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펼치기 · 접기 ]
체제
역사
분할국
잔존국
상징
정치
법률
군사
행정구역
종교
문화
문헌
건축
경제
외교
정체성
창작물
파일:Banner_of_the_Empire_of_Trebizond.svg
국기
1. 개요2. 역사
2.1. 건국2.2.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향한 경쟁2.3. 니케아의 로마 제국 재건2.4.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2.5. 멸망 이후
3. 정치
3.1. 황제3.2. 정치 제도
4. 대외 관계5. 둘러보기 틀

1. 개요[편집]

1204년부터 1461년까지 흑해 연안 지방을 지배한 동로마 제국(로마 제국)의 계승 국가.

로마 황제를 배출한 콤니노스 왕조 혈통의 황제들이 다스렸고 스스로도 로마 제국이라 일컬었지만 동시대에 공존했던 니케아 제국과 달리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복 및 제국 재건에 실패하여 정통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2. 역사[편집]

2.1. 건국[편집]

1185년 안드로니코스 1세가 피살당하자 그의 손자인 알렉시오스는 조지아 왕국으로 망명했고, 12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4차 십자군에 의해 함락당하자 조지아군과 함께 돌아와 트라페준타(트라브존)에서 황제를 칭했다.

2.2.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향한 경쟁[편집]

2.3. 니케아의 로마 제국 재건[편집]

2.4.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편집]

2.5. 멸망 이후[편집]

1461년 제국 멸망 이후, 마지막 황제 다비드를 비롯한 황족들은 코스탄티니예(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압송되었다.

오스만 황제 메흐메트 2세는 처음에는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태도를 보였으나, 곧 돌변하여 다비드와 황태자 알렉시오스 등 남성 황족들을 몰살시키고, 여성 황족들은 자신의 하렘에 넣거나 고관대작 및 장군들에게 시집 보냈다.

이때 다비드의 막내아들 요르요스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척 하며 트라페준타의 남성 황족 중 유일하게 목숨을 부지했다가 조지아 왕국으로 탈출했는데, 이후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알 수 없다.

3. 정치[편집]

3.1. 황제[편집]

3.2. 정치 제도[편집]

4. 대외 관계[편집]

4.1. 라틴 제국[편집]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고 있는 외세이므로 트라페준타 제국이 반드시 꺾어야 하는 상대였으나, 라틴 제국과 본격적으로 충돌하기도 전에 니케아 제국에게 패하여 경쟁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유의미한 충돌은 없었다.

4.2. 니케아 제국 및 재건 동로마 제국[편집]

트라페준타 제국의 숙적으로 아나톨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트라페준타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려면 반드시 꺾어야 하는 상대였다.

그러나 트라페준타는 니케아와의 전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고, 1261년 니케아가 수도를 탈환하고 로마 제국을 재건한 이후에는 명분론에서도 밀리게 되었다.

이에 트라페준타 황실은 재건된 동로마 제국의 우위를 인정하여 외교 문서에서 스스로를 로마 황제가 아닌 트라페준타 황제, 데스포티스(전제군주) 등으로 칭하며 굽히는 자세를 보여줬고, 팔레올로고스 왕조와 통혼하기도 했으나, 내부적으로 로마 황제 칭호의 사용을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4.3. 조지아 왕국[편집]

건국 초기부터 트라페준타는 조지아의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받았고, 이후에도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4.4. 오스만 제국[편집]

제국 말기에 등장한 숙적으로 트라페준타는 1461년에 멸망할 때까지 군사적, 외교적 수단을 가리지 않고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려 했다.

5. 둘러보기 틀[편집]

[1] 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의 고손자이자 안드로니코스 1세의 손자.[2] 전임 황제의 사위로서 즉위했고 콤니노스 혈통이 아니다.[3] 유일한 팔레올로고스 왕조 출신 트라페준타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