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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명칭
2.1. 한자어2.2. 유럽계 칭호
3. 역사4. 현재5. 실존했던 제국의 여제 목록6. 별명으로서의 여제7. 창작물에서의 여제

1. 개요[편집]

여성으로서 황제로 즉위한 인물을 가리키는 단어.

여제는 제국의 최고 통치자 가운데 여성인 존재를 가리키는 칭호로, 전통적으로 군주국 혹은 제정체제를 갖춘 국가에서 황제와 동등하거나 이에 준하는 권위를 지닌 여성 지배자를 의미한다. 여제는 스스로 제위에 오른 경우와 황제의 사망이나 퇴위 후 권력을 이어받은 경우, 혹은 섭정의 형태로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한 경우 모두를 포함한다. 황후와는 구분되며, 황후는 황제의 배우자로서의 지위에 머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역사적으로 여제라는 지위는 매우 드물게 나타났으며, 전통적 남성 중심의 권력 계승 구조에서 이탈하는 사례로 여겨져 특별한 정치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출현했다. 예컨대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측천무후처럼 스스로 황제의 칭호를 선포하고 독립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한 사례가 존재하며, 유럽에서는 동로마 제국이 황후가 단독으로 제위를 차지하거나 섭정의 위치에서 제국을 통치한 예가 있다. 동로마 제국의 이리니 여제나 조이 여제 같은 인물들이 이에 속한다.

여제는 군사, 행정, 외교 등 제국 운영 전반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때로는 기존 권력 구조에 변화를 일으키는 정치 개혁의 중심 인물이 되기도 했다. 일부 여제는 종교적 권위까지 흡수하여 신정 정치의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 존재 자체가 전통적 권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기도 했으며, 이에 따라 역사적 기록이나 후대의 평가에서 과도하게 긍정되거나 부정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오늘날 '여제'는 역사적 맥락을 넘어, 문학과 예술, 문화 콘텐츠에서 상징적인 여성 권력자의 표상으로 자주 활용되며, 여성의 정치적 주체성과 권위에 대한 담론에서 중요한 인물 유형으로 여겨지고 있다.

2. 명칭[편집]

2.1. 한자어[편집]

  • 여제
  • 여황
  • 여황제

2.2. 유럽계 칭호 [편집]

    • 라틴어 및 로망스어군
      • 라틴어: 임페라트릭스(Imperatrix)
      • 프랑스어
    • 영어: Empress
    • 러시아어: 임페라트리차
  • 라틴어 카이사르 파생 단어
    • 독일어: 카이저린(Kaiserin)
    • 러시아어: 차리차
  • 기타
    • 그리스어

유럽 언어에서는 여성 황제(여제)의 칭호와 남성 황제의 부인(황후)로서 갖는 칭호가 겹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확실한 구분이 필요한 경우엔 영어의 Empress regnant처럼 별도의 수식어를 붙인다.

3. 역사[편집]

3.1. 한자문화권[편집]

3.1.1. 중국[편집]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유일하게 정식으로 즉위한 여제이며, 대부분의 여성 권력자들은 직접 제위에 오르지 않고 수렴청정 등의 형태로 권력을 휘둘렀다.

측천무후 이전에는 북위에서 효명제의 딸이 잠시 여제로 옹립된 적도 있고, 당나라 초기 진석진이라는 여성이 문가황제라 칭하며 난을 일이킨 적도 있지만, 전자는 성별을 속이고 추대되었다가 하루만에 폐위, 후자는 단명한 지방 반란정권이었기에 일반적으로는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3.1.2. 일본[편집]

전근대 일본에서는 총 8명의 여성 천황이 재위했으며, 그 중 6명은 고대 아스카~헤이안 시대에, 2명은 에도 시대에 재위했다.

이들은 상당수가 남성 실권자에게 권력을 위임한 상태로 재위하여 실질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제정한 황실전범에서는 황위 계승을 남성 황족으로 한정하여 여성 황족의 즉위 가능성을 원천봉쇄했고, 이는 1947년 일본국 헌법 체제 하에서 제정된 현행 황실전범도 마찬가지다.

3.1.3. 베트남[편집]

베트남에서는 대월 리 왕조(이가) 말기에 리(이) 혜종의 차녀 소성공주 리펏킴(이불금)이 황태녀로 책봉되었다가 여제로 즉위, 리(이) 소황제가 되었다[1]

그러나 당시 대월 조정의 실권은 외척인 쩐투도(진수도)에게 넘어간 상태였기에, 소황은 곧 쩐투도의 조카 쩐까인(진경)과의 결혼을 강요당했고, 그녀가 남편에게 선양하고 황후가 되면서 리 왕조에서 쩐 왕조(진가)로의 왕조 교체가 이루어졌다.[2]

이후 리 소황 본인과 언니 순천공주를 제외한 리씨 황족 대다수가 쩐 왕조에 학살당하며 멸족됐고, 그나마 바다 건너 동쪽으로 나아간 끝에 고려에 도달한 방계인 리롱뜨엉(이용상)과 그 후손인 화산 이씨만이 화를 피할 수 있었다.[3]

3.2. 유럽 문화권[편집]

3.2.1.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편집]

유럽식 황제 칭호의 시초인 로마 황제로마 공화정의 여러 관직과 칭호의 결합으로 형성되었는데, 그 중 황제의 물리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2개 이상 군단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인 임페리움(Imperium)을 소지한 임페라토르(Imperator)였다.

따라서 전장에 나서서 군을 지휘할 수 없는 여성은 해당 칭호를 받을 수 없었고, 황제의 모후 또는 아내로서 아우구스투스의 여성형인 아우구스타 칭호를 받아 실권자로 군림했던 여성 황족들 역시 임페라토르는 될 수 없었기에, 이러한 여성들은 여제가 아닌 태후 또는 황후로서 남성 황제의 섭정을 맡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로마 제국에서 남성 황제의 섭정이 아닌, 단독으로 황제급 칭호를 받아 재위하여 여제로 평가받을 수 있는 최초의 사례는 8세기 말 동로마 제국에서 즉위한 이리니였는데, 그녀는 성상 파괴 문제로 갈등을 빚던 아들 콘스탄티노스 6세를 폐위한 후 허수아비로나마 남성 황제를 옹립하지 않고, 그녀 자신이 단독으로 즉위한 여제가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남성만이 진정한 황제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진 관례를 깬 이 행위는 제국 국내외에서 극한 반발을 불러와, 서방에서는 교황이 로마 황제위가 공석인 상태라 주장하며 프랑크인의 왕 카롤루스를 황제로 추대함으로서 새로운 서방 제국을 창설하는 명분을 제공했고, 동로마 제국 내에서는 니키포로스 1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이리니를 축출함으로써 다시 남성 황제에 의한 통치 체제를 복구했다.

이리니 이후에는 오랫동안 여제가 등장하지 않다가 11세기 중엽 마케도니아 왕조 시대에 콘스탄티노스 8세의 딸 조이와 테오도라 자매가 황제로 즉위했다.

조이와 테오도라는 비황족 출신으로 황실에 시집 온 후 여제가 되었던 이리니와 달리, 200여년간 제국을 장기 통치한 마케도니아 왕조의 마지막 황녀였고, 콘스탄티노스 8세 사후의 남성 황제들도 조이와의 결혼 및 양자 관계를 통해 제위를 확보했기에[4],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통성을 인정받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테오도라의 사망을 끝으로 로마 제국의 여제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았으나, 4차 십자군 이후에 수립된 잔존국트라페준타 제국에서 3명의 여제가 재위하긴 했다.

3.2.2. 러시아[편집]

러시아 제국의 전신인 루스 차르국에서는 차르 표도르 1세의 사망을 끝으로 류리크 왕조가 단절되자, 그 황후(차리차)였던 이리나 고두노바가 군주로서의 차리차, 즉 여제로서 재위했으나 얼마 안 가서 오빠 보리스 고두노프에게 양위하여 임시 재위로 그쳤다.

본격적인 러시아의 여제는 표트르 대제가 임페라토르 칭호를 도입하며 시작된 러시아 제국에서 재위한 여제(임페라트리차)들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부계 계승이 확립되지 않아 황후 출신의 여제[5] 및 황녀 출신의 여제[6]가 등장했고 그 중에서 둘[7]은 쿠데타를 일으켜 남성 황제를 축출하고 즉위하기도 했는데, 이들이 활동한 시대는 이른바 여제 시대라 불린다.

그러나 예카테리나 2세 사후에 즉위한 파벨 1세는 제위 계승법을 확립하며 살리카법을 도입, 여성의 제위 계승을 법적으로 원천봉쇄했고 이후에는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여제가 등장하지 않았다.

3.2.3. 기타[편집]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여성 군주 마리아 테레지아도 종종 여제라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 여제로 즉위한 적은 없다.

우선 합스부르크 제국은 하나의 제국이 아니라 여러 왕국 및 영지들의 집합이라 제국 전체를 대표할만한 황제 칭호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중심부인 오스트리아는 제국은 커녕 왕국도 아닌 대공국이었다.

그나마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Kaiserin 칭호를 보유하긴 했는데 신성 로마 황제 선거에서 피선거권은 남성에게만 있었고, 실제 황제로 선출된 것도 그녀 본인이 아니라 남편 프란츠 1세였기에, 이는 여제가 아닌 황후로서 보유한 것이다.

3.3. 중근동 문화권[편집]

유럽과 인접한 중근동 일대에서는 왕중왕을 칭한 이란계 제국인 파르티아와 사산 제국(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여제가 재위했는데, 이들은 제위 계승이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즉위하여 안정적으로 재위를 유지하지 못했다.

근동의 레반트 지방에서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을 선언한 팔미라 제국에서는 제노비아 여제가 아들 바발라투스(와흐발라트)와 함께 즉위하여 로마식 황제 칭호와 중동식 왕중왕 칭호를 혼용하기도 했으나, 얼마 못 가고 로마군에 진압당하고 멸망하여 단명정권으로 그쳤다.

중세 이후에는 이슬람이 중근동 문화권의 주류 종교가 되면서, 황제급 칭호를 비롯한 군주의 지위는 남성이 독점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더이상 여제가 등장하지 않았다.

3.4. 인도 문화권[편집]

인도 문화권에서도 황제급 칭호를 사용하는 일부 국가에서 재위한 여성 군주들이 종종 등장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며 자국 군주인 빅토리아 여왕에게 인도 여제 칭호를 바쳤는데, 해당 칭호는 인도에 한해서만 사용하고 본토에서는 기존의 영국 여왕 칭호를 계속 사용했다.

3.5.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편집]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제국에서는 1916년부터 1930년까지 자우디투 여제가 재위했는데, 당시 실권은 이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되는 조카 라스(대공) 타파리 마콘넨에게 있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그녀 이전에 세계 각국에서 재위했던 여제들은 이미 고인이었고, 1930년 그녀의 사망을 끝으로 더이상 여제가 등장하지 않았기에 인류 역사상 마지막 여제라는 유니크한(?)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4. 현재[편집]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황제 또는 Emperor로 번역되는 칭호를 사용하는 군주는 일본천황이 유일하며, 현행 황실전범에서는 남성 황족만이 황위를 계승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황실전범이 개정되서 여성 천황의 즉위가 가능해지거나, 멸망했던 옛 제국의 황실이 복고되어 여제가 즉위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적법하게 여제의 지위를 인정받는 인물이 나타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한편 몇몇 국가의 구황실에서 여성이 가문의 수장이 되거나 대놓고 황제 즉위 퍼포먼스를 벌이는 사례는 가끔 나타나긴 하지만, 해당 국가들은 이미 군주제가 폐지된 상태이기에 법적으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며, 본인이 속한 가문 내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5. 실존했던 제국의 여제 목록[편집]

6. 별명으로서의 여제[편집]

별명으로서의 황제 용법과 비슷하게 특정 분야에서 1인자의 위상을 가진 여성에 대한 찬양의 의미로 쓰인다.

7. 창작물에서의 여제[편집]

[1] 혜종의 장녀 순천공주는 이미 시집 간 상태라 제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2] 쩐투도는 왕조 교체 이후에도 본인이 즉위하지 않고 통국태사라는 관직을 역임하며 통치했다.[3] 이외에도 리 왕조 방계로서 고려에 정착한 가문으로는 정선 이씨가 있지만, 해당 가문은 소황의 즉위와 왕조 교체 이전에 이미 고려로 이주한 상태였다.[4] 로마노스 3세와 미하일 4세, 콘스탄티노스 9세는 조이의 남편으로서, 미하일 5세는 조이의 양자로서 즉위했다.[5] 예카테리나 1세, 예카테리나 2세[6] 안나 이바노브나,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7]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예카테리나 2세[8] 효명제 사후 남자로 성별을 속이고 옹립되었다가 하루만에 폐위되었다.[9] 당 고종 시기에 황제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한 여인.[10] 이씨의 당을 멸하고 무씨의 주나라(무주)를 세움으로써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정식 국가의 황제로 즉위한 여제라는 기록을 세웠다.[11] 최초의 여성 천황(덴노).[12] 아스카 시대 종식 및 나라 시대 개막.[13] 헤이안 시대에 즉위했다.[14] 에도 시대에 즉위했으며, 코켄 덴노 이후 500여년만에 등장한 여성 천황.[15] 에도 시대에 즉위했으며, 이후로는 더이상 여성 천황이 즉위하지 않았다.[16] 지금의 베트남.[17] 이사브리아 왕조의 황제 레온 4세의 황후이자 콘스탄티노스 6세의 모후. 아들을 폐위시키고 황제로 즉위하여 로마 제국 최초의 여제가 되었다.[18] 마케도니아 왕조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8세의 장녀.[19] 콘스탄티노스 8세의 차녀.[20] 남편 표도르 1세 사후 여성 차르(차리차)로 즉위했다가 오빠 보리스 고두노프에게 양위했다.[21] 무술을 하는 여제가 아니라 그냥 이름이 무사다. 노예 출신으로 황후가 되었다가 여제로 즉위한 입지전적인 인물.[22] 아들 바발라투스(와흐발라트)를 황제로 옹립하고 섭정으로서 통치하다가 공동 황제가 되었으며, 로마식 황제 칭호와 중동식 왕중왕 칭호를 혼용했다.[23] 영국 여왕이자 인도 여제. 여제 칭호는 인도에 한해서만 사용하고 영국 본토에서는 여왕 칭호를 계속 사용했다.[24] 에티오피아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여제, 그리고 실제 제국의 여제로 군림했던 세계 역사상 마지막 여제.[25]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작중 등장한 유일한 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