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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관련 틀 |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이준석 李俊錫 | Lee Jun-seo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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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22대 총선 유세 중 동탄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이준석 |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이 당신을 빼놓지 않도록 이준석의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23] |
2. 약력[편집]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의 대표 교사로서 활동하다가 2011년 12월 27일[24] 박근혜 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정계에 입문했다. 2016년 20대 총선, 2018년 2018년 재보궐선거, 2020년 21대 총선에서 모두 노원구 병에 각각 새누리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의 당적을 가지고 출마했고 3번 연속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나 그 과정에서 지상파와 종편 방송에 출연하여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이 당시 3회 낙선으로 얻은 별명이 마이너스 삼선 중진을 줄인 '마삼중'.[25][26][27]
그러다 2021년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여 36세의 나이로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최연소 제1야당 대표가 되었다.[28][29] 임명직, 선출직을 통틀어 공직을 맡은 경력이 전무한 최초의 제1야당 대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2022년 5월 10일 임기가 시작됨에 따라 위 기록들을 그대로 가져온 최초의 집권 여당 당대표가 되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대표로 선거를 이끌기도 했다.
2022년 7월 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성접대 의혹에 대한 증거인멸교사 혐의와 관련하여 '품위유지의무 위반'[30] 으로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의결했다. 이에 따라 당대표 직무가 정지되었고, 2023년 6월에 만료될 당대표 임기 중간에 공백이 생겼다. 그리고 직무정지 기간 중 윤석열-권성동 텔레그램 논란이 발생하면서 당내에서 비대위로의 체제 전환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발생했고, 이에 맞서 이준석은 법원에 연속적으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처음에는 주호영 비대위원장에 대해서는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해 주 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했으나, 이후 국민의힘이 당헌을 개정하면서 또 다시 정진석 비대위원회를 세웠고 이에 대해서는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기각해 새로 출범한 비대위의 효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10월 7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당론[31]에 불복한 가처분 신청과 당 구성원에 대한 모욕적 발언[32] 을 사유로 당원권 정지 기간을 1년 연장하여 총합 1년 6개월 동안 당원권이 정지되었다. 결국 가처분신청 기각과 2차례의 징계를 통해 당대표직 상실이 완전히 확정되었다.
2023년 11월 2일, 공식적으로 국민의힘에서 징계 취소 안건을 의결함에 따라 징계가 해제되었다. # 즉 국민의힘에서는 증거인멸교사와 품위유지위반, 모욕적 발언에 대한 모든 징계를 직접 철회한 것이다.[33]
2023년 12월 27일, 노원구에 위치한 숯불갈비집에서 탈당 기자회견 및 신당 창당 선언을 진행했다. 2024년 1월 20일, 개혁신당의 창당대회에서 대표로 추대되었다.
2024년 2월 9일 새로운미래, 원칙과 상식, 새로운 선택과 4자통합을 했으며 이낙연과 함께 통합신당의 공동대표로 추대되었다.
2024년 2월 20일 새로운미래와의 통합이 결렬되자 공동대표 체제였던 개혁신당의 당대표직을 단독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2024년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탄2신도시가 위치한 경기 화성 을 선거구에 개혁신당 후보로 출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공영운·한정민 후보를 모두 꺾고 42.41%를 득표해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4번째 도전만에 당선[34]되었다.
사전에 오랫동안 표밭을 다지며 연고를 형성한 곳이 아니었음에도, 선거운동 기간 내내 큰 격차로 2위에 그친 모든 여론조사는 물론 3~4%p차 경합열세로 집계된 출구조사까지 한번에 뒤집으며 당선을 확정지은 것. 당세가 미약한 제3정당 후보로서 거대 양당 후보들과 정면으로 겨뤄 단번에 승리한 기록을 세운 덕에 언론과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이때문에 친민주당 지지자, 정확히는 친명 지지자들은 이준석의 당선이 민주당의 대승 분위기를 묻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다 2021년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여 36세의 나이로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최연소 제1야당 대표가 되었다.[28][29] 임명직, 선출직을 통틀어 공직을 맡은 경력이 전무한 최초의 제1야당 대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2022년 5월 10일 임기가 시작됨에 따라 위 기록들을 그대로 가져온 최초의 집권 여당 당대표가 되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대표로 선거를 이끌기도 했다.
2022년 7월 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성접대 의혹에 대한 증거인멸교사 혐의와 관련하여 '품위유지의무 위반'[30] 으로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의결했다. 이에 따라 당대표 직무가 정지되었고, 2023년 6월에 만료될 당대표 임기 중간에 공백이 생겼다. 그리고 직무정지 기간 중 윤석열-권성동 텔레그램 논란이 발생하면서 당내에서 비대위로의 체제 전환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발생했고, 이에 맞서 이준석은 법원에 연속적으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처음에는 주호영 비대위원장에 대해서는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해 주 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했으나, 이후 국민의힘이 당헌을 개정하면서 또 다시 정진석 비대위원회를 세웠고 이에 대해서는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기각해 새로 출범한 비대위의 효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10월 7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당론[31]에 불복한 가처분 신청과 당 구성원에 대한 모욕적 발언[32] 을 사유로 당원권 정지 기간을 1년 연장하여 총합 1년 6개월 동안 당원권이 정지되었다. 결국 가처분신청 기각과 2차례의 징계를 통해 당대표직 상실이 완전히 확정되었다.
2023년 11월 2일, 공식적으로 국민의힘에서 징계 취소 안건을 의결함에 따라 징계가 해제되었다. # 즉 국민의힘에서는 증거인멸교사와 품위유지위반, 모욕적 발언에 대한 모든 징계를 직접 철회한 것이다.[33]
2023년 12월 27일, 노원구에 위치한 숯불갈비집에서 탈당 기자회견 및 신당 창당 선언을 진행했다. 2024년 1월 20일, 개혁신당의 창당대회에서 대표로 추대되었다.
2024년 2월 9일 새로운미래, 원칙과 상식, 새로운 선택과 4자통합을 했으며 이낙연과 함께 통합신당의 공동대표로 추대되었다.
2024년 2월 20일 새로운미래와의 통합이 결렬되자 공동대표 체제였던 개혁신당의 당대표직을 단독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2024년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탄2신도시가 위치한 경기 화성 을 선거구에 개혁신당 후보로 출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공영운·한정민 후보를 모두 꺾고 42.41%를 득표해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4번째 도전만에 당선[34]되었다.
사전에 오랫동안 표밭을 다지며 연고를 형성한 곳이 아니었음에도, 선거운동 기간 내내 큰 격차로 2위에 그친 모든 여론조사는 물론 3~4%p차 경합열세로 집계된 출구조사까지 한번에 뒤집으며 당선을 확정지은 것. 당세가 미약한 제3정당 후보로서 거대 양당 후보들과 정면으로 겨뤄 단번에 승리한 기록을 세운 덕에 언론과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이때문에 친민주당 지지자, 정확히는 친명 지지자들은 이준석의 당선이 민주당의 대승 분위기를 묻었다고 평가한다.
3. 생애[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
3.1. 국민의힘 대표[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국민의힘 대표 문서 참고하십시오.
3.2. 개혁신당 시절[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생애/개혁신당 문서 참고하십시오.
4. 사상 및 견해[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사상 및 견해 문서 참고하십시오.
4.1. 개혁보수[편집]
자세한 내용은 개혁보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5. 대권주자로서[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 문서 참고하십시오.
6. 다른 정치인과의 관계[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다른 정치인과의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
7.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
8. 별명[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별명 문서 참고하십시오.
9. 방송 활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방송 문서 참고하십시오.
10. 여담[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여담 문서 참고하십시오.
11. 저서[편집]
12. 어록[편집]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이 당신을 빼놓지 않도록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후보 슬로건 |
비상사태에 놓인 것은 보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국민의힘 탈당 연설문 中 |
대국민선언![37] 제가 절대 한나라당의 비례대표의원이나 이런 것을 하지 않을 것이고, 현실 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없습니다. |
여러분.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어요. 2013년 5월 23일 EBS '용서' '진보 논객 진중권과 젊은 보수 이준석' 편 중에서# |
당신이 해고되면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다는 말에 누가 동의해주겠어요?[38] 내가 저번에 느낀 건 아름다운 패배가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거야. |
의미를 만드는 게.. 목적이지! |
(다른 당들이) 국익을 고려해서 지지할 수 없다? 민주주의라는 절대적 가치에 조건을 달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자가 아니죠. 홍콩 민주화 운동 참여 인터뷰 중 |
통합의 전제 조건은 간단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감이 있으십니까?"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선한 사람이고, 애국자라는 것을 입 밖으로 내어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우리는 배려를 가장한 격리와 배제가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학생들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며 선심 쓰는 척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학교에서 뒤처진 학생이 다시 제 궤도에 복귀하기 힘든 것이 현재 저소득층 학생들이 겪는 교육의 현실이라면 우리는 그들이 다시 경쟁할 수 있도록 끌어올려 주어야 합니다. |
통일은 해야 된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되는 형태의 통일[39] 보다는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하는 다른 형태의 통일, 소위 말하는 흡수통일에 관심이 있다.[40] 우리나라 체제로 통일을 해야지,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뭘 배우겠나? 중앙일보 인터뷰 # |
학생들이 물고 태어난 수저의 색깔 때문에 꿈을 지워 나가야 하는 사회는 공정하지 못합니다. 경쟁의 출발선에 서기 전까지 아이들이 부족함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공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입니다. |
어떤 선동가가 교육의 기회를 잃어가는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나중에 그들이 뒤처졌다는 이유만으로 매달 10만 원을 주는 것이 복지 정책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저는 완강하게 거부하겠습니다. 그 10배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그들을 다시 공정한 경쟁의 장으로 복귀시킬 수 있도록 국가가 교육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해법입니다. |
2021년 6월 11일을 분수령으로 삼읍시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 사이에서 상호 간의 논리적인 비판이나 진심 어린 지적이 아닌, 불필요한 욕설과 음모론, 프레임 씌우기 등의 구태에 의존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맞서 주십시오. 저는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이 있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앞으로는 우리는 수권세력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관대해져야 하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대선후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욕부터 하고 시작하는 야만은 사라져야 합니다. 국민의힘 당대표 수락 연설 중에서 |
제가 말하는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우리의 변화에 대한 도전은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으로 비춰질 것이고, 이 변화를 통해 우리는 바뀌어서 승리할 것입니다. |
생각해보십시오. 비빔밥의 재료를 모두 갈아서 밥 위에 얹어준다면 그것은 우중충한 빛일 것이고 먹는 느낌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우리가 비빔밥의 고명들을 갈아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스테레오타이핑, 즉 "다움”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
그런 식의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당 주변에 있다는 것은 선거의 필패를 의미합니다. (중략) 그게 다 후보의 권위를 빌어가지고 호가호위하는 것이고, 저는 그런 실패한 대통령 후보, 실패한 대통령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겠습니다. 당무 거부 사건 이후 JTBC 인터뷰 |
잘못된 것에 대해 당 대표니까 꾹 참고 한마디도 해선 안 된다는 게 보수의 문화라면 바뀌어야 되는 것이다. 선대위원장 사퇴 이후 동아일보 인터뷰. |
지금 우리 후보에게서 이탈한 표의 대부분은 203040표인 걸 알 겁니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지 모릅니다. "이준석이 2030을 인질 삼아 가지고 본인의 정치적 목표를 실현한다"고요. "지방선거에서 이준석이 득세하기 위해서 이런 난동을 부리고 있다."라고 표현하는 유튜브들에게 제가 반박하겠습니다. 제가 단 한 번이라도 제가 경선이 아닌 방식으로 사람을 꽂아놓은 적이 있습니까? 제가 당대표로서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을 제가 공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행사한 적이 있습니까? 제가 지방선거에 대해서 시험을 치겠다는 것이 어떻게 제 사람을 꽂아놓고 지방선거를 장악하겠다는 얘기겠습니까? 우리가 민주당보다 못한 게 뭡니까? 이재명이 탈모 공약 만들었다고 해서 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우리는 조금 더 국민을 생각하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내지 못했던 겁니다. 이종성 의원님이랑 저랑 고민하던 장애인 관련 공약들, 이런 것들이 더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그런 공약들입니다. 송언석 의원님 준비하고 계시던 그 작전, 민주당에 무슨 쌀집 아저씨가 가고 뭐 한다는 우리가 우월한 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 우리가 단결돼가지고 선거 승리를 가겠다는 그런 마음만 우리가 모을 수 있으면 내일부터 치고 올라갈 수 있고 저는 오늘 꼭 그런 회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2022년 1월 6일. 국민의힘 의원총회 모두발언 중[41] |
제가 흑화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십시오. 제가 흑화하면 그것도 재밌을 겁니다, 진짜. 저같이 여론 선동 잘하는 사람이 흑화해 가지고 그러고 다니면 어떻게 되는지 기대해도 될 겁니다. |
예전에 대통령실에서 그런 텔레그램 문자에 대해서 이 대표가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해서 오해하지 않고 정확하게 알아들었으니 오해했다고 오해하지 말라 고(했다) 2022년 8월 13일, 기자회견에서 |
저는 정치에서 덩어리의 크고 작음에 따라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신념과 원칙을 지킨 사람이 이기는 결말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지난 1년 당 대표를 하면서 과거의 방식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답습하는 것에서는 제가 정치를 하는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싸워왔습니다. 저도 정치를 하면서 언젠가는 현실과의 타협이나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을 더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날이 오늘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날이 너무 일찍 오기도 바라지 않습니다. 2022년 8월 23일,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재판부에 낸 자필 탄원서에서# |
대한민국 시민 여러분, 여러분 모두를 미래의 정치로 초대하겠습니다. 2023년 12월 27일, 국민의힘 탈당 및 신당 창당 기자회견에서# |
13. 선거 이력[편집]
역대 선거 벽보 |
역대 후보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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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평가[편집]
이 문단은
2024년 4월 이전까지, 중진급 인사이지만 정작 본인 선거는 3전 3패를 기록하는 바람에 마삼중, "-3"이라 조롱받기도 했다. 그러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3지대 정당 소속으로 거대 양당 후보와 경쟁하는 3자 구도를 뚫고 험지에서 당선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그간의 조롱을 가뿐하게 떨쳐내면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했다.[47]
과거의 낙선들을 이를 비호하는 입장에서는 상계동 자체가 보수 정당에 불리한 험지고 이준석이 출마한 3번의 선거 모두 소속 정당[48]이 각종 악재가 많았던 탓에 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2016년 20대 총선은 새누리당 내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결국 야당이 1당을 차지하는 결과가 나온 선거였고 무엇보다도 아직 안철수 신드롬이 건재하던 시절 안철수가 노원병 재선에 나섰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싸움이었다. 이준석을 지원하러 온 김무성 대표가 이준석보다 안철수를 더 많이 언급한 끝에 '안철수'를 뽑아달라는 말실수를 할 정도였고, 그 전에 노원병에서 당선되었던 노회찬도 노원병 탈환을 고려하다가 포기하고 창원으로 내려갈 정도로 상대가 강했다.[49] 본인이 나중에 술회하길 3자대전이 벌어지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는데 노회찬의 창원행으로 무산되면서 맥없이 졌다고 한다.
과거의 낙선들을 이를 비호하는 입장에서는 상계동 자체가 보수 정당에 불리한 험지고 이준석이 출마한 3번의 선거 모두 소속 정당[48]이 각종 악재가 많았던 탓에 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2016년 20대 총선은 새누리당 내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결국 야당이 1당을 차지하는 결과가 나온 선거였고 무엇보다도 아직 안철수 신드롬이 건재하던 시절 안철수가 노원병 재선에 나섰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싸움이었다. 이준석을 지원하러 온 김무성 대표가 이준석보다 안철수를 더 많이 언급한 끝에 '안철수'를 뽑아달라는 말실수를 할 정도였고, 그 전에 노원병에서 당선되었던 노회찬도 노원병 탈환을 고려하다가 포기하고 창원으로 내려갈 정도로 상대가 강했다.[49] 본인이 나중에 술회하길 3자대전이 벌어지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는데 노회찬의 창원행으로 무산되면서 맥없이 졌다고 한다.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지지율 80%을 노리던 시절이라 역시 사정이 좋지 못했다. 이 때 이준석 후보는 자유한국당의 강연재 후보를 제치고 2등을 기록했는데, 이 당시 바른미래당은 공천 문제를 두고 친안, 국민의당 출신과 친유, 바른정당 출신 간의 갈등이 극심했고[50] 탄핵으로 망한 자유한국당은 물론 민주평화당보다도 더 망하는 대참사를 낸 상황이었다. 2등이라도 기록한 바른미래당 후보는 이준석이 거의 유일했기 때문에 오히려 선전한 편이다.
2020년 21대 총선 때는 비록 낙선했지만 노원병의 유일한 보수당 당선자인 홍정욱 후보의 기록을 제치고 44.36% (vs 53.1%)의 득표율을 기록해 역대 보수정당 후보들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득표율을 달성했다.[51] 이 때도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한 정부 지원론의 우세가 강했던 데다 소속 정당인 미래통합당은 강성 지지자들에게 휘둘리거나 각종 막말 논란을 일으키는 삽질만 거듭하면서[52] 후보 개개인에게 악재만 떠안겼다. 결국 해당 선거는 민주당이 180석을 가져가며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맞이했고 미래통합당 간판 또한 내려갔다. 옆 지역구인 노원 갑과 노원 을에서는 민주당 후보와 통합당 후보의 득표율 차이가 각각 약 18%p, 26%p였다. 이준석과 김성환의 득표율 차이는 9%p.
노원구 병(상계동) 지역구가 얼마나 험지냐면, 노원병 선거구가 분리신설 된 2004년 총선 이래 치러진 7번의 선거에서 보수정당 출신이 당선된 경우는 보수정당이 전국적으로 압승했던 2008년 18대 총선의 홍정욱(43.10%)이 유일하며 이 때도 노회찬(40.05%)과 민주당의 김성환[53](16.26%)으로 표가 나뉘었음에도 노회찬과 불과 3%p 차이로 당선되었다. 이 정도로 노원 병은 보수정당에 불리한 험지이다.
결국 선거에서 계속 고배를 마신 데에는 지역구의 특성과 소속 당의 여러 악재가 크게 작용했다.
한편 지금까지 노원구 병 지역구에 출마한 세 번의 선거 모두 각자 다른 당적 소속으로 출마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에는 새누리당,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는 바른미래당, 2020년 21대 총선 당시에는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개혁신당 소속으로 출마하며 이러한 기록은 이어졌다.[54] 다만 정당이 자주 바뀐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시대적 상황이 있었고, 보수정당에서만 활동했다는 점에서 철새 정치인으로 보긴 어렵다.[55] 정확히는 창당에 참여한 적은 3번(바른정당, 새로운보수당, 개혁신당)으로 많은 편이나, 진영을 이리저리 옮겨다닌 적은 없다.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보궐선거에서 종로 출마설이 돌기도 했는데, 실제로 현직 당대표가 정치 1번가인 종로에 있으면 차기 대선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출마 제안이 있었지만 본인이 바로 거절하면서 차기 총선 또한 상계동에 출마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이후 22대 총선을 앞둔 2024년 3월, 경기 화성시 을 출마를 선언하여 지역구를 옮기게 되었다.[56]
공식선거일정 돌입 초반 화성시 을 지역구 주민을 대상으로 한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공영운 후보가 40%가 넘는 지지율로 압도적 1위였고 이준석과 국민의힘 한정민 후보는 20%를 넘을까말까하는 확고한 1강 2중 체제였으나, 공영운 후보의 부동산 증여논란과 토론매너 등으로 인해 결국 선거 전 마지막 여론조사 공표에서는 한자릿수 격차로 줄어든 결과를 보게 되고, 선거종료 후 출구조사에서는 3% 정도의 오차범위 내에서 공영운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실제 개표 결과 오히려 이준석 후보가 공영운 후보를 3% 차이로 역전하여 당선, 4번의 도전끝에 드디어 국회의원 금뱃지를 달게 되었다.[57][58]
참고로, 22대 총선 지역구 당선자 중, 양당소속이 아닌 후보는 새로운미래의 김종민과 진보당의 윤종오, 이준석 셋뿐이다. 심지어 이준석을 제외한 두 후보의 지역구에는 각각 공천 취소, 야권 단일화를 이유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 결국 제 3지대에서 양당 후보들과의 3파전을 통해 당선된 후보는 이준석이 유일하다.
또한, 대표적 경합지이며 양당제와 사표 심리가 특히나 강한 수도권[59]에서 오로지 본인의 능력과 개인기만 가지고 당선되었다. 이 선거에서의 승리로 본격적으로 대권후보로 평가하는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
2020년 21대 총선 때는 비록 낙선했지만 노원병의 유일한 보수당 당선자인 홍정욱 후보의 기록을 제치고 44.36% (vs 53.1%)의 득표율을 기록해 역대 보수정당 후보들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득표율을 달성했다.[51] 이 때도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한 정부 지원론의 우세가 강했던 데다 소속 정당인 미래통합당은 강성 지지자들에게 휘둘리거나 각종 막말 논란을 일으키는 삽질만 거듭하면서[52] 후보 개개인에게 악재만 떠안겼다. 결국 해당 선거는 민주당이 180석을 가져가며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맞이했고 미래통합당 간판 또한 내려갔다. 옆 지역구인 노원 갑과 노원 을에서는 민주당 후보와 통합당 후보의 득표율 차이가 각각 약 18%p, 26%p였다. 이준석과 김성환의 득표율 차이는 9%p.
노원구 병(상계동) 지역구가 얼마나 험지냐면, 노원병 선거구가 분리신설 된 2004년 총선 이래 치러진 7번의 선거에서 보수정당 출신이 당선된 경우는 보수정당이 전국적으로 압승했던 2008년 18대 총선의 홍정욱(43.10%)이 유일하며 이 때도 노회찬(40.05%)과 민주당의 김성환[53](16.26%)으로 표가 나뉘었음에도 노회찬과 불과 3%p 차이로 당선되었다. 이 정도로 노원 병은 보수정당에 불리한 험지이다.
결국 선거에서 계속 고배를 마신 데에는 지역구의 특성과 소속 당의 여러 악재가 크게 작용했다.
한편 지금까지 노원구 병 지역구에 출마한 세 번의 선거 모두 각자 다른 당적 소속으로 출마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에는 새누리당,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는 바른미래당, 2020년 21대 총선 당시에는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개혁신당 소속으로 출마하며 이러한 기록은 이어졌다.[54] 다만 정당이 자주 바뀐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시대적 상황이 있었고, 보수정당에서만 활동했다는 점에서 철새 정치인으로 보긴 어렵다.[55] 정확히는 창당에 참여한 적은 3번(바른정당, 새로운보수당, 개혁신당)으로 많은 편이나, 진영을 이리저리 옮겨다닌 적은 없다.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보궐선거에서 종로 출마설이 돌기도 했는데, 실제로 현직 당대표가 정치 1번가인 종로에 있으면 차기 대선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출마 제안이 있었지만 본인이 바로 거절하면서 차기 총선 또한 상계동에 출마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이후 22대 총선을 앞둔 2024년 3월, 경기 화성시 을 출마를 선언하여 지역구를 옮기게 되었다.[56]
공식선거일정 돌입 초반 화성시 을 지역구 주민을 대상으로 한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공영운 후보가 40%가 넘는 지지율로 압도적 1위였고 이준석과 국민의힘 한정민 후보는 20%를 넘을까말까하는 확고한 1강 2중 체제였으나, 공영운 후보의 부동산 증여논란과 토론매너 등으로 인해 결국 선거 전 마지막 여론조사 공표에서는 한자릿수 격차로 줄어든 결과를 보게 되고, 선거종료 후 출구조사에서는 3% 정도의 오차범위 내에서 공영운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실제 개표 결과 오히려 이준석 후보가 공영운 후보를 3% 차이로 역전하여 당선, 4번의 도전끝에 드디어 국회의원 금뱃지를 달게 되었다.[57][58]
참고로, 22대 총선 지역구 당선자 중, 양당소속이 아닌 후보는 새로운미래의 김종민과 진보당의 윤종오, 이준석 셋뿐이다. 심지어 이준석을 제외한 두 후보의 지역구에는 각각 공천 취소, 야권 단일화를 이유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 결국 제 3지대에서 양당 후보들과의 3파전을 통해 당선된 후보는 이준석이 유일하다.
또한, 대표적 경합지이며 양당제와 사표 심리가 특히나 강한 수도권[59]에서 오로지 본인의 능력과 개인기만 가지고 당선되었다. 이 선거에서의 승리로 본격적으로 대권후보로 평가하는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
14. 소속 정당[편집]
소속 | 기간 | 비고 |
2011 - 2012 | 정계 입문[60] | |
2012 - 2016 | 입당[61] | |
2016 - 2017 | 탈당[62] | |
2017 - 2018 | 창당 | |
2018 - 2020 | 합당[63] | |
2020 | 탈당[64] | |
2020 | 창당 | |
2020 | 합당[65] | |
2020 - 2023 | 당명 변경 | |
2023 - 2024 | 탈당[66] | |
2024 | 창당 | |
2024 - 현재 | 합당[67] |
2011년 한나라당에서 무소속 신분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12년 넘게 보수 성향 정치인으로 활동해왔지만 정작 민자당 직계 보수정당에는 9년도 채 있지 않았다. 2016년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탈당해 비박계가 창당한 제3지대 정당,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에 입당했고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에서 유승민과 정치를 함께하였다. 21대 총선 전 보수 대통합으로 미래통합당이 창당되며 민정당 직계 정당에 복당, 당명을 바꾼 국민의힘의 초대 당대표로 선출 되었으나 윤석열 대통령, 친윤계와의 당내 갈등과 윤리위 징계 등으로 인해 22대 총선 전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다시 제3지대 정당인 개혁신당을 창당해 마침내 국회에 입성했다.
15. 참여 음반[편집]
1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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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에 따른 전입을 성동구 성수동에서 한 것으로 보이며, 본인의 사실상 고향인 노원구 상계동에는 갓난아기 시절인 1986년에 전입했다(출처: 약력사항).[2]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동탄2신도시 신동에 전세 계약을 했다고 밝혔다.[3] 노원구 병 당협위원장 시절부터 거주했으며, 화성시 을로 지역구를 옮긴 현재도 서울에 일정이 있을 경우 상계동 자택에 머무른다.[4] 광주 이씨 종친회 소식(2015)과 광주 이씨 회보 2016년 4월호에서 언급되었다. 좌통례공파(左通禮公派, 칠곡파)-현감공파(縣監公派)-첨정공후(僉正公后) 22세 ○석(錫)·○진(鎭) 항렬이며, 아버지 이수월(李壽月)은 21세 수(壽)○ 항렬로서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같다. 대종회(표준) 돌림자와는 조금 다른데 대종회에서는 21세에 ○재(載)를, 22세에 종(鐘)○을 쓴다. 고로 이준석은 국민의힘 전 정책위의장 이종배 의원과 같은 항렬이다.[5] 개혁신당 당원 정보 DB시스템 운영/관리 업무를 수탁받은 업체.[6] 지지자들이 싸인 요청을 할 때는 주로 이 서명을 해준다.[7]
윤석열이 국민의힘 입당 후 치맥 회동 때 해당 싸인을 한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8] 이름이 '내부총질하는 당 대표'로 표기되어 있다.[9] 1958년 1월 22일생.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76학번)를 졸업하고 쌍용투자증권 국제금융부 과장, 싱가포르사무소장, 인도네시아합작법인개설준비위원장, 굿모닝신한증권 신당지점장, 강남지점장, 국제영업부장, 감사를 지냈고 퇴직 후 하이드로젠 파워 법정관리인을 역임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과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며 서로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둘 다 빠른 생일이라 57년생들과 같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77학번이 아닌 76학번인 것도 그 이유다.[10] 金香子. 경주 김씨로, 아버지는 김오연(金五椽)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출신이며 세종대학교를 졸업했다. 안동여자고등학교 가정교사였다.[11] 정신과 전문의며 이재명의 형 이재선을 치료한 적이 있다.[12] 아래 역대 선거 벽보에도 나오듯이 온곡초등학교에 입학해 4학년 때까지 재학하다가 아버지의 해외 발령으로 싱가포르를 거쳐 최종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구체적인 학교명은 밝혀지지 않았다.[13] 복합전공(Joint Concentration)[14] # 산업기능요원은 소집해제 후 육군 예비역 이등병으로 편입된다.[15] 병무청 공직자등의 병역사항열람 참조.[16] 어린 시절이었던 1994년에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안철수 전 대표(하상 바오로)와 같은 성당에 다니고 있었으나 안철수는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분당구 갑에 출마 선언을 하면서 판교로 이사를 갔고 동판교 성당으로 전입(가톨릭에서는 교구제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주민등록지에 따라 소속되어 다니는 성당이 옮겨진다)했다.[17] 안철수와 공동으로 지역위원장을 맡았다.[18] 직무정지 후 짝수해 8월에 임기가 만료되어 퇴직했다.[19] 2022년 7월 8일부터 6개월 당원권 정지로 인한 직무정지였으나, 2022년 8월 9일자로 비대위가 수립되며 자동으로 퇴임처리되었으며, 이와 관련해 법적 분쟁 끝에 법원이 비대위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실상 대표직 박탈 처분되었다.[20] 재임기간 : 2024년 1월 20일 ~ 5월 19일[21] 2023년 이후에는 제1 의석수를 가진 야당 대표 이재명과 혼동의 여지가 있어 사실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22] 친준, 이낙연 대표와의 낙준연대 등의 사용례가 있다.[23] 정확힌 대한민국 인구주택총조사의 2010년 표어로,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나서며 표어로 내세웠고, 화성시 을 출마때는 문구를 동탄으로 바꿔서 선거벽보에 인용했다.[24] 정확히 12년 뒤 똑같은 날에 국민의힘을 탈당했다.[25] 인터뷰 할때 간혹 마삼중이라는 별명에 대해 진행자가 물을 때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게 대부분, "3번 낙선하면 0선이지 왜 마이너스 3입니까?"라는 식의 반응으로 일갈한다.[26] 더불어 2016 총선과 2018 재보궐은 같은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이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3이 아니라 -2로 계산하는게 맞다.[27] 현재는 이렇다할 대표적인 별명이 없다.[28] 원내정당 대표들 가운데는 기본소득당의 신지혜 대표가 1987년생으로 가장 어리긴 하다. 전체 정당 가운데에서는 미래당의 이성윤 전 대표가 당선 당시 23세, 여성의당의 윤서연 전 대표가 당선 당시 19세였다. 이준석은 교섭단체로 한정했을 때의 최연소 대표. 그렇지만 이준석의 당대표 당선이 이슈가 되었던 이유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원내정당과 원외정당,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데다가 국민의힘은 고만고만한 중소정당이 아니라 의석수 100석이 넘는 제1야당이기 때문이다.[29] 당의 대표는 아니지만 최연소 지도자의 경우 박지현이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되며 깨지게 되었다. 그러나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 박지현과 달리 이준석은 전당대회에서 당원과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선출되었고 20대 대선을 승리한 경력도 있는 대표이므로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30] 이후 증거인멸교사 혐의는 경찰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이 났다. 다만 성접대 의혹 자체는 공소시효 만료로 불송치된 것이고 무고죄는 송치되어 수사중이기에 아직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고는 할 수 없다.[31] 즉, 본인의 해임과 비대위 전환[32]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내가 양의 머리를 들고 개고기를 팔았다라고 말한 것이 가장 문제 되었다.[33] 본래 지도부에서는 징계 취소가 아닌 사면 혹은 대사면이라는 표현을 쓰며 징계를 해제하겠다고 했으나, 징계 당사자들 모두가 '죄지은 사람이 받는 게 사면인데 왜 내가 사면을 받아야 하나', '당헌당규에도 사면이라는 표현은 없고 징계 취소가 공식 명칭'이라고 극렬하게 반발했고, 이에 지도부에서 사면이라는 용어를 쓰는 대신 징계 취소를 한다고 의결했다.[34] 해당 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낀 3자 구도를 뚫고 당선된 유일한 사례다. 군소정당 후보 당선 사례는 세종특별자치시 갑의 김종민(새로운미래)과 울산 북구의 윤종오(진보당)도 있지만 해당 지역구는 각각 공천 취소와 야권 단일화로 인해 민주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자전으로 치러졌다.[번역] [공저] [37] 방송편집자가 임의로 자막으로 띄운 문구가 아니라, 이준석이 방송에서 두 손을 펴 보이면서 직접 말했다.[38] 당 내에서 이준석을 '정리해고' 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등판하는 어록. 본인 역시 이 철학대로 움직인다.[39] 북한 체제가 유지되는 형식의 통일[40] 이준석은 저서에서도 북한 붕괴론에 의한 통일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41] 참고로 이날 1만자 가량의 발언을 원고 없이 30분간 연설했다.[42] 이 발언 한 달 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 사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수립 논란이 있었고, 그 후 이준석이 가처분을 다수 신청하고 장외 여론전을 이어가자, 언론에서도 "예고대로 '흑화'하기 시작했다."라는 평이 나왔다.[43] 2017. 4. 17. 전임자 안철수 사퇴.[44] 4번의 선거 중 첫 당선, 22대 총선 최저 득표율 당선[45] 2018년 재보궐선거 당시의 사진을 다시 사용했다. 이 사진은 2021년 이준석이 당 대표로 선출된 국민의힘 전당 대회에서도 포스터에 사용되었다.[46] 옆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벽보로 사용했다. 또한 모든 선거공보 내용을 자필로 작성해 화제가 되었다.[47] 해당 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낀 3자 구도를 뚫고 당선된 유일한 사례다. 22대 총선에서 또 다른 군소정당 후보의 지역구 당선 사례는 세종특별자치시 갑의 김종민(새로운미래)과 울산 북구의 윤종오(진보당)도 있지만 해당 지역구는 민주당 후보가 각각 공천 취소/야권 단일화로 없었다. 게다가 화성시 을은 21대 총선 당시 모든 행정동에서 민주당이 63% 이상을 득표한 민주당의 텃밭이다.[48] 새누리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49] 그래서 당에서 손수조처럼 자객공천으로 써먹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낙선으로 인한 타격은 없었고 오히려 이준석의 주가만 더 높아졌다. 이준석은 이후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이재명의 출마가 기정사실화되자 '맞춤형 자객' 드립을 치면서 해당 지역에 여러 번 출마했던 윤형선을 그대로 내보내 자신도 똑같이 써먹는다.[50] 이준석 본인도 이때 노원병에서 공천받으려고 했는데, 안철수 측에서는 이준석을 컷오프시키고 자기 측근이었던 김근식을 꽂아넣으려고 했다가 불발되었다. 이 일로 인해 지금까지도 이준석과 안철수 간의 관계는 매우 나쁘다.[51] 홍정욱 후보보다 만표를 더 받았다. 그래서 낙선 후 지금까지 노원병에서 한 번도 보수정당을 뽑아보지 않았던 10,000표가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다고 감사를 표했다.[52] 추후에 회고하길 캠프 내부 여조에서는 미세하게 앞서고 있었는데 차명진 막말사건이 터지면서 도로 역전당했다고 한다.[53] 현직 노원 병 국회의원. 이준석을 낙선시킨 그 사람이다. 처음에 낙선 시킨 사람은 당시 국민의당(2016년) 소속이었던 안철수다.[54] 다만 탈당하지 않았어도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 기록은 유지되었을 것이다.[55] 가령 이낙연의 경우 새로운미래 창당 이전 기준 민주당계 정당들의 통합정당인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을 위한 탈당 1번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0개의 당적을 가지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2010년대 초반에는 민주당계 정당이,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에는 보수 정당이 계속해서 당명을 바꾸었기 때문에 탈당 및 복당이 없는 정치인 중에서도 수많은 당적을 가진 정치인들이 많다.[56] 가장 큰 이유는 선거구 재편으로 노원병 지역구가 폐지되어 본인의 계획과 차이가 생겨서 그렇다고 한다.[57] 사실 이준석은 노원구와 상성이 영 좋지 않았을 뿐이지 선거 역량이 없었던 것은 전혀 아닌데다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경험을 얹은 실력을 바탕으로 지역구를 바꿔 출마하여 바로 첫 당선에 성공했다.[58] 물론 상대 후보들인 한정민, 공영운 후보 모두 정치 신인이었고, 특히 공영운 후보의 경우 선거 직전 여러가지 논란으로 지지율에 타격을 입는 등 운적인 요소가 아예 없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공영운급 정도의 논란이 있었던 김준혁, 양문석, 정청래 등은 잘만 당선됐을뿐더러 어찌됐든 거대 정당 소속 후보가 아닌 이준석 이름 석자만으로 본인이 승부를 걸어볼만한 지역구를 과감히 선택하여 도전한 끝에 당선됐기 때문에 이준석 개인의 정치적 역량은 충분히 입증해냈다고 볼 수 있다.[59] 이 때문에, 제3지대의 대부분은 영남,호남,충청 등 지역기반을 업고 성장했다.[60] 처음 한나라당,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활동했을 때는 당적이 없는 상태였다. #[61] 5월 전당 대회를 앞두고 정식 입당. #[62]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탈당[63] 국민의당과 신설 합당.[64]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65] 자유한국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66] 개혁신당 창당을 위한 탈당[67] 한국의희망과 신설합당
윤석열이 국민의힘 입당 후 치맥 회동 때 해당 싸인을 한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8] 이름이 '내부총질하는 당 대표'로 표기되어 있다.[9] 1958년 1월 22일생.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76학번)를 졸업하고 쌍용투자증권 국제금융부 과장, 싱가포르사무소장, 인도네시아합작법인개설준비위원장, 굿모닝신한증권 신당지점장, 강남지점장, 국제영업부장, 감사를 지냈고 퇴직 후 하이드로젠 파워 법정관리인을 역임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과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며 서로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둘 다 빠른 생일이라 57년생들과 같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77학번이 아닌 76학번인 것도 그 이유다.[10] 金香子. 경주 김씨로, 아버지는 김오연(金五椽)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출신이며 세종대학교를 졸업했다. 안동여자고등학교 가정교사였다.[11] 정신과 전문의며 이재명의 형 이재선을 치료한 적이 있다.[12] 아래 역대 선거 벽보에도 나오듯이 온곡초등학교에 입학해 4학년 때까지 재학하다가 아버지의 해외 발령으로 싱가포르를 거쳐 최종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구체적인 학교명은 밝혀지지 않았다.[13] 복합전공(Joint Concentration)[14] # 산업기능요원은 소집해제 후 육군 예비역 이등병으로 편입된다.[15] 병무청 공직자등의 병역사항열람 참조.[16] 어린 시절이었던 1994년에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안철수 전 대표(하상 바오로)와 같은 성당에 다니고 있었으나 안철수는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분당구 갑에 출마 선언을 하면서 판교로 이사를 갔고 동판교 성당으로 전입(가톨릭에서는 교구제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주민등록지에 따라 소속되어 다니는 성당이 옮겨진다)했다.[17] 안철수와 공동으로 지역위원장을 맡았다.[18] 직무정지 후 짝수해 8월에 임기가 만료되어 퇴직했다.[19] 2022년 7월 8일부터 6개월 당원권 정지로 인한 직무정지였으나, 2022년 8월 9일자로 비대위가 수립되며 자동으로 퇴임처리되었으며, 이와 관련해 법적 분쟁 끝에 법원이 비대위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실상 대표직 박탈 처분되었다.[20] 재임기간 : 2024년 1월 20일 ~ 5월 19일[21] 2023년 이후에는 제1 의석수를 가진 야당 대표 이재명과 혼동의 여지가 있어 사실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22] 친준, 이낙연 대표와의 낙준연대 등의 사용례가 있다.[23] 정확힌 대한민국 인구주택총조사의 2010년 표어로,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나서며 표어로 내세웠고, 화성시 을 출마때는 문구를 동탄으로 바꿔서 선거벽보에 인용했다.[24] 정확히 12년 뒤 똑같은 날에 국민의힘을 탈당했다.[25] 인터뷰 할때 간혹 마삼중이라는 별명에 대해 진행자가 물을 때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게 대부분, "3번 낙선하면 0선이지 왜 마이너스 3입니까?"라는 식의 반응으로 일갈한다.[26] 더불어 2016 총선과 2018 재보궐은 같은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이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3이 아니라 -2로 계산하는게 맞다.[27] 현재는 이렇다할 대표적인 별명이 없다.[28] 원내정당 대표들 가운데는 기본소득당의 신지혜 대표가 1987년생으로 가장 어리긴 하다. 전체 정당 가운데에서는 미래당의 이성윤 전 대표가 당선 당시 23세, 여성의당의 윤서연 전 대표가 당선 당시 19세였다. 이준석은 교섭단체로 한정했을 때의 최연소 대표. 그렇지만 이준석의 당대표 당선이 이슈가 되었던 이유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원내정당과 원외정당,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데다가 국민의힘은 고만고만한 중소정당이 아니라 의석수 100석이 넘는 제1야당이기 때문이다.[29] 당의 대표는 아니지만 최연소 지도자의 경우 박지현이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되며 깨지게 되었다. 그러나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 박지현과 달리 이준석은 전당대회에서 당원과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선출되었고 20대 대선을 승리한 경력도 있는 대표이므로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30] 이후 증거인멸교사 혐의는 경찰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이 났다. 다만 성접대 의혹 자체는 공소시효 만료로 불송치된 것이고 무고죄는 송치되어 수사중이기에 아직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고는 할 수 없다.[31] 즉, 본인의 해임과 비대위 전환[32]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내가 양의 머리를 들고 개고기를 팔았다라고 말한 것이 가장 문제 되었다.[33] 본래 지도부에서는 징계 취소가 아닌 사면 혹은 대사면이라는 표현을 쓰며 징계를 해제하겠다고 했으나, 징계 당사자들 모두가 '죄지은 사람이 받는 게 사면인데 왜 내가 사면을 받아야 하나', '당헌당규에도 사면이라는 표현은 없고 징계 취소가 공식 명칭'이라고 극렬하게 반발했고, 이에 지도부에서 사면이라는 용어를 쓰는 대신 징계 취소를 한다고 의결했다.[34] 해당 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낀 3자 구도를 뚫고 당선된 유일한 사례다. 군소정당 후보 당선 사례는 세종특별자치시 갑의 김종민(새로운미래)과 울산 북구의 윤종오(진보당)도 있지만 해당 지역구는 각각 공천 취소와 야권 단일화로 인해 민주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자전으로 치러졌다.[번역] [공저] [37] 방송편집자가 임의로 자막으로 띄운 문구가 아니라, 이준석이 방송에서 두 손을 펴 보이면서 직접 말했다.[38] 당 내에서 이준석을 '정리해고' 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등판하는 어록. 본인 역시 이 철학대로 움직인다.[39] 북한 체제가 유지되는 형식의 통일[40] 이준석은 저서에서도 북한 붕괴론에 의한 통일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41] 참고로 이날 1만자 가량의 발언을 원고 없이 30분간 연설했다.[42] 이 발언 한 달 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 사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수립 논란이 있었고, 그 후 이준석이 가처분을 다수 신청하고 장외 여론전을 이어가자, 언론에서도 "예고대로 '흑화'하기 시작했다."라는 평이 나왔다.[43] 2017. 4. 17. 전임자 안철수 사퇴.[44] 4번의 선거 중 첫 당선, 22대 총선 최저 득표율 당선[45] 2018년 재보궐선거 당시의 사진을 다시 사용했다. 이 사진은 2021년 이준석이 당 대표로 선출된 국민의힘 전당 대회에서도 포스터에 사용되었다.[46] 옆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벽보로 사용했다. 또한 모든 선거공보 내용을 자필로 작성해 화제가 되었다.[47] 해당 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낀 3자 구도를 뚫고 당선된 유일한 사례다. 22대 총선에서 또 다른 군소정당 후보의 지역구 당선 사례는 세종특별자치시 갑의 김종민(새로운미래)과 울산 북구의 윤종오(진보당)도 있지만 해당 지역구는 민주당 후보가 각각 공천 취소/야권 단일화로 없었다. 게다가 화성시 을은 21대 총선 당시 모든 행정동에서 민주당이 63% 이상을 득표한 민주당의 텃밭이다.[48] 새누리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49] 그래서 당에서 손수조처럼 자객공천으로 써먹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낙선으로 인한 타격은 없었고 오히려 이준석의 주가만 더 높아졌다. 이준석은 이후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이재명의 출마가 기정사실화되자 '맞춤형 자객' 드립을 치면서 해당 지역에 여러 번 출마했던 윤형선을 그대로 내보내 자신도 똑같이 써먹는다.[50] 이준석 본인도 이때 노원병에서 공천받으려고 했는데, 안철수 측에서는 이준석을 컷오프시키고 자기 측근이었던 김근식을 꽂아넣으려고 했다가 불발되었다. 이 일로 인해 지금까지도 이준석과 안철수 간의 관계는 매우 나쁘다.[51] 홍정욱 후보보다 만표를 더 받았다. 그래서 낙선 후 지금까지 노원병에서 한 번도 보수정당을 뽑아보지 않았던 10,000표가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다고 감사를 표했다.[52] 추후에 회고하길 캠프 내부 여조에서는 미세하게 앞서고 있었는데 차명진 막말사건이 터지면서 도로 역전당했다고 한다.[53] 현직 노원 병 국회의원. 이준석을 낙선시킨 그 사람이다. 처음에 낙선 시킨 사람은 당시 국민의당(2016년) 소속이었던 안철수다.[54] 다만 탈당하지 않았어도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 기록은 유지되었을 것이다.[55] 가령 이낙연의 경우 새로운미래 창당 이전 기준 민주당계 정당들의 통합정당인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을 위한 탈당 1번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0개의 당적을 가지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2010년대 초반에는 민주당계 정당이,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에는 보수 정당이 계속해서 당명을 바꾸었기 때문에 탈당 및 복당이 없는 정치인 중에서도 수많은 당적을 가진 정치인들이 많다.[56] 가장 큰 이유는 선거구 재편으로 노원병 지역구가 폐지되어 본인의 계획과 차이가 생겨서 그렇다고 한다.[57] 사실 이준석은 노원구와 상성이 영 좋지 않았을 뿐이지 선거 역량이 없었던 것은 전혀 아닌데다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경험을 얹은 실력을 바탕으로 지역구를 바꿔 출마하여 바로 첫 당선에 성공했다.[58] 물론 상대 후보들인 한정민, 공영운 후보 모두 정치 신인이었고, 특히 공영운 후보의 경우 선거 직전 여러가지 논란으로 지지율에 타격을 입는 등 운적인 요소가 아예 없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공영운급 정도의 논란이 있었던 김준혁, 양문석, 정청래 등은 잘만 당선됐을뿐더러 어찌됐든 거대 정당 소속 후보가 아닌 이준석 이름 석자만으로 본인이 승부를 걸어볼만한 지역구를 과감히 선택하여 도전한 끝에 당선됐기 때문에 이준석 개인의 정치적 역량은 충분히 입증해냈다고 볼 수 있다.[59] 이 때문에, 제3지대의 대부분은 영남,호남,충청 등 지역기반을 업고 성장했다.[60] 처음 한나라당,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활동했을 때는 당적이 없는 상태였다. #[61] 5월 전당 대회를 앞두고 정식 입당. #[62]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탈당[63] 국민의당과 신설 합당.[64]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65] 자유한국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66] 개혁신당 창당을 위한 탈당[67] 한국의희망과 신설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