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국기 |
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2.1. 건국[편집]
2.2.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향한 경쟁[편집]
2.3. 니케아의 로마 제국 재건[편집]
2.4.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편집]
2.5. 멸망 이후[편집]
1461년 제국 멸망 이후, 마지막 황제 다비드를 비롯한 황족들은 코스탄티니예(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압송되었다.
오스만 황제 메흐메트 2세는 처음에는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태도를 보였으나, 곧 돌변하여 다비드와 황태자 알렉시오스 등 남성 황족들을 몰살시키고, 여성 황족들은 자신의 하렘에 넣거나 고관대작 및 장군들에게 시집 보냈다.
이때 다비드의 막내아들 요르요스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척 하며 트라페준타의 남성 황족 중 유일하게 목숨을 부지했다가 조지아 왕국으로 탈출했는데, 이후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알 수 없다.
오스만 황제 메흐메트 2세는 처음에는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태도를 보였으나, 곧 돌변하여 다비드와 황태자 알렉시오스 등 남성 황족들을 몰살시키고, 여성 황족들은 자신의 하렘에 넣거나 고관대작 및 장군들에게 시집 보냈다.
이때 다비드의 막내아들 요르요스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척 하며 트라페준타의 남성 황족 중 유일하게 목숨을 부지했다가 조지아 왕국으로 탈출했는데, 이후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알 수 없다.
3. 정치[편집]
3.1. 황제[편집]
3.2. 정치 제도[편집]
4. 대외 관계[편집]
4.1. 라틴 제국[편집]
4.2. 니케아 제국 및 재건 동로마 제국[편집]
트라페준타 제국의 숙적으로 아나톨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트라페준타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려면 반드시 꺾어야 하는 상대였다.
그러나 트라페준타는 니케아와의 전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고, 1261년 니케아가 수도를 탈환하고 로마 제국을 재건한 이후에는 명분론에서도 밀리게 되었다.
이에 트라페준타 황실은 재건된 동로마 제국의 우위를 인정하여 외교 문서에서 스스로를 로마 황제가 아닌 트라페준타 황제, 데스포티스(전제군주) 등으로 칭하며 굽히는 자세를 보여줬고, 팔레올로고스 왕조와 통혼하기도 했으나, 내부적으로 로마 황제 칭호의 사용을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그러나 트라페준타는 니케아와의 전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고, 1261년 니케아가 수도를 탈환하고 로마 제국을 재건한 이후에는 명분론에서도 밀리게 되었다.
이에 트라페준타 황실은 재건된 동로마 제국의 우위를 인정하여 외교 문서에서 스스로를 로마 황제가 아닌 트라페준타 황제, 데스포티스(전제군주) 등으로 칭하며 굽히는 자세를 보여줬고, 팔레올로고스 왕조와 통혼하기도 했으나, 내부적으로 로마 황제 칭호의 사용을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4.3. 조지아 왕국[편집]
건국 초기부터 트라페준타는 조지아의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받았고, 이후에도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4.4. 오스만 제국[편집]
제국 말기에 등장한 숙적으로 트라페준타는 1461년에 멸망할 때까지 군사적, 외교적 수단을 가리지 않고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