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노에서 넘어옴
분류
|
|
1. 개요[편집]
일본국의 군주 칭호.
현재 나루히토 덴노가 재위 중이다.
일본국 헌법에 직접적으로 국가원수라 명시된 건 아니지만, 헌법 제1조에서 천황을 국가의 상징이라 규정하고 제1~8조가 모두 천황의 지위와 권한에 대해 다루므로 일본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사실상 국가원수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한국한자음으로 읽은 천황과 일본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덴노, 텐노 등의 표기가 공존하고 있으며, 그 중 공식적으로 쓰이는 표기는 천황이다.
한국에서 언론 보도나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천황이라는 칭호가 가진 어감에 대한 반감을 고려해서 일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현재 나루히토 덴노가 재위 중이다.
일본국 헌법에 직접적으로 국가원수라 명시된 건 아니지만, 헌법 제1조에서 천황을 국가의 상징이라 규정하고 제1~8조가 모두 천황의 지위와 권한에 대해 다루므로 일본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사실상 국가원수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한국한자음으로 읽은 천황과 일본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덴노, 텐노 등의 표기가 공존하고 있으며, 그 중 공식적으로 쓰이는 표기는 천황이다.
한국에서 언론 보도나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천황이라는 칭호가 가진 어감에 대한 반감을 고려해서 일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2. 칭호[편집]
2.1. 어원[편집]
2.2. 타국 언어에서의 번역[편집]
2.3. 별명[편집]
- 미카도
2.4. 역사적으로 사용된 칭호[편집]
- 일본 국내
- 오키미
- 스메라미코토
- 해외
- 왜왕
- 왜황
2.5. 천황 개인을 부르는 명칭[편집]
2.5.1. 시호[편집]
메이지 시대부터 한 명의 천황이 하나의 연호만을 사용하는 일세일원제가 정착하여, 천황이 사망하면 연호를 그대로 시호로 삼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단, 시호는 사후에 붙는 이름이므로 살아있는 현직 천황을 연호+덴노라 부르진 않는다.
단, 시호는 사후에 붙는 이름이므로 살아있는 현직 천황을 연호+덴노라 부르진 않는다.
2.5.2. 경칭[편집]
- 폐하(헤이카)
2.5.3. 일상에서 언급할 경우[편집]
2.5.3.1. 일본 국내[편집]
일상적으로는 현직 임금이라는 뜻의 금상(킨조)라 돌려말하거나 별명인 미카도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살아있는 천황을 실명으로 부르는 것은 무례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므로로 일본인들과의 대화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살아있는 천황을 실명으로 부르는 것은 무례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므로로 일본인들과의 대화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2.5.3.2. 해외[편집]
3. 일본 국내에서의 법적 지위 및 위상[편집]
3.1. 헌법상 지위 및 권한[편집]
3.2. 위상[편집]
4. 신화[편집]
일본 신화에서의 천황은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손자 니니기의 혈통을 물려받는 진무 덴노로부터 시작되었고, 그가 기원전 660년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 한다.
단, 기원전 660년이라는 연도는 신유년이 혁명의 해라는 이른바 '신유혁명설'에 따라 진무 덴노가 국가를 세우는 혁명적 사건이 있어야 했을 시기를 후대에 끼워맞춘 연도라서, 실증적인 역사 연구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오늘날 일본사학계에서도 진무 덴노는 역사가 아닌 신화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건국 신화의 역사성과 진위여부가 의심받긴 해도, 천황이 일본 사회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은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천황 대신 실권을 휘두른 전근대 후지와라씨 셋칸(섭관), 막부 쇼군(장군) 등도 이러한 천황의 신화적 권위를 등에 업고 명분을 확보했다.
단, 기원전 660년이라는 연도는 신유년이 혁명의 해라는 이른바 '신유혁명설'에 따라 진무 덴노가 국가를 세우는 혁명적 사건이 있어야 했을 시기를 후대에 끼워맞춘 연도라서, 실증적인 역사 연구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오늘날 일본사학계에서도 진무 덴노는 역사가 아닌 신화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건국 신화의 역사성과 진위여부가 의심받긴 해도, 천황이 일본 사회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은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천황 대신 실권을 휘두른 전근대 후지와라씨 셋칸(섭관), 막부 쇼군(장군) 등도 이러한 천황의 신화적 권위를 등에 업고 명분을 확보했다.
5. 역사[편집]
5.1. 고대[편집]
5.1.1. 고훈 시대 ~ 아스카 시대[편집]
역사적으로 여러 소국들이 난립하던 일본에 천황을 중심으로 한 단일 정치체인 야마토 왕권이 나타난 시기는 3세기 중반으로 여겨지며, 현 천황가와 혈연적 연관성이 명확하게 고증되는 천황들이 등장한 시기는 6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당시에는 아직 천황이라는 칭호는 물론 일본이라는 국호도 쓰지 않아서, 국내에서 군주의 칭호는 오키미, 국호는 야마토였으며, 타국 사람들은 이를 각각 왜왕, 왜국으로 불렀다.
일본이라는 국호를 채택하고 스스로의 칭호를 천황으로 높인 인물은 바로 7세기 말에 즉위한 덴무 덴노였는데, 그는 본인이 즉위하기 이전에 재위했던 왕들을 당시 정식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몇몇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천황 시호를 올려 천황 칭호의 역사를 기원전 7세기 진무 덴노까지 끌어올렸다.
다만 이 당시에는 아직 천황이라는 칭호는 물론 일본이라는 국호도 쓰지 않아서, 국내에서 군주의 칭호는 오키미, 국호는 야마토였으며, 타국 사람들은 이를 각각 왜왕, 왜국으로 불렀다.
일본이라는 국호를 채택하고 스스로의 칭호를 천황으로 높인 인물은 바로 7세기 말에 즉위한 덴무 덴노였는데, 그는 본인이 즉위하기 이전에 재위했던 왕들을 당시 정식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몇몇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천황 시호를 올려 천황 칭호의 역사를 기원전 7세기 진무 덴노까지 끌어올렸다.
5.1.2. 나라 시대 ~ 헤이안 시대 초기[편집]
천황이 실권을 가진 전제군주로서 율령에 따라 통치하는 율령국가 체제가 형성되었다.
5.1.3. 헤이안 시대 중후반[편집]
헤이안 시대 중기 천황들은 외척인 후지와라씨 셋칸(섭관)들에게 실권을 빼앗겼고, 후기에는 실권을 회복했으나 전임 천황인 상황 또는 법황[3]이 살아서 현 천황믈 압도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인세이(원정)이라는 기묘한 체제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셋칸 정치와 인세이를 거치며 성장한 무사 계급은 곧 상황으로부터 주도권을 가져와 최초의 무가정권인 헤이케를 형성했다.
그리고 셋칸 정치와 인세이를 거치며 성장한 무사 계급은 곧 상황으로부터 주도권을 가져와 최초의 무가정권인 헤이케를 형성했다.
5.2. 중세[편집]
헤이케를 타도하고 집권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쇼군이 되어 막부를 개창하면서, 쇼군이 천황 대신 실권을 휘두르는 막부 체제가 형성되었다.
다만 실제로는 쇼군도 싯켄(집권)[4], 칸레이(관령)[5] 등의 가신들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허수아비로 지낸 기간이 길어서, 천황를 허수아비로 만든 쇼군을 허수아비로 만든 실권자를 허수아비로 만든 실권자를 또 허수아비로 만든(...) 실권자라는 마트료시카식 정치 구도가 자주 나타났다.
14세기에는 고다이고 덴노가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고 겐무 신정이라는 천황 직접 통치 복원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곧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새로운 막부(무로마치 막부)를 개창하며 무산되었고,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남조와 막부의 허수아비인 북조의 대결이었던 남북조시대는 막부의 승리로 종식되었다.
무로마치 막부의 통치 체제가 흔들리면서 시작된 난세인 센고쿠 시대에 즉위한 천황들은 생계유지도 힘들 정도로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여, 즉위하고 10년 이상 지난 이후에야 다이묘들의 기부금을 받아 즉위식을 치르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는 쇼군도 싯켄(집권)[4], 칸레이(관령)[5] 등의 가신들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허수아비로 지낸 기간이 길어서, 천황를 허수아비로 만든 쇼군을 허수아비로 만든 실권자를 허수아비로 만든 실권자를 또 허수아비로 만든(...) 실권자라는 마트료시카식 정치 구도가 자주 나타났다.
14세기에는 고다이고 덴노가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고 겐무 신정이라는 천황 직접 통치 복원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곧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새로운 막부(무로마치 막부)를 개창하며 무산되었고,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남조와 막부의 허수아비인 북조의 대결이었던 남북조시대는 막부의 승리로 종식되었다.
무로마치 막부의 통치 체제가 흔들리면서 시작된 난세인 센고쿠 시대에 즉위한 천황들은 생계유지도 힘들 정도로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여, 즉위하고 10년 이상 지난 이후에야 다이묘들의 기부금을 받아 즉위식을 치르기도 했다.
5.3. 근세: 에도 시대의 천황[편집]
에도 시대에도 천황이 허수아비로 지낸 것은 이전과 같았으나, 막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가난에 시달리던 센고쿠 시대의 비참한 처지는 옛말이 되었다.
막부 말기에 개항을 둘러싸고 도막파(막부 타도 세력]과 좌막파(막부 지지 세력)의 정쟁이 치열해지자, 당시 재위 중이던 고메이 천황은 상황에 따라 둘 중 한쪽에 명분을 실어주는 줄타기를 통해 천황의 위상 회복을 시도했는데, 그의 아들인 메이지 덴노가 즉위한 후 끝내 도막파가 승리하며 에도 시대는 막을 내렸다.
막부 말기에 개항을 둘러싸고 도막파(막부 타도 세력]과 좌막파(막부 지지 세력)의 정쟁이 치열해지자, 당시 재위 중이던 고메이 천황은 상황에 따라 둘 중 한쪽에 명분을 실어주는 줄타기를 통해 천황의 위상 회복을 시도했는데, 그의 아들인 메이지 덴노가 즉위한 후 끝내 도막파가 승리하며 에도 시대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