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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비판
2.1. 메이와쿠의 모호한 범위와 오남용2.2. 사회의 경직화2.3. 피해자에게 은연 중 침묵 강요2.4. 집단으로서의 '일본'과 메이와쿠의 이중성
3. 다른 문화권과의 비교
3.1. 서구권
4. 여담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메이와쿠/Example.jpg
他人にめいわくをかけないようにしましょう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합시다.

일본의 한 공익광고에서 나온 표어이다.
메이와쿠(迷惑)는 일본 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폐해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이다.[1] 또한 일본에는 이 메이와쿠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존재한다. 메이와쿠의 어원이 되는 한자어는 '어떤 것에 홀려 마음이 흐트러지다'는 뜻의 '미혹'으로, 본래는 '남에게 번뇌를 일으켜 마음을 소란하게 하다'나 '번뇌로 마음이 소란하다'를 뜻하는 불교 용어였다. 만요슈에서부터 그 용례가 확인되며, 불교 경전에서는 산스크리트어 muhyati(흐리멍텅함), sammoha(혼동하여 어리석음), bhranti(전도된 앎)[2] 등의 개념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埴安乃 池之堤之 隠沼乃 去方乎不知 舎人者迷惑[3]
하니야스 연못 제방의 숨겨진 늪, 어디로 흘러가면 좋을지 모른 채, 시종(토네리)은 당황하노라.

《만엽집》 제2권, 카키노모토노 아손 히토마로(柿本朝臣人麻呂) 작 201번 단가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기존의 불교 용어에 가까운 의미로 쓰이는 다른 동아시아권 국가들과 달리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폐를 의미하는 단어로 변화하였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번뇌를 해탈하는 것은 특히 말법 시대에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보았던[4] 일본 불교권의 영향이 변수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남에게 번뇌를 일으킬 짓을 하지 말자는 식으로 의미 변질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먼 옛부터 지금까지 헤매어 오던 고뇌의 고향을 버리기 어렵고 또 태어나 보지도 않는 것은 참말로 어디까지나 번뇌의 심한 뿌리가 강하고 단단하기 때문인 것이다. [...]
거기에 또 '논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여러 가지 번뇌가 일어난다. 진실로 지혜 있는 자는 다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 라고 하는 확실한 가르침의 말씀도 있는 것이다. [...]
대체로 이 인생에 있어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그대로 번뇌와 악의 방해를 끊어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진언이나 법화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성승조차도 이생애가 끝이 나면 다음에는 정토에 태어나서 깨달음을 열기를 비는 것이다.

유이엔, 《탄이초》
그러나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어떤 언행이 남에게 번뇌를 일으킬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보니, 이로 인해 타인의 심기를 상하게 할 잠재력이 있는 온갖 행동들이 사회적으로 기피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근대화 이전의 일본에서는 그 적용 범위가 이웃이나 마을 정도로 적은 편이었고, 메이와쿠를 끼치지 말라는 전일본적 분위기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곤란함을 느끼는 본인이 완곡하게 불편을 표하는 용도로 '메이와쿠'를 입에 담는 경우는 많이 있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개념 자체는 전세계 여느 공동체에서나 있는 보편적 개념이지만, 그 중에서도 메이와쿠 문화는 다소 독특한 양상을 보이는 일본식 문화이다. 메이와쿠는 남에게 끼치는 피해 그 자체에만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을 미리 헤아리지 못하고 상호 간 갈등의 불씨가 될 만한 언행을 의미하는 단어로 확장되었다. 때문에 일본어 '메이와쿠'를 번역할 경우 영어로 'nuisance'라 쓰고는 있으나 사실 이보다는 메이와쿠의 범위가 더 넓고 복잡하다. 그나마 한국의 민폐가 일본의 메이와쿠와 가장 비슷하다고 여겨지나,[5] 한국의 민폐와 일본의 메이와쿠 사이에도 중요한 차이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벽한 번역은 아니다.

이와모토 미치야(岩本通弥) 교수의 경우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제국 정부와 교육 당국에서 서양식 공중 도덕 및 준법(에티켓 혹은 매너) 문화를 제국의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고 가르치기 위해 메이와쿠의 의미를 변용해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현대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의 본격적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등 일본학 연구자들은 대체로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를 현대적 메이와쿠 문화의 등장 배경으로 본다.#

즉, 최초에는 단어의 원래 의미에 가깝게 개인의 번뇌라는 의미로 썼다가 중세기에 접어들며 이를 넘어 이웃과 같은 가까운 지역 사회 구성원들에게 끼치는 폐의 의미로 확장됐으며, 에도시대에 상업 문화와 도시 문화가 발달하며 점차 변하다가 메이지 시대를 거쳐 다이쇼 시대에 이르는 1910년대~1920년대부터는 서서히 '공중 도덕 위반'으로까지 뜻을 확장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20세기에 접어들며 메이와쿠가 상당히 변화했는데, 이와모토 교수의 분석처럼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의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일본제국의 엘리트들은 서방 국가들로부터 여러가지 유무형의 것들을 도입해 일본제국 내에 퍼트렸는데, 그중에는 서유럽 선진국들, 특히 영국의 신사도와 매너 그리고 준법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영국과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일본의 상황에서는 영국식의 문화를 그대로 이식할 수 없었다. 때문에 '메이와쿠'라는 기존 일본의 불교적이고 전통적인 개념을 매개체 삼아서 번역 및 설명했으며, 이를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쳤는데, 이것이 집단주의적 면모가 강했던 메이지 시대의 교육 및 사회문화의 배경과 결합하였다. 이렇게 되면서 기존 영국의 매너 및 준법 문화보다도 더 광범위하고 복잡해졌다. 즉, 영국의 매너 문화가 특히 당대 일본의 공동체주의/집단주의적 사회문화 배경 및 집약적이고 압축적인 성장을 추구하던 당대 일본 사회경제의 배경과 결합하며 현대 일본 메이와쿠 문화의 기원이 된 것이다.[6]

이런 메이와쿠 문화가 가지는 긍정적인 면모와 부정적인 면모가 있는데, 긍정적인 면모으로는 사회의 평화와 균형의 유지가 용이하고 각 개인이 알아서 규칙을 지키기 때문에 규칙을 이행시키기 위한 강제적 조치의 발동으로 인한 비용이나 혹은 규칙 미이행으로 인한 비용 소모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부정적 면모로는 사회적 갈등이 제때 제때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다 문제가 커질 위험과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개성의 표출이 어려워진다는 것이 있다. 이런 메이와쿠 문화로 인해 일본 사회는 사회적 안정성이 높지만 반대급부로 표출되지 못하고 누적되어 있는 사회적 불만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메이와쿠 문화는 일본적 개인주의의 근원이기도 한데, 서구에서의 개인주의는 프라이버시를 "상대방에게 침해받지 않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확보"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반면, 일본의 개인주의는 프라이버시를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의 확보"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즉 서구에서는 사회와 다른 개인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아야할 권리를 우선시하여 개인을 인식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사회와 다른 개인을 침해하지 않아야할 의무를 우선시하여 개인을 인식한다. 때문에 서구에서는 어떤 제약과 환경에서도 온전히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를 추구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사회적 관계와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의 범위 안에서의 권리를 추구한다. 이처럼 일본의 개인주의는 서구의 개인주의와는 다른 양태를 보인다. 때문에 서구의 개인주의는 외부적 요인에 얽매이지 않는 각 개인들 사이의 대화와 토론 그리고 상호 간의 투쟁과 타협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 열려있는 개인주의라면, 일본의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속한 각 개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며 서로를 침해하지 않는 닫혀있는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인들은 본심(혼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 중에 자신을 표현하거나 갈등을 회피하는 성향이 강하고(다테마에), 이런 공동체적 혹은 사회적 삶과 분리된 사적인 장소를 소중히 여기며 그 안에서의 취미 활동 등 사적인 활동을 즐기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오타쿠 문화나 히키코모리와 같은 사회적 문제가 일본에서 가장 먼저 불거진 것 역시 일본인들이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보다 타인과 교류할 일이 거의 없는, 본인의 집이나 방과 같은 사적인 장소에서 외부세계로부터 자신을 차단시킨 상태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도 이러한 일본인들의 특성들을 잘 알기에 식당들에는 일인석을 충분히 갖춰놓는 경우가 많고, 캡슐호텔이나 인터넷 카페와 같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자신만의 공간을 제공하는 등의 일본적 개인주의에 맞춘 서비스들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7]

이런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인해 일본 사회에서 메이와쿠를 끼쳐 사회적 균형과 평온을 깰 경우에 대한 대응은 직접적인 폭력의 행사보다는 따돌림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8] 이는 스웨덴에 존재하는 얀테의 법칙 등과도 유사하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가짐인 기쿠바리(気配)나 본심을 숨기고 최대한 융통성있게 돌려말하거나 행동하는 다테마에(建前)도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고자 하기 위한 언행들이다. 일본에서 이런 종류의 문화가 발달한 이유로는 일차적으로는 유교적 예 개념 등으로 사회적/공동체적 관계와 그 속에서의 화합을 중시하는 동아시아적 경향이 일본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되며, 전근대의 기술로는 벗어나기 힘들며 단합하지 않으면 서로 싸우다 모두가 죽게될 수 있는 고립되어 있는 섬이라는 지리적 요인과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에 맞서 생존을 위해 공동체가 단합해야 했던 일본 열도의 환경적 요인이이 영향을 주어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강하게 이런 경향이 드러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메이아쿠 문화와 관련된 일본 특유의 토론 문화가 바로 네마와시(根回し)다. 원래 사전적인 뜻은 '나무를 옮겨 심기 전 뿌리를 둥글게 다듬다'라는 뜻인데, 정부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본격적인 토론 혹은 협상 전의 사전교섭, 물밑작업을 뜻하는 속어로 쓰인다. 회의나 토론 전 상급자가 하급자들에게 자세한 내용이 무엇인지, 상대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지 등을 미리 알려서 이견(異見)과 불편한 감정이 유발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흑선내항과 메이지 유신으로 상인들이 사회 주도권을 잡기 이전의 전근대 일본은 막부 체제로 대표되는 무신정권의 습성을 주로 띄고 있었으며 고관대작부터 말단 실무직 관료에 이르기까지 지배계급을 무사들이 독점하는 사회였다. 무사들은 시비가 붙으면 언제나 칼을 빼들고 서로를 해칠 수 있었고, 이는 내가 저 사람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무사들 간에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만약 상대방을 배어 살아남더라도 이는 곧 가문 간 전쟁으로 이어져 더 큰 참화를 야기할 수 있었다. 때문에 무사들끼리 가급적 충돌을 피하는 문화가 강하게 조성되었고, 이런 무사들의 문화가 일본 사회 전반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평민들의 경우 무기를 들고 있고 그 무기를 자신들을 향해 휘두를 권리가 있는 무사들을 두려워하며 이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하였고, 반대로 무사들은 평민을 밸 경우 따라오는, 심지어는 할복으로까지도 이어질 수도 있는, 여러 제재들을 두려워하여 평민들과 직접 마주치는 상황이나 평민들이 자신에게 반발하며 시비를 걸게 되는 상황을 가급적 피하려 했다.[9] 이 때문에 평등한 관계와 상하관계 모두에서 가급적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일본식 예절 문화와 언어 문화가 형성되었다.

또한 상인들이 평민화된 하급 무사 계급 출신의 군인들과 결합하여 메이지 유신으로 사회의 독점적 지배층인 사무라이들을 실권이 없는 화족으로 몰아낸 이후부터 상인들의 비즈니스 문화와 언어가 일본의 문화와 언어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군인과 화족이 모두 몰락하고, 냉전 시기를 거치며 상공인들의 주도로 일본이 고도성장을 이루게 되자 이들 상공인들이 사회와 문화 전 영역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상공인들의 비즈니스 문화와 언어가 일본의 문화와 언어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때문에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도 상공인들의 상업주의적 그리고 실리주의적 문화의 영향을 상당히 강하게 받고 있고, 이걸 간과하면 19세기 및 20세기 초중반과는 또 다른 20세기 말 및 21세기의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10]

2. 비판[편집]

2.1. 메이와쿠의 모호한 범위와 오남용[편집]

이 메이와쿠에서 말하는 '민폐'의 기준이 애매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제멋대로여서, 자기들의 입장 여하에 따라 '메이와쿠'를 아무데나 갖다붙이는 경향이 있다. 집단에서 조금만 튀거나 다르거나[11], 심지어 구성원의 수준이 약간 달라져도 메이와쿠랍시고 낙인찍는 일이 많다. 이지메학교폭력 가해자들이 제일 많이 써먹는 '저놈이 원래 집단에 적응 못하는 이상한 놈이었다'라는 변명으로 악용될 정도이니 문제가 정말 심각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그저 자기가 남들에게 따돌림당하기 싫으니 겉으로만 조용히 지내려는 습성을 배울 뿐, 진심어린 배려는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막말로 사회적 처벌과 불이익이 무서우니까 지킬 뿐이다. 까닭이 무엇이건 메이와쿠를 깨트린 상대는 사회에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간주한다. 고로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의미의 '메이와쿠'라는 특이 정서는 곧 "민폐를 끼치는 상대방을 상종하지 말고 그냥 깡그리 무시하라." 혹은 "민폐를 끼치는 상대방에게 민폐로 앙갚음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2010년대 초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적 보급으로 인해 TV 시청률이 나날이 떨어져 가던 와중에, 역대급 관심을 받으며 시청률 40%가 넘는 국민적 흥행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명대사이자 핵심 대사가 "당하면 배로 갚아준다는 게 내 신념이다!"인 것도 생각해 볼 만한 점이다. 물론 드라마의 내용은 직장인으로 상관에 의해 누명을 쓰고 매장당할 뻔하다가 복수를 하는 멀쩡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런 내용은 뒷전이고 해당 대사가 더 주목을 끌었다.

이런 비뚤어진 정서는 문화로 존중받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포장만 그럴싸하게 했을 뿐, 결국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타인에 대한 혐오 감정을 정당화하는 미사여구일 뿐이다.

2.2. 사회의 경직화[편집]

민폐를 끼치지 말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로, 간섭 및 접촉 금지를 넘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정숙할 것을 강조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도로까지 경도되어 나아갔다. #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하면 상대방이 그것을 보고 불쾌해진다는 것이다. 일본인들 대부분이 '상대방을 불쾌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감정 표출을 자제하며, 사회의 메이와쿠를 깨는, 혹은 자신의 기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별종 내지는 룰을 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인물 취급해서 아예 상종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때문에 큰 사고가 터져 가족이나 지인이 죽어나가는데도 마음대로 울 수조차 없고, 가끔은 오히려 피해자가 사회에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하는 기이한 경우도 엄청나게 많다. 앞서 언급한 이지메에 대한 핑계 예시도 마찬가지로, '그냥 그놈의 존재 자체가 불쾌하니 괴롭혀도 된다'는 마인드이니 되려 가해자가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려고 하는 것도 상대방이 먼저 요구할 때까지는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모순적이게도 남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 또한 민폐로 보기 때문에 이웃 간에조차 자유로운 왕래가 너무나 어렵다.

이런 점은 비교적 자유분방한 편인 서구권은 물론이고, 같은 동북아시아권인 중국과 그나마 일본과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 비슷한 대한민국에서도 기겁할 정도이다. # 그나마 대한민국은 2020년대 들어 동북아시아 중에서는 그나마 자유분방하고[12] 개방적인 편이 되었으니 말 다했다.

은둔형 외톨이, 집단따돌림, 엔자이 등이 여전히 횡행하는 이유 또한 바로 이 메이와쿠라는 일본의 비뚤어진 미덕 때문이다. 메이와쿠가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표현의 자유와 개성을 크게 억압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일본의 청년층 중에서 불만을 가져 메이와쿠에서 탈피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며, 특히 TikTok을 중심으로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2.3. 피해자에게 은연 중 침묵 강요[편집]

(くさ)(もの)(ふた)をする
냄새가 난다면 뚜껑을 닫아라.

역설적으로, 남이 먼저 폐를 끼치거나 실수를 저질러도 이를 발 벗고 나서 지적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른바 "너 하나만 조용하면 우리 모두가 평온할 수 있다."는 식의 비합리적인 악습으로 적용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대상이 약자나 소수자[13], 성폭력 피해자, 이지메 당한 청소년, 엔자이 피해자 등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혼자서는 너무 무력해서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도움이 절실하나, 메이와쿠라는 이름 아래 이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렇게 무고한 사람이 침묵하는 사회에서 강간, 폭행 등의 중범죄를 당해도 혼자서 앓아넘기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는 중요한 사건 사고의 목격자에게도 적용되어, 목격자가 증언이나 증거를 제출하면 칭찬은 커녕 오히려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 매체를 보면 가끔씩 피해자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이 사람이 피해자인데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가?"라며 속 터질 일이지만, 위와 같은 메이와쿠 문화에 따라 사회의 문제점들을 수면 위로 떠올려 평온한 분위기를 깨뜨린 것 자체가 논란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

특히 사회의 문제점들을 숨기면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어보여도 속으로는 사회 내부가 심각하게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음에도, 메이와쿠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파헤치고 고칠 기회조차 빼앗고 있다. 피해를 주지 말 것을 강조하는 일본에서 가해자가 마음 놓고 피해를 줄 수 있는 아이러니함이 생기는 셈이다.

미나마타병 사건이 터졌을 때도, 많은 피해자들이 질병에 대한 보상을 받기는커녕 마을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동네 이미지를 망친다며 비국민, 매국노 취급받고 숨어 살거나 마을을 떠나서 살아갔다.[14] 교린대 병원 나무 젓가락 사망 사건에서도 죽은 아이의 가족이 오히려 나중에 맹비난을 받았다는 점 역시 메이와쿠 문화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일본 내 확산 과정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의료진과 그 가족들까지 이러한 따돌림의 피해를 받고 있으며, 이것 또한 일본 내 의료붕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엄마가 딸에게 코로나19 감염 이유로 자살하는 사건까지 터졌는데 이 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 #

그리고 2021년 일본의 성우 칸다 사야카마에야마 타카히사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는데, 자살을 사주한 마에야마는 여론의 비난을 못 이겨 빤스런하기만 했고 피해자의 유족에게는 일말의 사과도 없었으며, 본인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사야카의 부모인 칸다 마사키마츠다 세이코가 기자들 앞에서 사야카의 유골함을 들고 사과한 바 있는데, 이것 또한 메이와쿠의 이러한 문제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는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배 관련 사죄에 대해서도 퇴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큰 이유인데, 한국은 왜 과거의 일로 이웃국가에 민폐를 끼치냐는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와 별개로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2.4. 집단으로서의 '일본'과 메이와쿠의 이중성[편집]

메이와쿠라는 개념이 일본인 자신들끼리만 적용하고 일본인 밖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과거 일본의 전쟁범죄, 일본군 위안부,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사죄와 반성, 하시마 섬을 비롯해 일본에 강제징용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쉬쉬하고 있다. 물론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자신들의 제국주의 시절 악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죄했지만,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과거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내뱉거나 "한일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명목 하에 은근슬쩍 과거사를 미화하는 등 제도권 차원에서의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태도 또한 타국에게는 엄연한 '민폐'인데, 그렇게나 중요시하는 메이와쿠를 외교에는 전혀 적용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또한 마찬가지다. 이 사고에서 일본 정부는 적절한 후속 대응을 실시하지 않아 인접국에 방사능을 유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십에서 수백만 톤의 방사능 오염수를 정화도 하지 않은 채 태평양에 무단 방류하여, 북서태평양 어장 생태계를 박살내 놓은 '민폐'를 끼쳤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그 어떠한 국가적인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2019년에는 일본이 국제포경위원회 탈퇴를 선언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공식적으로 고래잡이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EU를 포함한 외국에서는 이를 두고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 집단으로서의 일본이 '민폐를 싫어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개인으로서의 일본인과 전혀 다른 이중적인 국가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이는 앞서 인용된 '오지랖과 메이와쿠' 칼럼에도 언급된 부분인데, 필자는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욱일기를 흔들어 태평양 전쟁 피해국들을 자극하는 것과, 아소 다로 부총리가 나치 독일의 개헌 방식을 본받자는 망언을 해서 타국의 눈쌀을 찌푸리게 한 것은 메이와쿠가 아니라는 것이냐?' 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에는 '앞으로 외국인에게 메이와쿠 문화를 소개할 때에는 '他人に迷惑を掛けるな(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에 '他人(남)'에 외국인들은 배제된다고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라고 날카롭게 비꼬았다.

때문에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이중적인 메이와쿠를 매우 강하게 비판하는 여론이 꽤 존재한다. 당연히 일본도 사람들 사는 곳이니 이런 답답한 문화를 싫어하면 싫어하지 좋아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더불어 역사적으로 봉건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배경으로 인해 지방마다 문화적 차이가 큰 일본답게 지역별로 메이와쿠의 강도에 차이가 있어서, 도쿄교토에 비해 일본인치고 솔직하고 담백하다는 평이 많은 오사카, 후쿠오카, 오키나와 등 지역 사람들은 비교적 널널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15].

다만 이러한 일본의 이중적인 태도 역시 메이와쿠의 연장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상술했듯이,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사회의 조화를 깨뜨리는 것으로 보아 입막음 하려는 것도 메이와쿠의 일종이기 때문.

3. 다른 문화권과의 비교[편집]

기본적으로 메이와쿠 의식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예절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 또한 있다. 대표적으로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말은 하지 않거나 최대한 조심스럽고 완곡하게 하기"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기성세대처럼 '취업을 했냐', '결혼을 했냐' 등등을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는다. 다만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 '상관하지 않는다', 즉 그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마저 유보한다는 말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자기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행하는 자기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나, 만약 그것이 자신의 이해관계나 사회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게 된다면 큰 관심을 가진다. 다른 점은 한국은 이런 경우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표하는 경향이 일본보다 강하다. 다만 일본인들은, 특히 기성세대 일본인들은 이런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고 적당히 눈치를 주거나 상당히 돌려 얘기하는데, 이때 일본인들의 화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이들과 어긋나게 언행을 하면 사회생활에서 따돌림과 같은 큰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일본 문화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기술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를 일본의 '수치의 문화'라고 하며 "일본인들은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민감하다"라고 했다. 서양에 대해서는 그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죄의 문화'라고 했다.

일본 문화에서는 어떤 행위가 잘못인지 여부가 자신의 죄책감이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고해성사와 같이 신 앞에 회개해야 할 죄악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사회에서 잘못으로 인정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은 패전 후에도 대동아 이상을 부정해야 할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인 포로 중에서도 그나마 맹목적 애국주의의 색채가 옅었던 사람조차도 대륙 및 서남태평양에 대한 일본의 계획을 규탄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화는 사회 질서의 유지와 물질적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 그 사안에 대한 선악의 판단은 없기 때문에, 일본 제국 군부의 폭주로 인해 그 국가 질서 자체가 극단적으로 변화해 명백히 악한 상태로 변한 상황에선 메이와쿠 문화는 그 국가의 광기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를 독일과 비교하면 분명 독일의 경우도 전쟁 직후 독일인들이 자신들이 유럽에서 행한 일에 대해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고, 독일 국민들이 연합군이 독일 땅에 진입하여 기존의 지배자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지배자가 되는 순간까지도 국가 체제의 폭주에 순응하여 그 광기를 더욱 더 가속화시켰다.

이렇게 현상만 보면 일본인들과 독일인들의 태도는 상당히 닮았으나, 동시에 일본에서는 이것이 공동체와 주위에 대한 복종에서 기인한 반면, 독일에서는 법과 규칙 그리고 권위에 대한 복종에서 기인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의 탈전쟁화는 일본에서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독일에서는 법과 규칙을 중심으로 접근하여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

20세기 후반까지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유로 공동체의 규칙이 적용되는 곳과 적용되지 않는 곳에서의 행동 양식의 간극이 아주 큰 편이었다. 때문에 해외 여행지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의 민폐 행위는 상당히 심했고, 1970~80년대에는 영국인, 미국인, 이스라엘인과 함께 제일 기피되는 관광객으로 꼽혔다. 다만 21세기 들어서는 공동체에 의해 강제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경향이 상당히 강해졌고, 이는 일본 국내외 여론조사들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이런 일본 내의 변화와 일본인들의 해외 여행 기피 현상 등으로 인해 일본인은 기피 관광객 목록에서 이탈했고, 오히려 2010년대를 기준으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환영받는 관광객 최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즉, 메이와쿠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는 규칙이 아닌, 시대에 따라 그 범위의 확장과 축소가 이뤄지거나 내용이 바뀌는 등의 어느 정도 유동성을 지닌 문화적 양상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회의 도덕률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듯 메이와쿠의 기준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국내에서 엄격한 사회 분위기나 규칙에 따르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대륙인, 이스라엘인 등이 해외에 나가서는 진상 관광객이 되기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각자 다른 맥락에서 국내적으로는 사회 규칙에 대한 복종이 이뤄지지만 그 복종이 필요 없는 해외에서는 그 반작용으로 상당히 반항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대응의 차이가 있는데, 동아시아 문화권인 한국, 싱가포르의 경우는 국가적 캠페인을 통해 해외에서 현지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은 해외 현지인들과 현지에 거주하는/방문하는 자국민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니 자제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반면, 서구 문화권인 영국이스라엘의 경우 이런 캠페인을 잘 실시하지도 않았고 실시한다고 해도 통하지를 않아서 20세기 중반부터 2020년대 현재에 이르기까지 50년을 넘는 기간 동안 기피 관광객 국적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다른 문화권과 일본을 비교할 때 세대에 따른 일본인들의 복장 변화를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과감하고 다양한 패션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직장인들을 보면 패션이 상당히 획일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학생 때 교복을 입고 단화 신고 다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개성적인 패션을 즐기지만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 원래의 머리색으로 돌아가고 단정한 양복[16]을 입고 사회로 녹아든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후줄근한 복장, 정돈되지 않고 치렁한 머리 등이 "자유인" 혹은 프리터를 상징하며, 학생 교복같이 '직업에 알맞은 복색'이 사회적 공기(空気: 쿠우키, 분위기를 의미.)에 의해 강하게 권고 혹은 강제되는 문화 역시 일본식 메이와쿠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에서 나타나듯 사회적 분위기가 한 개인의 언행의 방향을 강제하는 것은 비단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고 한국 등 다른 동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은 물론 미국, 영국 등 서구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예컨데 대학생 시절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이다 직장을 잡으면 양복이나 비지니스 캐주얼 등 단정한 복장을 입으며 직장의 분위기에 녹아드는 것이 비단 일본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고 다른 국가들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일본에서 좀 더 두드러지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 없거나 드문 현상은 아닌 것이다.[17]

한편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 부촌 지역으로 갈수록 민폐를 극도로 삼가는 경향이 강해진다. 가장 큰 이유는 부촌 지역에서 자란 사람들일수록 본인 부모님들이 전문직[18], 고시 출신 고위공무원단, 대기업 임원, 교수 등 사회적으로 높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만큼 부모님의 체면과 위신을 지키고, 이웃이나 동네 주민들 중에도 소위 말하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고 이미지 메이킹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서민들이 많이 사는 일반 동네에서는 술집에서 술에 취해 시비가 붙어도 큰일로 번지는 일이 없지만, 부자들이 많이 사는 부촌에서는 그 상대방이 차관급 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원이나 국회의원의 가족일 수도 있어 상대방 잘못 건드렸다간 본인뿐 아니라 본인 가족들까지 정말 큰일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악플러들을 대인관계 부족 등으로 묘사하는 것[19]도 그 진의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아질수록 민폐를 삼가고 완곡어법의 사용빈도와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또한 부촌 지역으로 갈수록 다이어트 등 몸매 관리를 하는 것도 이런 의미다. 물론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서도 있지만, 그보다도 비만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줄수 있고, 비만인에게는 체지방이 분해되면서 악취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민폐를 주지 않기 위해서 외모 관리를 한다.

때문에 메이와쿠와 직접적으로 관계는 없다. 다만 이런 부촌에서의 경향이 미국, 유럽의 부촌보다는 동아시아 지역의 부촌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메이와쿠의 탄생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동아시아적 경향성이 영향을 준 바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아시아 사회에서 이런 민폐에 대해 극도로 삼가는 경향은 부촌뿐만 아니라 대도시들에서도 강하게 나타나는데, 홍콩, 싱가포르, 서울, 부산, 대구, 타이베이, 가오슝 등 동아시아권 대도시들에서는 민폐에 대한 의식이 다른 문화권 대도시들에 비해 높다. 반면 일본과 마찬가지로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에 대한 개인 대 개인의 제한 혹은 간섭은 상당히 적게 이뤄진다.

특히 전통적 공동체주의에 익숙한 고령층에서 개인주의에 익숙한 청년 세대로 갈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고, 이는 동아시아권 대도시들에서 벌어지는 세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다만 자신과 직접 관련된 사안에서도 가급적 완곡하게 표현을 하거나 직접적인 표현을 삼가는 일본보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신의 이해득실과 직접 관련된 사안에서는 좀 더 직접적인 표현을 행하는 경향이 좀 더 강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대처와 2020 도쿄 올림픽 관련하여 일본의 메이와쿠가 장단점을 보여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일본에서는 정부는 법적 강제성을 지닌 조치들을 행할 수 없으나, 메이와쿠로 인해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방역 규칙들을 준수하여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를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줄일 수 있었다.[20]

하지만 미국, 영연방 선진국들, 서유럽과 북유럽의 개방적인 의식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일본 특유의 소극적인 소통 방식을 일본 정부와 국민들이 고수하면서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상당한 불신이 발생했다.

또한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 이후 빠르게 마스크를 벗는 등의 실질적 일상회복이 이뤄진 다른 문화권에 비해,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실질적 일상 회복 속도가 더딘 것에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한 몫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3.1. 서구권[편집]

전반적으로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 비해 자유로운 면모가 있지만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사회적으로 '민폐'나 '메이와쿠' 등의 개념이 강하지 않지만 또 안 그럴 수도 있다. 서구권의 범위가 넓다보니 다양하게 적용된다.

또한 동아시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서구권에서도 어떤 사람이 민폐를 끼치는 경우, 한국이나 일본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무조건 욕 얻어 먹는 경우가 동아시아보다 확실히 드물기는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 특히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달로 이런 경향이 서구권에서도 이전보다 심해진 상황이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68운동과 통일 이전 독일 같이 수직적인 게르만 문화가 공적 영역에서도 강했던 북유럽서유럽 국가들은 일본 못지 않게 공공에서 사적인 일탈에 엄격했지만, 이 나라들도 68혁명 이후 권위주의적 전통 문화에 대한 반발로 인해 집단주의적 압력이 많이 약해졌다. 게르만 문화권도 현재 일본의 사회적 경직성에 비하기는 좀 무리가 있을 정도이다.

다만 반대로 68운동의 영향이 빗껴간 스위스오스트리아의 경우 68 이전의 독일에 비해서는 유하나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보수적 성격이 강하며 사회적 규칙으로부터의 이탈에 상당히 민감해 한다. 이 때문에 스위스오스트리아 양 국가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는 사실상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지나, 만약 피해를 끼치게 된다면 그 즉시 강력한 제재가 이뤄진다.

특히 스위스의 경우 이에 대응하는 공적인 법과 규정이 매우 철저하고 엄격하게 마련되어 있고, 이 때문에 스위스에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상황을 벌인다면 이를 지켜보던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할 수도 있다.

반대로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모나코, 몰타, 이탈리아, 그리스, 키프로스, 튀르키예[21]와 같은 남유럽의 지중해권 문화들은 예전부터 세련된 도시 문화의 공공성에 기반하여 활달한 외향적 성격을 높게 사고, 이런 활발함을 표출하며 생기는 사소한 민폐는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다.

오히려 이런 동네의 사회 분위기는 근대 이전부터 마을 광장 중심으로 발달 된 사회 생활 + 외향적 과시 문화라는 조합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에게 의도치 않게 민폐를 끼치더라도 너그럽게 보는 사회 분위기가 강해서 일본인은 물론, 같은 서양권 내에서도 개인 간의 거리를 중요시하는 북유럽인들에게도 생소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아예 웬만한 한 대륙권을 통으로 가진 광범위한 영토의 국가들이 워낙 많기에 지방마다 천지차이로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 더욱 편하다. 특히나 미국은 방대한 영토와 더불어 인구마저도 3억 명 이상이기에 더욱 하나로 꼬집기가 매우 힘들다.

미 서부나 동부의 대도시권인 경우, 남유럽권 못지않거나 그 이상의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에 비해서 중부나 남부, 중소 규모의 지방으로 갈수록 다소 보수적이고 집단을 중시하는 성향이 비춰지기도 한다. 이 역시도 평균을 따져봤을 때는 자유로운 성향이 좀 더 강하게 비춰지는 편이다.

층간 소음이란 일상적인 예만 들어도 스위스와 같이 상술한 수직적 문화적 전통에 작은 사회적 성격까지 띄어 개인간의 거리에 지극히 민감한 나라들은 밤 10시경 넘어서 가전 제품의 사소한 소음만 들려도 클레임을 받기 쉬운 반면, 애초에 집을 잠만 자는 공간으로 취급하고 길거리 축제 문화가 발달한 스페인의 경우 적어도 새벽 2-3시 이전에 층간이나 길거리 소음 문제로 경찰을 부르면 오히려 경찰이 '쓸데없이 사소한 문제로 공권력 부른다'며 은연중에 오히려 피신고인들을 옹호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영국의 경우는 위의 다른 서구권 국가들과는 다른 경향을 보인다.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것 자체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행위에 있어서는 영국 사회에 강력하게 자리를 잡은 신분제적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분 혹은 자신의 자리에 맞는 행위를 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동아시아 국가들 이상으로 상당히 강하다.

또한 경우에 따라 그리고 자신이 속한 자리에 따라 이미 정립되어있는 전통적 매너를 따를 것을 기대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한 나라가 영국이다. 대표적으로 드레스 코드에서 영국은 일상에서는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나, 장례식, 결혼식, 역사와 전통이 깊은 대회 등 특별한 자리에서는 강력한 드레스 코드가 존재한다.

또한 영국의 경우 아예 사회적 계급에 따라 발음, 억양, 어휘 사용 등 언어적 습관이 크게 갈리는 나라이며, 이런 언어적 습관을 통해 상대방의 사회 계급적 출신을 파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라이다. 킹스맨해리 하트RP를 구사하는 상류층이지만 에그시코크니를 구사하는 노동계급 출신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런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 이상의 과분한 것을 넘보거나 혹은 자신의 자리에도 미치지 못해 책임을 다하지 못한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영국 사회에서 주어지는 제재는 상당히 강력하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황색언론이 악명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공적인 규칙을 심각하게 어겼다고 판단하는 이를 그 가족까지 모두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수준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즉, 사적으로나 일상적으로는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우나, 공적인 영역에서는 동아시아 이상으로 엄격한 곳이 영국이다.

그리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경우는 신대륙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자유롭다고 볼 수는 있지만 영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다보니 공식 석상에서의 드레스 코드나 예의 범절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다. 물론 신분제도는 없는 사회지만 자유주의적인 혹은 진보적인 모습과 보수적인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여담으로 유럽에서 프랑스그리스와 같이 흡연률 자체가 높고, 사회문화적으로도 흡연에 관대한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외부로 드러난 플랫폼 같은 곳에서 공공연하게 담배를 꺼내 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 항의하면 오히려 주변에서 밖에서 담배 좀 필 수도 있지 않느냐며 적반하장으로 신고인을 바보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22]

반대로 법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도 흡연에 대해 엄격한 영국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서구권에서는 실내가 아닌 길거리를 비롯한 외부 흡연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한국에 비해 너그러운 편에 가깝다. 때문에 최근까지 실내에 흡연 공간이 마련되어 있던 일본, 한국, 대만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을 상당히 신기해하는 경우가 있었다.

4. 여담[편집]

  • 일본의 다수의 지방자치단체가 일명 '메이와쿠방지조례'(迷惑防止条例, 한국 언론의 보도에서는 민폐방지조례라고 번역하기도 한다)를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일본 위키피디아로.
  • 일본 생활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일본어를 공부해 일본 현지에 정착한 외국인들이 가장 곤욕을 치르는 게 이 메이와쿠 문화에 대한 적응이기도 하다.
  • 일부에서는 반농담조로 이를 보고 논란이 생기는 것 자체를 너무 민감하게 여긴다는 평이 있다.

[1] 한국어의 와 거의 대응된다.[2] 이 단어는 妄法이라고 옮기는 경우가 더 많다.[3] 여기서 이 부분은 '메이와쿠'가 아니라 '마도우(혼란스럽다, まどふ)'라고 훈독한다.[4] 상좌부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 후 5천 년 간은 지관법과 같은 불교 수행의 효용이 있다고 보지만, 대승 불교권에서는 '현세는 이미 말법 시대이며 석가여래가 아함부 경전에서 가르치신 기존의 수행법은 효용이 없다'는 인식이 이미 기원후 5-6세기 무렵부터 중국 불교권에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말법 사상은 정토종을 비롯한 일본 불교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5] 한국의 경우 지리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일본과 비슷한 배경들이 존재하며, 구한말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100여년 간 비지니스 매너를 필두로 매너 및 준법 문화에서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현대에도 일본과 문화적/인적 교류가 활발해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세와 근대 한국어에서 많이 쓰이던 폐/누를 대신해 민폐가 현대 한국어에서 많이 쓰이게 된 계기로 일본어이자 일본 문화인 메이와쿠를 번안한 어휘이자 문화가 민폐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을 정도이다.[6]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도 이런 연유로 메이와쿠와 유사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7] 다만 21세기 들어 홍콩,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물론 서구권에서도 청년들을 중심으로 오타쿠, 히키코모리 등의 현상이 등장 및 심화되며 사회적 관계에 대한 피로와 이에 대한 회피로서 개인적 공간에 대한 몰두와 집착 현상이 비단 일본만이 아닌 선진국들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부분이 있으며, 현대 제1세계 선진국들의 정치와 경제가 이런 부분에 대한 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들이 등장하고 있다.# 즉, 완전히 자유로운 개인을 상정한 서구에서도 결국 이는 이상적 상태에 대한 상정이고, 현실적으로는 일본이나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공동체주의적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8] 반대로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에서는 직접적인 폭력의 행사가 좀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때문에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도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언어적 폭력과 무리에 끼워주지 않는 따돌림으로 인식되는 반면, 미국과 러시아에서는 집단 폭행 등 육체적 폭력이 동반되는 것으로 인식된다.[9] 막부 시기에 무사들에게 반항하는 평민을 그 자리에서 배어버릴 수 있는 명목상의 권한이 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에도 막부 시기가 되면 해당 권리를 발동한 무사에게 자신이 살해한 평민이 진짜로 자신에게 반항했음을 입증할 책임이 생겼고, 만약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무사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고 여겨 여러가지 제재를 받거나 심지어 할복을 요구받아 할복해야 했다. 또한 어떻게 입증한다고 하더라도 ”괜히 그런 자리에 가서 시비나 걸려 사람 잡은 놈“이라거나 ”자기 감정 하나 제대로 통제 못해서 사람을 죽인 놈“이라는 딱지가 붙어 무사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에도 막부 시기 무사들은 평민과 시비가 붙더라도 본인이 직접 배는 대신 하인들이 그 평민을 적당히 두들겨 패 손봐주도록 하거나 아예 시비가 붙는 상황 자체를 피하려고 평민들이 많은 곳을 피했다. 때문에 현재의 역사학계에서는 에도 막부 시기가 되면 무사의 평민에 대한 즉결처형권은 명목상으로만 남고 실제 실행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져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보고 있다.[10] 영국과도 비교할 수 있는데, 영국의 경우 귀족들이 법적 계급으로 남아 있고 사회의 독점적 지배 계급이었던 것을 존중 받아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그리고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정치적 실권은 상실하였다. 현대에 영국 귀족들은 대부분 물려받은 재산을 투자하여 나온 수익으로 호의호식하며 별다른 직업 없이 소일거리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렇게 실권을 상실한 귀족들을 대신하여 상공인들이 사회 주도층이 되었고, 근현대 영국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언어는 이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11] 우월이든 열등이든 평균에서 벗어나서 눈에 띄는 것을 말한다.[12] 어디까지나 동북아시아 기준이지 서구권에는 미치지 못한다.[13]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소수자에는 장애인도 포함된다. 우생보호법 문서 참조.[14] 대표적으로 옴진리교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의 가족이 있는데 이 때문에 쇼코의 형인 만쿄는 동생이 저지른 범죄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동생을 저렇게 만든건 일본이라 말한 바 있다.[15] 참고로 이 세 지역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한일부부 유튜버 박가네에서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오사카를 많이 찾는 이유로 이 이유를 들었다. 일본내에서도 오사카 사람들은 별종(?)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16] 취업하려는 회사에서 두발, 복장제한을 따로 명시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취준생들은 대개 똑같은 복장을 하는 게 불문율로 통했다.#.[17] 때문에 일본 내에서 해외 언론들이 잠재적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일본에서 나타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 비단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님에도 일본만의 현상이라고 과장하며 클릭베이트를 한다는 불만도 존재한다.[18] 판사,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19] 파일:attachment/악플러/bad_reply.jpg[20]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다른 동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에서도 봉쇄 등 강력한 법적 강제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로 피해를 크게 줄인 바 있다.[21] 여기는 도농 격차가 크다.[22] 이것도 그나마 바뀐 것으로 2000년대 중반 유럽 연합에서 일괄적으로 공공장소 금연정책을 시행하기 전에는 실내 흡연 되는 곳이 많았던 곳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