기준 금리에서 5%로 고정하는 등 임차인에게 불리한 조항이 많았다. 심지어 집 반환 시 5%의 유보금 정산은 3개월 내에만 가능하며 조기 지급 요청도 거부했다. 결정적으로 이런 논란에 부채질을 한 부분은 계약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문구를 여러 항목에 추가했다는 것이다. 이건 임차인의 말은 무시하겠다는 뜻이자 공정거래법 제45조[35]에서도 위법이기 때문에 훨씬 더 심각하다. 출처

13. 여담[편집]

  • (주)푸르밀여수 쑥우유를 출시했다. 거문도의 해풍 쑥을 이용한 걸로 보인다.
    여수 청정바다의 해풍을 맞고 자라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여수 해풍쑥! 짙은 쑥 향과 영양까지 만점인 자연이 준 선물
  • 2023년 드라마 모범택시 2의 촬영지 중 하나가, 여수시 소라면에 위치한 진달래마을 앞자리이다.
  • 해양도시이므로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산업 하는 사람들은 소주를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국동 롯데마트에 빈 병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정기적으로 주류 유통업자들이 대형마트에 주류를 납품하러 올 때, 빈 병을 수거하러 온다. 롯데마트 여수점이 받아주는 빈 소주병이, 업자들이 가져갈 수 있는 양을 초과해서 10년이 넘어도 빈 소주병이 남는다.
  • 서울 노원구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노원구에는 실제로 서울에서 여수 출신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특히 상계1동, 2동, 그리고 5동에 가장 많이 거주한다. 노원구에는 전북 출신이 23%로 가장 많고,[36] 전남 출신은 약 18% 정도 되는데 그중 10% 정도가 여 출신이다. 전남 고흥군 출신들도 노원구에 많이 거주해서 오승록 노원구청장도 전남 고흥군 출신이다.[37] 앞으로 여수 출신이 서울에 정착한다면 노원구 상계동으로 가장 많이 이주해 올 전망이다.
  • 국내 배구 잡지 더 스파이크 2021년 11월호 17쪽에, 역사에 남을 페퍼저축은행 1~2호 관중이라는 영예를 안은 두 여수시민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개막전 보러 여수에서 왔어요
    Q: 어디에서 왔나요
    A~B: 전남 여수에서 버스 타고 왔어요. 한 시간 반 정도 걸렸어요. 배구 보려고, 내일 시험인데 조퇴하고 왔어요.

    Q: 페퍼저축은행의 창단 첫 홈경기 첫 번째 관중으로 입장했어요. 소감이 어떤가요.
    A: 광주에 프로배구단이 창단했는데, 그것도 제가 첫 번째로 입장하게 돼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거 같아요.
    B: 우리가 첫 번째로 입장을 했다고 하니까 더 설레고 기대되는 것 같아요.

    Q: 배구는 언제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나요.
    A: 이번 도쿄올림픽 때부터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게 여기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Q: 좋아하는 배구선수는 누구인가요.
    A: 김연경 선수랑 김수지 선수, 페퍼저축은행에서는 이한비 선수 좋아해요.
    B: 현대건설 고예림 선수랑 페퍼저축은행에서는 이현 선수 좋아해요.

    Q: 이한비 선수랑 이현 선수 좋아하는 이유,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A: 창단팀 주장이기도 하고 배구하는 모습도 지켜봤는데, 너무 멋있어서요.
    B: 이현 선수는 귀여우세요.

    Q: 페퍼 선수들에게 응원 한마디 부탁드려요.
    A: 정말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B: 지금까지 수고 많으셨고,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순신 장군을 기념하는 이순신 광장에는 이순신을 도운 사람들이라는 비석이 있다. 이억기를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원균이다. 2020년에 한번 원균따위가 어째서 이순신을 도운 사람이냐는 비난에 철거할 뻔했는데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1592년 경상도 전투를 가지고 도왔을수도 있다고 하며 또 칠천량 해전의 패전을 조정탓으로 돌려버려 마치 원균 옹호론자가 쒼듯한 반론에 무산되었다.
  • 흥국상가 주변에 전도 활동을 하는 사람이 꽤 많다. 그 중에서 사이비가 4할 정도이니 무시하고 지나가는게 좋다.
  • 여수시 고소동 한신아파트 일대는 '국내 최악 경관 사례'로 선정되었다(2010년).

14. 출신 인물[편집]

14.1. 여수의 가공인물[편집]

15. 국내자매도시[편집]

15.1. 국외자매도시[편집]

[1] 2023년 12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2] 동문동, 한려동, 중앙동, 충무동, 광림동, 서강동, 대교동, 월호동, 여서동, 문수동, 미평동, 만덕동, 삼일동, 묘도동, 국동, 돌산읍, 삼산면, 남면.[3] 둔덕동, 쌍봉동, 시전동, 여천동, 주삼동, 소라면, 율촌면, 화양면, 화정면.[4] 구 여수시 블로그.[5] 2015년 9월 22일 이전 페이스북 게시물은 구 여수시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다.[6] 한려해상의 통영시한산도를 의미한다. 즉 한산도부터 여수시까지의 남해안 지역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7] 여니와 수니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니와 수니는 여수엑스포 마스코트다. 위의 슬로건에 비해 마스코트는 현대화가 상당히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마스코트가 여수시가 폭발하는 관광수요와 그것을 받쳐줄 경제력을 통해 문화적으로 대폭 성장하게 된 2010-2020년대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관광 포인트 및 공단 근로자 거주지역이냐 아니냐에 따라 공공시설의 발전도, 거리의 청결함 차이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최근의 여수시 모습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8] 세 개의 타원형은 동양의 3才思想(天·地·人)을 의미하며 가운데 섬모양은 오동도를 현대적 감각으로 간결하게 시각화한 것으로써, 큰 타원으로 흐르는 시·지각적 에너지는 세계로 향한 해양도시 여수의 도약의지와 지속적인 발전을 의미한다.[9] 하지만 정작 삼여 통합 문서에서 말하는 통합 과정은 이 말과는 영 딴판으로 서술되어 있다. 아마 시청 등에서 적당히 포장한 말을 그대로 쓴 듯 하다.[10] 응답하라 1994에서 여수출신과 순천출신이 싸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손호준이 순천에는 뉴코아백화점이 있으나 여수에는 백화점이 있냐고 물어보았던 장면이 있었다. 실제 1994년 시점이면 없었던 것이 고증에 들어맞는다. 해당 건물은 1995년 고려쇼핑에서 쇼핑시설로 개점하였으나 1년여 후인 1996년 11월 송원백화점의 인수가 결정되어 1997년 말에 송원백화점으로 개점, 2000년대 초까지 영업하게 된다. 지금은 더이상 백화점이 아니지만 당시 이렇다할 랜드마크가 없던 여서동 지역에 이 정도 크기의 큰 백화점이 들어서게 되자 여수시 주민들에게 확실히 각인된 효과가 크게 남아 지금도 여수에서 택시타고 송원백화점(송백)으로 가달라고 하면 모두가 알아듣는 정도이다.[11] 예전에 마늘공판장 및 경매장이었다고 한다.[12] 웅천지구 개발 전까지는 위성지도 등을 통해 여수시를 보면 그냥 봐도 어디까지가 여수고 어디까지가 여천인지 바로 구분되었으며, 웅천지구 개발 후에도 웅천-여문지구가 완전히 연담화된 건 아니라서 구분이 된다. 대개 둔덕동 한려아파트와 신기동 주공아파트 사이의 다리, 신월동 해안도로로 여수와 여천을 구분한다.[13] 처음부터 옛 여수시청이 이곳에 위치한 것은 아니다. 옛 여수군청 때부터 시청사는 관문동에 위치해 있었다. 이후 여서-문수지구를 개발하면서 시청사를 여서동으로 이전했고, 그 자리에는 동문동우체국이 자리잡았다.[14] 물론 이렇게 될 경우 정 가운데에 있는 순천시에 통합 시청이 들어서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여수시 지역은 여수시와 여천시를 나눠 2개의 행정구가 배정될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15] 이 문제가 나오던 당시 여수시 인구가 30만이었고, 순천시 인구가 27만, 광양시 인구가 14만명이었다. 합산하면 71만명 정도가 나오는데 당시 인구 90만의 고양시도 막 일산구를 동, 서구로 분구해서 겨우 3개 행정구로 버티던 상황이었다. 또한 성남시도 인구 98만명에 3개 행정구로 버티던 상황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전남 동부권 3개 시의 합병을 승인해준다고 해도 여수 지역에 구청을 2개씩이나 만들어준다는 보장이 전혀 없었다.[16] 보통 행정기구의 설치, 통폐합, 소재지 이전 등 모든 사항은 시의 법률인 조례를 통해 결정되고 이런 것들에 변화를 가하려면 조례부터 개정하여야 한다.[17] 여수시청 여서청사는 27만명의 인구를 자랑하던 구 여수시청으로 쓰였던 건물로 시의회 건물, 시청 본관, 시청 별관이 있었는데 본관을 해양수산청으로 양도하고 나머지 두 건물을 시에서 소유하고 있다.[1973년] 1973년 7월 1일 여천군 돌산읍 경호리 → 여수시 편입
광양군 골약면 송장리(현 여동리)가 여천군 율촌면에 편입
[19] 우두출장소 8,311명 + 죽포출장소 1,871명[20] 개도출장소 774명[21] 순천시광양시, 곡성군, 구례군 선거구와 합쳐져서 분구되었다.[22]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나 GS그룹 일가의 경우 여수 엑스포 유치를 위해 제일 많은 기여를 했다. 특히 GS그룹여수국가산업단지에 정유시설이 갖춰진 GS칼텍스의 영향도 컸다.[23] 전남 최초의 창고형 매장은 홈플러스 스페셜 순천풍덕점이다.[24] 인근 지역인 순천시에 코스트코가 입점을 시도하자, 당시 순천시 국회의원인 통합진보당 김선동이 강경하게 반대했을 때 여수시 갑/을 국회의원인 김성곤주승용이 모두 반대했다. 코스트코가 순천에 입주하면 자연스럽게 빨대효과가 일어나 여수 상권에 피해가 가기 때문.[25] 광주의 중견기업인 금광기업에서 세웠던 백화점.[괄호] 26.1 26.2 26.3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29] 까치정보 2016년 10월 12일(수요일)자 7면에 동문회 회원들의 명단을 볼 수 있었다. 당시 비평준화 시대의 학원들은 여수고반-여수여고반을 따로 편성하여 수업했다. 훗날 평준화 정책으로 창평고등학교 등이 주목받자 한때 학원들이 창평고반 등을 편성했다. 중학교들도 창평고 합격자 등을 현수막으로 자랑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부장이었던 한 교사가 이런 골빈 중학교도 있다고 깠다.[30] 여수시내 전체 학생 중 내신 점수로 100등 이내에 든 학생을 선발한 걸로 추정[31] 특수교육학부의 입학정원은 45명 전후인데 중등교육을 제외하더라도 100명의 학생이 여수캠퍼스에 재학 중이다.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원룸 건물 6채 정도를 채울 인구가 사라지는 셈이다.[32] 다만, 이 덕택에 이전까지 생계형이라 제대로 건드릴수 없었던 속칭 고데구리라 불리는 무허가 소형기선저인망들을 상당수 줄일수 있었다고 한다.[33] 영화 너는 내 운명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다.[34] 정확히는 총리가 해임건의를 했던 것.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나라의 총리가 이럴 정도면... 그리고 무엇보다 그 건의를 수렴한 건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다.[35] 공정거래법 제45조는 불합리한 계약은 무효화가 가능하다고 나온다. 어느 한 쪽에게만 유리한 불공정계약도 공정거래법 제45조로 무효화가 가능하다.[36] 노원구 공무원 노동조합과 전북 고창군 공무원 노동조합이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37] 2021년 현재 서울특별시 25명 구청장들 중에서 강서구, 구로구, 서초구, 금천구, 중구를 제외한 20개 구청장 출신 지역이 호남이다. 16개 구청장은 광주,전남 출신이고, 4개 구청장은 전북 출신이다.[38] 서울특별시 노원구청장을 역임했으며 국회의원 지역구도 서울특별시 노원구 병이다.[39] 노원구에 여수시 출신이 이분의 영향으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서울특별시에서 순천시 출신과 더불어 여수시 출신도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 노원구이다.[40] 지역구: 서울특별시 송파구 갑.[41] 성장은 윗동네인 순천시에서 했다.[42] 미 해군 정보국 근무 중 대한민국에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투옥되었다. 당시 여천고 학생들의 탄원서가 있었고 여수 각지에서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생방송 화제집중 1898회(2005년 11월 9일)에서 로버트 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43] 지역구: 전라남도 여수시 을.[44] 개그맨 이진호가 명예 화성시민이 된 것과 같은 케이스로 명예 여수시민이다. 아버지가 여수 출신, 어머니는 경상도 출신이다.[45] 그러나 500년이나 대대로 흘린 여수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한숨을 위로해 줄 생각 없이, 오직 가무(歌舞)와 시흥(詩興)만 탐하다가 여수군민들의 원성을 받기도 했다.[46] 지역구: 전라남도 여수시 갑.[47] 서울특별시 출생이며, 초등학교까지는 서울에서 나왔다.[48] 국민의당 비례대표[49] 이를 연기한 배우 민도희 또한 여수시 출신이다.[50] 국내 로컬판. 26화 <엄마가 백화점에서!>편에서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롤케이크를 보내는 장면이 나왔는데 주소가 여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