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맨(음향기기)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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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 1979년 6월 22일 (45주년) |
일본어 | ウォークマン |
링크 |
1. 개요[편집]
1분 7초만에 역대(1979~2019) 워크맨들을 볼 수 있는 워크맨 40주년 기념 영상. | 내셔널 지오그래픽 워크맨 다큐멘터리 영상 클립 |
일본의 소니에서 1979년 7월 1일에 첫 발매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리코더 & 플레이어다.[3] 흔히 세계 최초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인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브라질의 발명가인 안드레아스 파벨이 만든 스테레오벨트가 세계 최초다. 2009년 기준으로 3억 8500만 대가 팔렸다.
워크맨이란 명칭은 상표이자 고유명사지만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에 밀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자체가 멸종했으므로, 워크맨이란 단어는 다시 소니의 상표명으로 전락(?)했다.
쿠로키 야스오(黒木靖夫, 1932~2007)의 회고록에 따르면, 쿠로키 야스오는 어느 날 어떤 젊은 엔지니어가 기자들을 위한 자사 소형 녹음기, "프레스맨"을 개조해서 음악을 듣는 걸 보았다. 이를 보고 상품 잠재력이 크다고 판단한 그는 모리타 아키오 사장과 이부카 마사루 명예회장에게 개조된 프레스맨을 보여줬는데, 둘도 이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면서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워크맨 같은 제품은 전례도 없고 수요도 없을 거라 믿은 영업 부문에서 크게 반대했다. 그 당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는 녹음기 기능을 넣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4], 워크맨은 소형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재생 기능만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로키 야스오는 개발팀을 지휘해 워크맨을 내놓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그 공로로 '워크맨의 아버지' 또는 '미스터 워크맨'이라 불렸으며, 승승장구해 기획담당 이사까지 승진한 후 1993년에 퇴직했다. 참고로 최초 모델인 TPS-L2의 디자인은 쿠로키 야스오가 만든 것이다.[5]
초창기에는 일본제였고[6], 1980년대 후반, 1990년대에 들어서 저가형 기종은 말레이시아산[7]이나 중국산으로 전환되었다. 중상급 및 고급 기종이 주로 일본산이었던 시절은 카세트 워크맨 기준으로 1999년까지. 2000년부터는 말레이시아제로 전환되었으며, 2004년경에 다시 중국산으로 전환되었다. 네트워크 워크맨(MP3 플레이어)과 CD 플레이어는 2000년초까지, 미니 디스크는 2004년까지 일본산이었으며(저가형 제외), 그 이후에는 말레이시아, 중국에서 생산.
2019년에 출시 4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2023년 현재는 유일하게 PMP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2. 역대 로고[편집]
1979년 ~ 1981년 | 1981년 ~ 2000년 | 2000년 ~ |
3. 세대 구분 및 발전사[편집]
- 1세대 -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 1.5세대 - 카세트 녹음·재생
- 2세대(디스크맨) - CD 플레이어
- 3세대 - MP3
- 3.5세대 - MP3 + 비디오 재생
- 4세대 - 안드로이드 기반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
휴대폰을 워크맨 상표로 판매한 적도 있었다. 소니 에릭슨 시기 피처폰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거쳐 워크맨 특화 기종을 별도로 발매했지만, 2011년 ' Live with walkman'을 마지막으로 출시 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엑스페리아 TX에서 기존의 뮤직 앱이 워크맨으로 리네이밍 되었다.
3.1. 카세트 워크맨[편집]
파일:소니 WM-A602.jpg
사진의 모델은 WM-A602.
시연 당시 가격은 3.3만엔으로 상당히 비쌌지만[9] 이후 다양한 경쟁 제품의 등장으로 인해 가격이 싸졌다. 워크맨이 세상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해서 당시 LP에 밀리는 감이 있었던 카세트테이프를 넘사벽의 위치까지 끌어 올렸다. 그 외에도 2극 이어폰, 4극 리모컨, 소형 스테레오 마이크, 껌전지 등 휴대용 기기의 여러 표준을 만들어냈다. 또한 집 밖에 들고 다니면서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대중 음악 산업의 폭발적인 양적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초창기에는 AA 건전지를 사용했다. 그런데 워크맨의 크기를 조금씩 줄이던 도중 AA 건전지의 부피 때문에 더 이상의 작게 만들 수 없었다.[10] 고심한 끝에 소니는 1985년 일본전지(現 GS Yuasa)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건전지를 개발했다. 이것이 속칭 '껌전지'(Gumstick Battery, ガム型電池)가 탄생한 계기이다. 껌전지는 얇으면서도 AA 전지 이상의 성능을 보여줘 많은 기종에 사용되었다. 초기에 니켈-카드뮴 전지(Ni-Cd Battery 또는 니카드 전지)가 쓰였으나, 카드뮴의 유해성 때문에 니켈-메탈 하이드라이드 전지(Ni-MH 전지 또는 니켈-메탈 수소 전지)로 대체되었다. 현대에 대중적으로 쓰이는 충전식 리튬 이온 전지는 1991년에서야 AA형 전지와 C형 전지로 상용화 되었기 때문에 껌전지에 적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시간 듣기엔 용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AA 건전지를 외장으로 붙일수 있는 건전지 확장팩이 있었다.
처음에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전용이었으나 후에는 라디오, 녹음과 같은 여러 기능이 추가되었으며 기기 두께도 얇아졌다. 와우앤플러터 현상을 최소화시킨 최고급 프로용 카세트 워크맨[11]까지 나왔다. 1998년에는 두께를 최소화하고 건전지 수명을 최대로 늘린 충공깽스런 기종 WM-EX9이 나온 적이 있다. 진정 음질을 고려한 마지막 카세트 워크맨은 2000년에 출시된 WM-EX2000. 무산소 동선 재질의 코일 헤드를 쓴 것으로 유명했다. 그 이후에는 음질보다는 어학 기능(속도 조절 기능)이 추가된 기종이 발매되었다. 마지막 로직 데크형 기종은 2003년에 나온 WM-FX700, WM-GX788과 2004년에 나온 WM-EX651이었다. WM-FX290은 2012년 말에 미국에서 단종되었다.
라디오 기능 탑재 기종의 경우 수신 성능이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 WM-GX688은 FM 수신 성능이 엉망인 것으로 악명 높았으며, WM-FX700/FX890은 FM 수신 성능은 쓸만한 수준이었으나 AM 수신 성능이 수준 미달이었다. 사실 소니 라디오의 명성과 다르게, 워크맨은 소니가 아닌 도시바 수신칩을 사용하였고 수신 성능은 그저 그랬다. (라디오 수신 성능은 경쟁사이던 내쇼날 / 파나소닉 쪽이 더 나았다.)
2010년 10월 22일 소니가 카세트 워크맨의 일본에서 재고 소진 후 판매 중지를 선언했다. 다만 중국 위탁 생산 제품인 WM-FX290 모델을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2012년 말까지 발매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선 2013년 초반까지는 찍찍이 시리즈로 명맥을 유지했었다. 2010년 당시 소니코리아 측에서는 어학용으로 카세트 장치의 수요가 나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소니는 2013년 1월 부로 카세트 찍찍이(TCM 시리즈)의 생산을 종료했다. 이로써 카세트 워크맨의 계보는 34년만에 끊기게 되었다. 이는 최근 소니의 잇따른 경영난과 한국을 비롯한 카세트 수요 국가에서의 수요 감소 등이 작용한 듯.
현재 소니 워크맨은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로 발매하고 있으며, 2023년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PMP이기도 하다.
소니의 후기형 카세트 워크맨 기종들은 타사 제품에 비해 수리에 용이한 설계로 알려져 있다.[12]
사진의 모델은 WM-A602.
시연 당시 가격은 3.3만엔으로 상당히 비쌌지만[9] 이후 다양한 경쟁 제품의 등장으로 인해 가격이 싸졌다. 워크맨이 세상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해서 당시 LP에 밀리는 감이 있었던 카세트테이프를 넘사벽의 위치까지 끌어 올렸다. 그 외에도 2극 이어폰, 4극 리모컨, 소형 스테레오 마이크, 껌전지 등 휴대용 기기의 여러 표준을 만들어냈다. 또한 집 밖에 들고 다니면서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대중 음악 산업의 폭발적인 양적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초창기에는 AA 건전지를 사용했다. 그런데 워크맨의 크기를 조금씩 줄이던 도중 AA 건전지의 부피 때문에 더 이상의 작게 만들 수 없었다.[10] 고심한 끝에 소니는 1985년 일본전지(現 GS Yuasa)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건전지를 개발했다. 이것이 속칭 '껌전지'(Gumstick Battery, ガム型電池)가 탄생한 계기이다. 껌전지는 얇으면서도 AA 전지 이상의 성능을 보여줘 많은 기종에 사용되었다. 초기에 니켈-카드뮴 전지(Ni-Cd Battery 또는 니카드 전지)가 쓰였으나, 카드뮴의 유해성 때문에 니켈-메탈 하이드라이드 전지(Ni-MH 전지 또는 니켈-메탈 수소 전지)로 대체되었다. 현대에 대중적으로 쓰이는 충전식 리튬 이온 전지는 1991년에서야 AA형 전지와 C형 전지로 상용화 되었기 때문에 껌전지에 적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시간 듣기엔 용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AA 건전지를 외장으로 붙일수 있는 건전지 확장팩이 있었다.
처음에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전용이었으나 후에는 라디오, 녹음과 같은 여러 기능이 추가되었으며 기기 두께도 얇아졌다. 와우앤플러터 현상을 최소화시킨 최고급 프로용 카세트 워크맨[11]까지 나왔다. 1998년에는 두께를 최소화하고 건전지 수명을 최대로 늘린 충공깽스런 기종 WM-EX9이 나온 적이 있다. 진정 음질을 고려한 마지막 카세트 워크맨은 2000년에 출시된 WM-EX2000. 무산소 동선 재질의 코일 헤드를 쓴 것으로 유명했다. 그 이후에는 음질보다는 어학 기능(속도 조절 기능)이 추가된 기종이 발매되었다. 마지막 로직 데크형 기종은 2003년에 나온 WM-FX700, WM-GX788과 2004년에 나온 WM-EX651이었다. WM-FX290은 2012년 말에 미국에서 단종되었다.
라디오 기능 탑재 기종의 경우 수신 성능이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 WM-GX688은 FM 수신 성능이 엉망인 것으로 악명 높았으며, WM-FX700/FX890은 FM 수신 성능은 쓸만한 수준이었으나 AM 수신 성능이 수준 미달이었다. 사실 소니 라디오의 명성과 다르게, 워크맨은 소니가 아닌 도시바 수신칩을 사용하였고 수신 성능은 그저 그랬다. (라디오 수신 성능은 경쟁사이던 내쇼날 / 파나소닉 쪽이 더 나았다.)
2010년 10월 22일 소니가 카세트 워크맨의 일본에서 재고 소진 후 판매 중지를 선언했다. 다만 중국 위탁 생산 제품인 WM-FX290 모델을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2012년 말까지 발매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선 2013년 초반까지는 찍찍이 시리즈로 명맥을 유지했었다. 2010년 당시 소니코리아 측에서는 어학용으로 카세트 장치의 수요가 나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소니는 2013년 1월 부로 카세트 찍찍이(TCM 시리즈)의 생산을 종료했다. 이로써 카세트 워크맨의 계보는 34년만에 끊기게 되었다. 이는 최근 소니의 잇따른 경영난과 한국을 비롯한 카세트 수요 국가에서의 수요 감소 등이 작용한 듯.
현재 소니 워크맨은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로 발매하고 있으며, 2023년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PMP이기도 하다.
소니의 후기형 카세트 워크맨 기종들은 타사 제품에 비해 수리에 용이한 설계로 알려져 있다.[12]
3.1.1. 대한민국에서의 카세트 워크맨[편집]
한국의 경우, 카세트 워크맨은 1980~90년대에 청소년,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으며, 파나소닉, 아이와와 같은 일본 전자 기업들과 삼성전자, 금성사(현 LG전자), 대우전자(현 위니아전자)와 같은 한국 업체들에서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유사 상품을 경쟁적으로 발매하였다. 삼성전자는 '마이마이', LG전자는 '아하'[13], 대우전자는 '요요'라는 상표명으로 유명했다.
1990년대, 늦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고등학생들의 대표적인 선물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카세트 워크맨을 쓰던 중고등학생들이 꽤 있었다. 휴대용 CD 플레이어는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보다 부피가 더 컸고 CD 음반이 카세트테이프보다 더 비쌌기 때문이며, MP3 플레이어는 비싼 데다(20만원 이상) 용량은 턱없이 작았기(128MB 이하) 때문에 돈을 아끼기 위해 카세트 워크맨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64MB 짜리 MP3 플레이어를 살 돈이면 당시 플래그십 기종이었던 소니 WM-GX688을 사고도 남았다. 또한 교육 목적도 있었는데, 당시 영어 듣기 교재가 대부분 카세트테이프로 나왔던 것이 원인이었다. EBS 파이널 모의고사 듣기 교재가 2006년까지 오로지 카세트테이프로만 제공되었다. 다만 일부 부유층들에게는 MP3, CD, 미니디스크 플레이어가 일찍 보급되었다.
그러나 1998년 새한정보시스템에서 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출시한 이후 2000년대부터 아이리버의 MP3플레이어가 대히트를 치면서 MP3 플레이어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다. 때문에 당시 중~고등학교를 재학하던 학생들은 워크맨 대신에 MP3 플레이어(특히 아이리버 프리즘이나 크래프트 시리즈)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MP3 플레이어 가격이 내려갔을 뿐만 아니라 용량도 늘어나 1GB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였다. 자연스럽게 카세트 워크맨의 수요는 급속히 떨어졌으며, 한국의 여러 제조사들도 일찌감치 생산을 전면 중단하였다. 2020년대 들어 레트로 열풍이 한 차례 불면서 중고 카세트 플레이어 거래가 활발해진 적이 있다.
1990년대, 늦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고등학생들의 대표적인 선물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카세트 워크맨을 쓰던 중고등학생들이 꽤 있었다. 휴대용 CD 플레이어는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보다 부피가 더 컸고 CD 음반이 카세트테이프보다 더 비쌌기 때문이며, MP3 플레이어는 비싼 데다(20만원 이상) 용량은 턱없이 작았기(128MB 이하) 때문에 돈을 아끼기 위해 카세트 워크맨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64MB 짜리 MP3 플레이어를 살 돈이면 당시 플래그십 기종이었던 소니 WM-GX688을 사고도 남았다. 또한 교육 목적도 있었는데, 당시 영어 듣기 교재가 대부분 카세트테이프로 나왔던 것이 원인이었다. EBS 파이널 모의고사 듣기 교재가 2006년까지 오로지 카세트테이프로만 제공되었다. 다만 일부 부유층들에게는 MP3, CD, 미니디스크 플레이어가 일찍 보급되었다.
그러나 1998년 새한정보시스템에서 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출시한 이후 2000년대부터 아이리버의 MP3플레이어가 대히트를 치면서 MP3 플레이어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다. 때문에 당시 중~고등학교를 재학하던 학생들은 워크맨 대신에 MP3 플레이어(특히 아이리버 프리즘이나 크래프트 시리즈)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MP3 플레이어 가격이 내려갔을 뿐만 아니라 용량도 늘어나 1GB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였다. 자연스럽게 카세트 워크맨의 수요는 급속히 떨어졌으며, 한국의 여러 제조사들도 일찌감치 생산을 전면 중단하였다. 2020년대 들어 레트로 열풍이 한 차례 불면서 중고 카세트 플레이어 거래가 활발해진 적이 있다.
3.1.2. 카세트 워크맨 기종 목록[편집]
자세한 내용은 소니 워크맨/카세트 기종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
3.2. 라디오 워크맨[편집]
자세한 내용은 소니/라디오 문서 참고하십시오.
소니의 일부 휴대용 라디오에 워크맨 브랜드가 붙여져서 발매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SRF 시리즈.
3.3. 미니디스크, CD, 네트워크 워크맨[편집]
자세한 내용은 소니 워크맨/MP3P 문서 참고하십시오.
1984년 처음으로 휴대용 CD 플레이어 발매를 하였는데, '디스크맨'이라 불렀다.[14] 이후 개량을 거듭하여 흔들림에도 음악 재생이 덜 끊기도록 만들었는데, 이 기술을 두고 초기에는 ESP, 후기에는 G-Protection이라고 불렀다. 두께도 가면 갈 수록 얇아졌다. 이후 'CD 워크맨'으로 이름을 바꿨고, 플래그십 기종인 E01[15]이 1998년에 발매되었다. 이후 ATRAC 및 MP3 오디오 코덱 규격 재생 기능까지 추가되었고, CD 플레이어 시장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죽어가자 마지막 기종인 D-NE241(2010년 일본 출시)을 끝으로 2014년에 단종되었다.
비디오 CD를 재생할 수 있는 기종과 휴대용 DAT 녹음장치인 'DAT 워크맨'[16], 이른바 '워치맨'이라고 하는 휴대용 아날로그 TV까지 발매한 적 있다.
1992년에 미니디스크를 출시하였다. 당시 CD보다 작은 크기에 압축하지 않은 디지털 음원을 수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니에서 자체 개발한 ATRAC라는 손실 압축 오디오 코덱 규격을 채용하였다. 이후 개량을 거듭하였고, 최후의 기종으로 MZ-RH1를 2006년경에 출시하였는데, 2011년부로 생산 중지되어 미니디스크 워크맨의 명백이 끊긴 상태. 자세한 내용은 미니 디스크 문서 참조.
소니는 MP3 플레이어인 네트워크 워크맨도 제작했는데, 여기서 그리 힘을 쓰지 못했다. 초기 네트워크 워크맨은 당시 아이리버처럼 MP3 파일을 바로 넣는게 아닌 네트워크 워크맨의 음악 관리 프로그램인 "소닉 스테이지"로 미니디스크 오디오 코덱 규격인 ATRAC로 변환해서 넣어야 했는데, 이 프로그램이 자잘한 버그, 발적화 등 사용에 애로사항이 꽃피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소니의 기술력이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디자인이 향수병을 떠올릴만큼 예뻤고 배터리 성능이 매우 좋았다.
소니 네트워크 워크맨의 주요 부진 이유로 특유의 가격 정책과 함께 꼽히는 것이 이 소닉 스테이지였으나 딱 두 가지 쓸만한 점이 있었다. ATRAC 오디오 코덱 규격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과,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막강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하는 자동 태깅 기능이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인터넷상의 음반 DB와 대조해 커버 아트를 포함한 음반 정보를 자동으로 정리해 주는 기능이었다.[17] 2007년에 와서야 비로소 해외 수출판에 소닉 스테이지의 연동 기능을 삭제, 드래그 앤 드롭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일본 내수판에는서는 소닉 스테이지를 고집했고, 꾸준히 버전업도 되었다. 다만 소닉 스테이지 연동이 없어지면서 ATRAC 오디오 코덱 규격과 자동 태깅 기능도 빠지게 되어, 이를 아쉬워하는 골수 소빠들은 일부러 일본 내수판을 구해 쓰기도 했다.
네트워크 워크맨은 한때 아이팟과 비교해 신기술을 먼저 적용하는 편이었다. 네트워크 워크맨에 플래시 메모리가 들어간 것은 1999년이었다. 또한 소니는 중력 센서를 이용해 스포츠 매니징 시스템이 탑재된 S 시리즈라는 특성화 모델을 내놓았는데 2006년의 일이다. 또한 요즘의 이어폰이나 헤드폰에 많이 들어간 기능인 액티브 노이즈 캔슬 기능을 2006년부터 주력급 네트워크 워크맨에 넣기 시작했다.[18] 이것 덕분에 소니 네트워크 워크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골수팬들도 있었다. 다만 액티브 노이즈 캔슬을 위해 번들되어 있는 전용 이어폰만 써야 했는데 이점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워크맨의 가격이 비싸졌기 때문에 당시 반응은 좋지 못했다. 그래서 한동안 해외 발매 기종은 액티브 노이즈 캔슬 기능을 죄다 빼 출시했었다.
플래그십 기종인 X1000 시리즈(2009)도 있으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로 음악 재생에 최적화해 음악 감상 용으로는 그만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비교 대상이 되는 아이팟 터치에 비해 작은 LCD와 근소하게 떨어지는 웹 브라우저 속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니의 비싼 가격 정책 때문에 그다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4. 안드레아스 파벨과 법적 분쟁[편집]
스테레오벨트 | 자신이 개발한 스테레오벨트로 음악을 듣고 있는 파벨 |
독일계 브라질인 발명가인 안드레아스 파벨(Andreas Pavel, 1945~)이 1970년대 중반에 발명하고 1977년에 특허를 낸 스테레오벨트(Stereobelt)가 세계 최초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다. 그는 1970년대 중반에 자신의 발명품을 들고 일본의 야마하를 포함해 ITT, 그룬디히, 필립스 등[19] 여러 회사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하였으나 퇴짜만 맞았다. 그는 이후 1977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1978년에 서독, 영국, 미국, 일본에 특허를 출원했다.
그런데 불과 몇년 뒤인 1979년 소니에서 워크맨이라는 이름으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출시되었고 파벨은 1980년부터 소니에게 로열티를 지불할 것을 요청했다. 긴 협상 끝에 1986년에 소니는 독일에서 판매되는 일부 모델들에 대해서만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하였다. 그러자 파벨은 1989년 영국의 잉글랜드 & 웨일즈 지방 특허 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재판이 계속 질질 끌리면서 그의 재정은 바닥나기 시작했다.[20][21]
결국 파벨은 엄청난 변호사 비용이 들어가게 되었고 자산도 동결되어 신용카드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재판은 4년이나 지속된 끝에 1993년 안드레아스 파벨이 패소했으며, 잉글랜드 & 웨일즈 지방 특허 법원은 안드레아스 파벨이 영국에 낸 스테레오벨트의 특허도 무효화시켰다. # 아카이브 안드레아스 파벨은 이 결정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3년 후인 1996년 항소심 재판부도 1심 재판부의 판단을 인정했다. 파벨은 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각종 비용으로 3백만 달러가 넘는 돈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특허를 출원한 다른 국가들에서도 소송을 걸 것이라고 밝혔다. 그 뒤 2001년 소니는 공동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가 죽은 뒤 돌연 태도를 바꿔 파벨과 협상을 시작했다. 2004년에 합의했는데, 두 당사자의 합의 계약은 기밀이었기 때문에 합의금은 알려지지 않았다. ZDNET의 보도에 의하면 수백만 유로로 추정했다.
뉴욕타임즈 기사, ZDnet기사
그런데 불과 몇년 뒤인 1979년 소니에서 워크맨이라는 이름으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출시되었고 파벨은 1980년부터 소니에게 로열티를 지불할 것을 요청했다. 긴 협상 끝에 1986년에 소니는 독일에서 판매되는 일부 모델들에 대해서만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하였다. 그러자 파벨은 1989년 영국의 잉글랜드 & 웨일즈 지방 특허 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재판이 계속 질질 끌리면서 그의 재정은 바닥나기 시작했다.[20][21]
결국 파벨은 엄청난 변호사 비용이 들어가게 되었고 자산도 동결되어 신용카드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재판은 4년이나 지속된 끝에 1993년 안드레아스 파벨이 패소했으며, 잉글랜드 & 웨일즈 지방 특허 법원은 안드레아스 파벨이 영국에 낸 스테레오벨트의 특허도 무효화시켰다. # 아카이브 안드레아스 파벨은 이 결정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3년 후인 1996년 항소심 재판부도 1심 재판부의 판단을 인정했다. 파벨은 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각종 비용으로 3백만 달러가 넘는 돈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특허를 출원한 다른 국가들에서도 소송을 걸 것이라고 밝혔다. 그 뒤 2001년 소니는 공동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가 죽은 뒤 돌연 태도를 바꿔 파벨과 협상을 시작했다. 2004년에 합의했는데, 두 당사자의 합의 계약은 기밀이었기 때문에 합의금은 알려지지 않았다. ZDNET의 보도에 의하면 수백만 유로로 추정했다.
뉴욕타임즈 기사, ZDnet기사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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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선정 가장 위대한 현대 디자인 100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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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스타로드가 가지고 있던 그 모델.[2] 여담으로는 TPS-L2보다 더 작은 모델이 있다고 한다. 1968 Sony Walkman[3] 소니제 MP3 플레이어에 대해서는 소니 워크맨/MP3P 문서 참조.[4] 이 당시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기기는 '플레이어'라기보다는 '레코더'의 성격과 이미지가 더 강했다. 카세트테이프를 그렇게 작은 기기에서 재생할 만한 일이 많이 없었고, 어딘가에 배치된 커다란 장비에 꽂고 재생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송출하는 식이었으니까. 그리고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음악이라는 것은 일단 대중적인 공간에서, 다같이 여럿이 모여 들으며 즐기는 문화에 가까웠다. 심지어 기존에는 헤드폰만 있었지 귀에 직접 꽂는 이어폰이라는 물건조차 없던 시절이다. 음악의 개인화는 거의 90년대부터나 이루어진 일.[5] 그는 산업 디자이너 출신으로서 SONY 로고 디자인도 그의 작품이다.[6] 2006년에 폐쇄된 소니 EMCS 직영 사이타마 공장의 생산품.[7] 소니 직영 말레이시아 현지 공장의 생산품. 이 공장은 현재에도 소니 MP3 플레이어를 생산하고 있다. 1990년대에 발매된 워크맨 중 싸구려티 나는 플라스틱 재질에, 두껍고 기계식 메커니즘인 기종은 거의 말레이시아제라고 보면 된다.[8] 미니디스크가 출시하여 나름 흥행하던 시점이 CD 플레이어의 전성기와 맞물렸고, CD 플레이어보다 고가의 제품이고 녹음 등의 번거로움으로 CD 플레이어보다는 대중적 인기가 다소 주춤한 실정이었다. 결국 MP3 플레이어가 발달하면서 CD 플레이어와 함께 사장되었다.[9] 당시 소니 창립 33주년이었기에 이에 맞춰 가격을 2/3 수준 인하했다.[10] AA 건전지 두께는 워크맨 본체 두께와 비슷하다.[11] WM-D6C, WM-DD9 등의 DD 모델들이 이에 해당한다.[12] 후기형 올인원 기종인 WM-GX688 기준, 버튼 조작 부 쪽 케이스 나사 5개만 풀면 열리며 바로 벨트를 장착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와 비슷한 기종들도 마찬가지로 벨트 교체를 위해 PCB 납땜 제거를 할 필요가 없다.[13] 1990년대 후반에는 아하프리로 이름을 바꾸고 1997년경 LG전자에서 수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아하프리 제품에 쓰일 모터 제어용 초저전력 집적 회로를 개발한 적이 있다.[14] 모델명은 D-50(D-5).[15] 소니의 휴대용 CD 플레이어 중에 특이하게 CD를 본체 측면에 끼워 넣는 방식을 채택한 모델이다.[16] 2005년경 생산 중단.[17] 소니 뮤직의 음반이 아니더라도 검색은 된다. 정확도가 조금 떨어져서 수작업으로 일일이 찾아 대조해 봐야 하는 게 번거로워서 그렇지(...)[18] 이 기능이 처음으로 들어간 기종은 NW-S700F(일명 바퀴)이다.[19] 필립스는 카세트테이프 규격을 최초로 발명한 기업이다.[20] 애초에 개인이 거대 기업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는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기업이 개인을 상대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소송전을 기약없이 최대한 끌면서 상대의 돈과 시간을 소진시키는 것이다.[21] 또한 안드레아스 파벨의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그것도 세 번이나) 딱 증거물만 훔쳐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