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반도 남쪽 바다[편집]
1.1. 개요[편집]
1.2. 지리적 특징[편집]
1.3. 남해의 경계[편집]
대한민국에서 남해의 영역은 각자가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1997년, 당시 해양수산부는 동해와 남해의 경계를 대한해협으로 정했는데, 이는 울산광역시 태화강 하구와 시마네현 이즈모시를 이은 직선을 경계점으로 하였다. 또한, 서해(황해)와 남해의 경계를 진도 서단과 차귀도를 이은 직선으로, 동중국해와 남해의 경계를 우도에서 일본 후쿠에 섬 남단을 이은 직선으로 정했다. 이는 국립수산진흥원[2]이 1979년 한국해양편람에서 정의한 기준이다.
하지만 해양수산부의 산하 기관이었던 국립해양조사원은 1992년 수로업무편람에서 동해와 남해의 경계를 부산직할시 남구에 있는 오륙도와 승두말[3]을 잇는 가상의 선과, 서해와 남해의 경계를 전라남도 해남군의 남쪽 끝으로 정하였다.
대한민국 기상청의 경우 황해(서해)와 남해의 경계는 해남 반도 남단으로 국립해양조사원과 같지만, 동해와 남해의 경계를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의 해안 경계점으로 정하였다.
참고로 국제수로기구에서 1953년 발간한 《해양과 바다의 경계》제3판에서는 여기를 독립된 명칭이 붙은 바다(남해)로 보지 않고, 제주도를 경계로 서북쪽을 황해, 동북쪽을 동해[4], 제주도 남쪽 바다를 동중국해로 설정하고 있다. 진도군에 속해 있는 몇몇 섬들도 경계선이 된다.
1997년, 당시 해양수산부는 동해와 남해의 경계를 대한해협으로 정했는데, 이는 울산광역시 태화강 하구와 시마네현 이즈모시를 이은 직선을 경계점으로 하였다. 또한, 서해(황해)와 남해의 경계를 진도 서단과 차귀도를 이은 직선으로, 동중국해와 남해의 경계를 우도에서 일본 후쿠에 섬 남단을 이은 직선으로 정했다. 이는 국립수산진흥원[2]이 1979년 한국해양편람에서 정의한 기준이다.
하지만 해양수산부의 산하 기관이었던 국립해양조사원은 1992년 수로업무편람에서 동해와 남해의 경계를 부산직할시 남구에 있는 오륙도와 승두말[3]을 잇는 가상의 선과, 서해와 남해의 경계를 전라남도 해남군의 남쪽 끝으로 정하였다.
대한민국 기상청의 경우 황해(서해)와 남해의 경계는 해남 반도 남단으로 국립해양조사원과 같지만, 동해와 남해의 경계를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의 해안 경계점으로 정하였다.
참고로 국제수로기구에서 1953년 발간한 《해양과 바다의 경계》제3판에서는 여기를 독립된 명칭이 붙은 바다(남해)로 보지 않고, 제주도를 경계로 서북쪽을 황해, 동북쪽을 동해[4], 제주도 남쪽 바다를 동중국해로 설정하고 있다. 진도군에 속해 있는 몇몇 섬들도 경계선이 된다.
1.4. 남해 '이순신해' 명명 및 병행 표기 추진 논란[편집]
역사바로잡기연구소 소장이자 유튜버인 황현필이 업로드한 영상(꿈같은 일. 시작합니다.)에 의하면 본인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식사를 가질 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서 이승만 기념관이 서울에 만들어져야 되겠냐는 성토가 있었다. 그 때 의원들이 '우리는 이순신 기념관을 만들자' , '이순신 로드를 만들자'와 같은 언급을 했다고 하며, 그 때 황현필은 서울에 기념관을 만드는 것은 예산 문제에 걸리고, 이순신 로드와 같은 것은 이미 지자체의 자체적인 시도가 있으며 윤석열 정부에서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대신, 이순신이 싸웠던 바다인 남해 바다(옥포 - 부산 앞바다 해역)를 '이순신 해'로 병행 표기하자고 제안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김승남, 민병덕, 김영호 의원이 지지를 했다고 하며 3명을 포함해 12인(강훈식, 김영진, 허종식, 박성준, 박영순, 위성곤, 윤재갑, 이용빈, 민형배)의 의원이 발의주최의원으로서 선봉에 섰다고 한다. 그 후 국민의힘 의원 2명[5], 무소속 의원 2명을 포함해 총 69명의 국회의원이 지지를 법안 발의에 동참했다. 황현필은 이순신해 병행표기 범국민 서명운동을 하고 있으며, 7월 2일 기준 약 36,000명 가량이 서명을 한 상황이다.[6]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김승남, 민병덕, 김영호 의원이 지지를 했다고 하며 3명을 포함해 12인(강훈식, 김영진, 허종식, 박성준, 박영순, 위성곤, 윤재갑, 이용빈, 민형배)의 의원이 발의주최의원으로서 선봉에 섰다고 한다. 그 후 국민의힘 의원 2명[5], 무소속 의원 2명을 포함해 총 69명의 국회의원이 지지를 법안 발의에 동참했다. 황현필은 이순신해 병행표기 범국민 서명운동을 하고 있으며, 7월 2일 기준 약 36,000명 가량이 서명을 한 상황이다.[6]
1.4.1. 옹호론[편집]
강사 황현필은 이순신해 병행 표기의 필요성을 유튜브에 업로드한 영상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다만 이하 주장이 황현필의 개인적인 주장인지, 특별법 추진 운동가들 및 학계에서 합의된 내용인지는 명확하지 않다.[7]
1. 화폐에 관한 이야기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나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극우적 인물들이 화폐 초상화의 인물이 되고 있으나 한국은 독립 운동가를 단 한 명도 화폐 초상화에 포함시키지 못하였다.
2. 후쿠시마 오염수에 관한 이야기
후쿠시마 오염수가 바다를 더럽히려는 이 때에 '이순신의 바다'가 어떻게 일본의 오염수에 더럽혀질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3. 후손들에게 이순신의 정신을 계승시키고[8] 세계에 이순신을 널리 알리는데 도움이 된다.
이 밖에 김승남 의원은 "이순신 장군의 애민정신과 자기희생을 기념하고 국민적 자부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 이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9]
1. 화폐에 관한 이야기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나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극우적 인물들이 화폐 초상화의 인물이 되고 있으나 한국은 독립 운동가를 단 한 명도 화폐 초상화에 포함시키지 못하였다.
2. 후쿠시마 오염수에 관한 이야기
후쿠시마 오염수가 바다를 더럽히려는 이 때에 '이순신의 바다'가 어떻게 일본의 오염수에 더럽혀질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3. 후손들에게 이순신의 정신을 계승시키고[8] 세계에 이순신을 널리 알리는데 도움이 된다.
이 밖에 김승남 의원은 "이순신 장군의 애민정신과 자기희생을 기념하고 국민적 자부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 이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9]
1.4.2. 반론[편집]
1. 남해는 상기했듯 국제해양법상 식별되는 바다가 아니며, 단지 한국 국내에서만 인식되고 있는 관습적인 개념이다.[10] 국제수로기구 세계 지도에 표시가 될만큼 큰 해역이 아니다. 당장 세계 지도에 표시되는 해역 중 남해바다보다 영역이 좁은 곳은 없다. 따라서 이는 지리적 실효성 없이, 오직 내셔널리즘에 따른 정치적 캠페인이다.
2. 국제수로기구에서는 해역을 명칭이 아닌 고유식별번호로 표기하기로 했다. 해역 표기 분쟁이 있는 동해조차 2020년부터 S130이라는 고유식별번호로 표기되게 되었다. 표기가 식별번호로 변경될 당시 한국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이러한 내용을 '일본의 일본해 주장 약화'라는 취지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 그런데 이제 와서 새로운 해역의 명칭을 붙인다는 것은 어색하다.
3. 이순신은 해역에 '이순신 해'라고 이름을 붙여가며 알려야할만큼 인지도가 떨어지는 인물이 아니다. 비록 세계의 유명한 정복자만큼의 인지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순신은 한국인 중에서는 세종대왕과 더불어 비교적 널리 알려져있다. 일례로 체스터 니미츠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브리핑에서 이순신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시대를 고려하면 국격이나 위상은 고사하고 나라 자체가 없던 시절에도 해외에서 제법 알려진 인물이었다는 뜻이 된다.
4. 국제 관습상 해역에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해당 바다를 탐험하거나 측량하거나 세계에 알린 자를 붙이는 경우가 다수이며, 특히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뒤에는 그러한 일이 없다. 따라서 이는 국제 관례에 어긋난다.
2. 국제수로기구에서는 해역을 명칭이 아닌 고유식별번호로 표기하기로 했다. 해역 표기 분쟁이 있는 동해조차 2020년부터 S130이라는 고유식별번호로 표기되게 되었다. 표기가 식별번호로 변경될 당시 한국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이러한 내용을 '일본의 일본해 주장 약화'라는 취지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 그런데 이제 와서 새로운 해역의 명칭을 붙인다는 것은 어색하다.
3. 이순신은 해역에 '이순신 해'라고 이름을 붙여가며 알려야할만큼 인지도가 떨어지는 인물이 아니다. 비록 세계의 유명한 정복자만큼의 인지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순신은 한국인 중에서는 세종대왕과 더불어 비교적 널리 알려져있다. 일례로 체스터 니미츠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브리핑에서 이순신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시대를 고려하면 국격이나 위상은 고사하고 나라 자체가 없던 시절에도 해외에서 제법 알려진 인물이었다는 뜻이 된다.
4. 국제 관습상 해역에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해당 바다를 탐험하거나 측량하거나 세계에 알린 자를 붙이는 경우가 다수이며, 특히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뒤에는 그러한 일이 없다. 따라서 이는 국제 관례에 어긋난다.
1.5. 여담[편집]
2. 경상남도 남해군과 섬 남해도[편집]
1번 항목의 남해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해당 문서로.
3. 소설[편집]
3.1. 줄거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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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이남 동중국해에서 한국석유공사 소속 시추선 두성호가 대륙붕 제5광구에서 석유시추작업을 진행했다. 그러자 배 아파하는 일본은 제2호위대군을 제7광구 인근 해상에 배치시켜 버린다. 대한민국 해군의 광개토 전대는 제2호위대군과 치열하게 대치하지만, 결국 제2호위대군이 한국 EEZ로 넘어오게 된다. 그런데 해상자위대 군함의 CIWS가 대한민국 해군의 대잠헬기 링스를 향해 오발해 격추시키는 사태가 벌여지자 두 함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광개토 전대는 치열하게 싸워 무라사메급 구축함 두 척을 침몰시키거나 대파시키는 분전을 하지만 전멸을 면치 못한다.[11] 일본은 한국에 대한 해상봉쇄를 실시하고 한국의 컨테이너선들이 해상자위대에게 나포당하거나 격침당하자[12] 한국의 경제는 IMF 때처럼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그 와중에 한국 공군 KF-16은 조기경보기 열세[13]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공중전 끝에 항공자위대가 제주도를 폭격하는 상황은 면했다. 한국 국방부는 209급 잠수함 나대용함과 214급 잠수함 우치적함 등 3척을 동원해 일본을 역으로 해상봉쇄 시키기로 한다. 실패하면 한국은 영원히 거덜나는 중대한 작전이였다. 그 사이에 한국 해군은 남은 대형함 전력들을 긁어모아 각개격파 전술로 대응하려했으나, 한국형 이지스함 부재로 실패한다.[14]
결국 개시된 비밀작전. 한국 잠수함들은 일본 잠수함들과 대잠망들을 교묘하게 피해 일본 도쿄만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뒤, 기뢰들을 마구 부설했다. 그러고나서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과 요코스카 자위대 시설을 어뢰와 순항미사일로 공격하자, 일본 군함들이 줄줄이 피격되어 격침[15]되었고 일본 소해함들은 소해작업을 했다. 그러자 잠복한 또다른 한국 잠수함 우치적함[16]이 하푼 미사일을 발사하여 소해작업중인 소해함들을 격침시킨다. 일본 해상자위대와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입자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협상을 한다. 하지만 한국은 추가로 209급 잠수함 6척을 2달 이내에 보내 일본을 상대로 한 해상봉쇄를 계획한다. 그래서 일본 해자대 잠수함 1척이 부산항에 잠입해 기뢰 4발을 투하하고 상선을 격침시키지만 그 상선은 중국 상선이었다. 이런 뻘짓 덕분에 중국 정부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고 중국 정부에 사죄해야만 되는 고초를 겪었다. 일본 국민들이 고통받고 외교적으로 고립된 일본은 한국 잠수함을 격침시키기 위해 대규모의 대잠작전을 벌인다. 철수 명령이 떨어지자 한국 잠수함 3척은 한국으로 후퇴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일본 P-3C 대잠초계기와 일본 잠수함들이 끈질기게 추격했다. 그래서 2척만 살아남았고 한일간 교전 행위는 미국과 노르웨이의 중재로 일단락된다. 동해에 등장했던 이찬복 소령이 잠수함 위에 날아다니는 다국적 방송사 헬기들과 한국 잠수함을 호위하는 미국 항모전단을 보면서 푸념한다. 그리고 김병률 중장과 재회를 하면서 끝난다.
4. 일본의 철도회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난카이 전기철도 문서 참고하십시오.
5. 신라의 제2대 왕 남해 차차웅의 이름[편집]
남해 차차웅 문서로.
6. 둘러보기[편집]
위의 바다 남해와는 한자가 다르다. 다른 기록에는 '박유'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1] 한국내에서는 부산을 경계로 동해와 남해를 구별하지만 일본해내에서는 구별하지 않으므로 남해는 해양법상으로는 일본해의 일부인 것은 맞으나 동해의 일부라고 하면 혼동의 여지가 있다. 동해+남해=일본해[2] 국립수산과학원의 전신.[3] 오륙도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4] 남해가 한국에서 말하는 '동해'의 일부라는 뜻이 아니라 해양학적으로는 일본해의 서쪽끝이 전라남도와 제주도사이까지 뻗어있다는 뜻임.[5] 남해안에 속한 창원시 진해구의 이달곤 의원, 이순신 장군의 고향인 아산시를 지역구로 둔 이명수 의원이 동참했다.#[6] 서명 링크[7] 애초에 황현필은 6,25는 미국이 사주한 전쟁이라 하는등 믿지못할 말을 했기 때문에 걸러 듣는게 좋다[8] 김승남 의원 역시 기자회견에서 이와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9] '남해'를 '이순신해'로 공동 표기..이순신특별법 발의[10] 영어 위키백과에도 남해를 번역하지 않고 발음 그대로 Namhae로 표기하고 있다.#[11] 승무원은 거의 죽고 함체만 남은 광개토대왕함에 막타를 날리려 공자 F-2 지원전투기 4대가 접근하지만 살아남은 골키퍼 CIWS가 두 대를 격추시킨다.[12] 하지만 약간은 어설펐다. 한번은 한국 초대형 컨테이너 선이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대놓고 꼬라박아 격침시킨다.[13] 2012년에 한국은 E-737 4대를 도입한다.[14] 충무공이순신급을 단 두 척만 건조한 2000년대 초반의 한국 해군은 상대가 안 됐다. 문무대왕함은 격침당하고 이순신함은 도주한다.[15] 민간 소방선 1척은 기뢰에 격침되었다.[16] 214급잠수함의 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