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펼치기 · 접기 ]
체제
역사
분할국
잔존국
상징
정치
법률
군사
행정구역
종교
문화
문헌
건축
경제
외교
정체성
창작물
Imperium Palmyrenum
팔미라 제국
파일:1000000871.jpg
노랑 영토
1. 개요2. 상세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팔미라 제국은 3세기 중엽, 오늘날 시리아 중부에 해당하는 사막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로, 로마 제국의 혼란기를 틈타 잠시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다. 이 국가는 본래 로마 제국의 속주 내 자치 도시에 불과했으나, 260년 오다에나투스가 사실상 독립적인 지위를 획득하며 정치적 중심지로 부상하였고, 이후 그의 아내 제노비아가 실질적인 지배권을 장악하면서 270년에는 독자적인 제국을 선포하게 된다.

2. 상세[편집]

팔미라 제국은 당시 로마 제국이 겪고 있던 내부 혼란과 외부 침입이 겹친 '3세기의 위기' 속에서 등장하였다. 로마 제국의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산 왕조의 군주 샤푸르 1세에게 포로로 잡혀 사망하자, 제국의 통치력은 급속히 약화되었고 각지에서 자칭 황제들이 난립하였다. 팔미라의 오다에나투스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로마 동방의 방위를 자임하며 사산 왕조와의 전투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고, 로마로부터 '동방의 총지휘자'라는 칭호를 부여받아 사실상의 왕권을 행사하게 된다.

오다에나투스가 암살된 이후, 그의 아내 제노비아가 어린 아들 와바랄라투스를 앞세워 섭정을 맡고, 곧 실권을 장악하여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구축한다. 제노비아는 자신을 클레오파트라의 후손이라 칭하며 고대 이집트 및 헬레니즘 문화를 적극적으로 계승하였고, 로마 제국에 맞서 독립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녀는 팔미라를 중심으로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아라비아 속주뿐 아니라 아나톨리아의 상당 부분까지 장악하며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제국을 형성하였다.

팔미라 제국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팔미라의 부를 기반으로 하여 중계무역과 문명 교류를 촉진시켰다. 이 나라는 아람어를 공용어로 삼았으며, 그를 계승한 현 시리아인의 선조 격인 아람계 주민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스어도 행정과 문학에 사용되었고, 로마 및 동방의 영향을 동시에 반영하는 혼합적인 문화가 발전하였다.

그러나 팔미라 제국의 확장은 곧 로마 제국의 반격을 초래하였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제국의 통합을 목표로 삼고 군사 원정을 단행하여, 272년 팔미라 제국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제노비아를 포로로 잡아 로마로 압송하였다. 이로써 팔미라 제국은 멸망하고, 그 영역은 다시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팔미라 제국은 비록 짧은 시간 존재했던 국가였으나, 로마 제국의 구조적 취약함과 지역 세력의 자율성이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다. 동시에 이 국가는 동서 문명이 접촉하고 융합하던 교차점에서 이루어진 문화적 실험장이었으며, 제노비아라는 강력한 여성 지배자의 등장은 고대 역사 속에서도 이례적인 정치적 현상으로 평가된다.

3. 관련 문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