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기존 왕조의 혈족이 아닌 인물이 왕위를 차지하여 왕조가 교체되는 사건을 이르는 말.
역성은 왕조의 성(국성)을 갈아엎는다는 의미이며, 혁명은 천명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역성혁명은 곧 새롭게 천명을 받은 자가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역성혁명은 신화시대에 있었던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의 혁명(탕무혁명)에서 원전이라 할 수 있는 고사가 나왔고 춘추전국시대의 유가 사상가 맹자에 의해 구체화되어 여러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 왕조 교체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써 활용되었다.
전통적으로 유교 문화권에서 혁명이란 곧 역성혁명을 뜻하는 것이었으나, 근대 이후 서양의 Revolution이라는 개념을 혁명으로 번역하면서 오늘날의 혁명은 전통적인 역성혁명과는 그 의미가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역성은 왕조의 성(국성)을 갈아엎는다는 의미이며, 혁명은 천명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역성혁명은 곧 새롭게 천명을 받은 자가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역성혁명은 신화시대에 있었던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의 혁명(탕무혁명)에서 원전이라 할 수 있는 고사가 나왔고 춘추전국시대의 유가 사상가 맹자에 의해 구체화되어 여러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 왕조 교체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써 활용되었다.
전통적으로 유교 문화권에서 혁명이란 곧 역성혁명을 뜻하는 것이었으나, 근대 이후 서양의 Revolution이라는 개념을 혁명으로 번역하면서 오늘날의 혁명은 전통적인 역성혁명과는 그 의미가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2. 유교 문화권의 역성혁명[편집]
2.1. 신화적 기원: 탕무혁명 [편집]
2.2. 사상적 기원: 맹자의 역성혁명론[편집]
2.3. 방식[편집]
2.3.1. 방벌[편집]
무력으로 폭군을 쳐 없애는 혁명으로 탕무혁명의 고사에서 나왔다.
2.3.2. 선양[편집]
전왕조의 군주가 신왕조의 군주에게 자발적으로 왕위를 물려주는 무혈혁명으로, 본래 탕무혁명보다 훨씬 이전인 요순의 선양 고사에서 나왔으나, 이후 폭군이 아니라서 방벌의 명분을 찾기 힘든 군주를 상대로 하는 역성혁명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되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자신의 왕조를 스스로 혈족도 아닌 자에게 넘겨주려는 군주가 있을리는 없었기에 선양이라는 행사 자체만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뿐, 그 이전에 선양을 받기 위해 벌이는 사전작업에는 내란을 비롯한 온갖 유혈사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으며, 선양한 이후에 살해당한 전왕조의 군주들도 수두룩하게 나왔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자신의 왕조를 스스로 혈족도 아닌 자에게 넘겨주려는 군주가 있을리는 없었기에 선양이라는 행사 자체만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뿐, 그 이전에 선양을 받기 위해 벌이는 사전작업에는 내란을 비롯한 온갖 유혈사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으며, 선양한 이후에 살해당한 전왕조의 군주들도 수두룩하게 나왔다.
2.4. 사례[편집]
2.4.1. 중국사[편집]
- 탕무혁명
- 진승과 오광의 난[1]
- 전한 - 신 교체
- 후한 - 위 교체
- 위진남북조시대
- 위 - 진 교체
- 진 - 유송 교체
- 북조의 왕조 교체
- 남조의 왕조 교체
- 오대십국시대
2.4.2. 한국사[편집]
2.4.3. 베트남사[편집]
- 딘보린의 딘 왕조 개창
- 레호안의 전 레 왕조 개창
- 리꽁우언의 리 왕조 개창
- 쩐투도의 쩐 왕조 개창
- 호꾸이리의 호 왕조 개창
- 레러이의 후 레 왕조 개창
- 막당중의 막 왕조 개창
- 떠이선당의 난(서산당의 난)
농민 반란군인 떠이선당이 기존 대월 황실인 중흥 레 왕조와 제후왕을 세습하던 찐씨 왕실, 응우옌씨 왕실을 모두 타도하고 떠이선 왕조를 개창했다. - 자롱 황제의 떠이선 왕조 정벌 및 응우옌 왕조 개창
바로 위의 응우옌씨 출신인 응우옌푹아인이 떠이선 왕조를 타도하고 응우옌 왕조의 초대 황제인 자롱 황제(가륭제)가 되었다.
2.5. 예외 사례[편집]
2.5.1. 한국사[편집]
- 고구려의 해씨와 고씨
같은 가문인데 그냥 처음엔 해씨를 쓰다가 고씨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설이 유력하다.
2.5.2. 중국사[편집]
- 북위의 탁발씨와 원씨
효문제가 한화정책을 펴면서 선비족 계열의 탁발씨를 한족풍 성인 원씨로 바꾸었을 뿐, 황실의 혈통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 후주의 곽씨와 시씨
왕조 개창 이전에 이미 창업군주 곽위의 집안이 몰살당한 상태라 부득이하게 외조카 시영에게 물려주어, 국성이 곽씨에서 시씨로 바뀌었지만 하나의 왕조로 여겨졌다.
3. 다른 문화권의 역성혁명[편집]
유교 문화권이 아닌 지역에서는 맹자의 역성혁명론만큼 왕조 교체를 체계적으로 합리화하는 사상은 드물었으나, 그러한 문화권에서도 군주의 권력 기반이 약하거나 민심을 잃었을 경우 기존 왕조의 혈족이 아닌 인물이 왕위를 빼앗는 역성혁명이 일어났다.
또한 상당수의 문화권은 성씨 없이 그냥 시조의 이름이나 국호, 지역명 등을 따서 '~왕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 엄밀히 말하면 국성을 바꾼다는 의미의 역성혁명에는 부합하지 않는 사례도 많았다.
또한 상당수의 문화권은 성씨 없이 그냥 시조의 이름이나 국호, 지역명 등을 따서 '~왕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 엄밀히 말하면 국성을 바꾼다는 의미의 역성혁명에는 부합하지 않는 사례도 많았다.
3.1. 유럽 문화권[편집]
3.1.1. 고대 그리스[편집]
3.1.2. 로마 제국[편집]
3.1.2.1. 고대 로마 제국[편집]
- 네 황제의 해
첫번째 왕조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네로가 축출당한 것을 시작으로, 한 해 동안 서로 다른 가문 출신의 네 황제가 연달아 내전을 일으켜 즉위하는 혼란이 일어났는데, 플라비우스 가문 출신의 베스파시아누스가 모든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제위를 굳히면서 종식되었다. - 플라비우스 왕조에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로의 교체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당한 후 플라비우스 혈통이 아닌 네르바가 즉위했는데, 별다른 혼란 없이 제위가 안정되어 오현제 시대라 불리는 로마의 최전성기가 이어졌다. - 다섯 황제의 해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 콤모두스가 살해당한 이후, 한 해 동안 다섯명이나 되는 군벌이 황제 자리를 다투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세베루스 왕조를 개창하면서 종식되었다. -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가 축출당하며 세베루스 왕조가 종식된 것을 시작으로 5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20 차례 이상의 역성혁명이 일어났다. - 사두정의 내전(테트라르키아의 내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황제로서는 최초로 자진 퇴위한 이후, 여러 공동 황제들이 제위를 다투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승리하여 단독 황제가 되면서 종식되었다.
3.1.2.2. 서로마 제국[편집]
테오도시우스 왕조 단절 이후 여러 차례의 역성혁명으로 황제가 교체되었는데, 그 중 상당수는 본인이 역성혁명을 주도한 것도 아닌 바지사장(...)이었다.
3.1.2.3. 중세 로마(동로마 제국)[편집]
-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종식과 포카스의 즉위
- 포카스 축출 및 이라클리오스 왕조 개창
- 20년간의 혼란
- 이사브리아 - 니키포로스 교체
- 니키포로스 왕조 종식 및 레온 3세 즉위
- 미하일 2세의 레온 3세 살해 및 아모리아 왕조 순십
- 아모리아 왕조에서 마케도니아 왕조로의 교체
- 이사키오스 1세 콤니노스의 미하일 6세 축출
-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의 니키포로스 3세 축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