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의[편집]
虎父虎子
호부견자에서 유래된 걸로 보이는 비표준어이다.[1] '잘난 부모 밑에는 잘난 자식밖에 나올 수 없다' 또는 부모복이 있어야 자식복도 있다라는 의미. 부전자전의 좋은 예시다. 아버지 父 자에 아들 子 자가 쓰였지만, 여기에서 父子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이라는 보다 넓은 뜻이다. 따라서 '호모(虎母)'나 '호녀(虎女)' 등의 표현은 잘못.
영어 숙어로 The apple doesn't fall far from the tree.라는 비슷한 표현이 있다. 이 경우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2]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측면도 있다. 다만, 보통은 능력 얘기가 아니라 인성적인 면을 가리키는 의미가 더 크다.
다른 말로는 호부 밑에 견자 없다라고도 하며, "호랑이는 개를 낳지 않는다"로 풀어 쓸 수 있다. 이것은 좋은 환경에서는 좋은 결과가 나타남을 의미한다. 즉, 견부견자와는 정반대의 경우다.
물론 의미상으로만 봤을 때는 틀림없이 맞는 말이지만,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A이면 B인 경우'를 말하는 게 아니라 'A이면 B이다'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뛰어나면 자식도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속담인데, 이런 류의 속담들이 다 그렇듯이 맞는 경우만 맞고 반례가 엄청나게 많다.
사실 호부 밑에 호자 났다고 해도 손자, 증손자까지 호랑이 같은 자식이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결국 호부 밑에 견자가 생기게 된다. 호부견자 참고. 또한, 견부 밑에 호자가 생길 수 있다. 이것은 견부호자 참고. 보통은 극히 뛰어난 호자도 막장 수준의 견자도 아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
호부견자에서 유래된 걸로 보이는 비표준어이다.[1] '잘난 부모 밑에는 잘난 자식밖에 나올 수 없다' 또는 부모복이 있어야 자식복도 있다라는 의미. 부전자전의 좋은 예시다. 아버지 父 자에 아들 子 자가 쓰였지만, 여기에서 父子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이라는 보다 넓은 뜻이다. 따라서 '호모(虎母)'나 '호녀(虎女)' 등의 표현은 잘못.
영어 숙어로 The apple doesn't fall far from the tree.라는 비슷한 표현이 있다. 이 경우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2]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측면도 있다. 다만, 보통은 능력 얘기가 아니라 인성적인 면을 가리키는 의미가 더 크다.
다른 말로는 호부 밑에 견자 없다라고도 하며, "호랑이는 개를 낳지 않는다"로 풀어 쓸 수 있다. 이것은 좋은 환경에서는 좋은 결과가 나타남을 의미한다. 즉, 견부견자와는 정반대의 경우다.
물론 의미상으로만 봤을 때는 틀림없이 맞는 말이지만,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A이면 B인 경우'를 말하는 게 아니라 'A이면 B이다'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뛰어나면 자식도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속담인데, 이런 류의 속담들이 다 그렇듯이 맞는 경우만 맞고 반례가 엄청나게 많다.
사실 호부 밑에 호자 났다고 해도 손자, 증손자까지 호랑이 같은 자식이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결국 호부 밑에 견자가 생기게 된다. 호부견자 참고. 또한, 견부 밑에 호자가 생길 수 있다. 이것은 견부호자 참고. 보통은 극히 뛰어난 호자도 막장 수준의 견자도 아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
2. 실제[편집]
2.1. 국내[편집]
- 강희맹 - 강항: 고조손 관계이기는 하지만...
- 구인회 - 구자경 - 구본무, 구본능 - 구광모: 할아버지는 양반 가문 출신이자 LG 그룹을 창업한 회장이고, 뒤에서 독립자금을 지원했으며 독립운동도 지지 했고[3], 아버지는 기반을 갈고 닦아 지금의 LG그룹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장남은 평소에도 늘 검소하고 소탈한 삶을 살 정도로 겸손하고 자기 그룹 야구팀에도 큰 애착을 갖고 지원해주었으며, 죽은 후에도 화환을 일절 안 받는다든가 가족, 친지들 끼리만 비공개 장례 치르고 싶다 할 정도로 검소한 모습을 보였다. 차남은 논란 거리가 없진 않으나 대한민국 야구 발전에 힘 썼으며 KBO 총재로 지내기도 했다. 손자는[4] 양아버지[5]와 마찬가지로 성품도 소탈하고 검소한 모습을 보이며 LG 그룹의 후계자로 채택 되었다.
- 근초고왕 - 근구수왕: 위의 3대에 비해 좀 과소평가되는 면이 있지만, 아버지는 근 20년간 국력을 축적하여 이를 바탕으로 무수한 정복전쟁을 감행하고, 중국/일본과의 외교를 통해 백제를 고구려와 맞서는 한 축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고, 아들은 아버지를 수행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워 백제판 흑태자로 평가받고 있다. 근구수왕의 장남인 침류왕 때까지 백제의 전성기라 할 수 있지만, 침류왕은 너무 일찍 요절해서 별다른 업적이나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리고 근구수왕의 차남이자 침류왕의 동생인 진사왕 때부터 백제는 본격 막장테크를 타게 된다.
- 김동률 부자: 항목 참고.
- 김무생 - 김주혁: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배우로 이성계 전문 배우로 유명했고[6] 아들 역시 배우로서 대성했다. 그런데 김무생 생전에는 김주혁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김주혁도 아버지처럼 배우가 되려고 했지만 김무생이 반대했기에 벌어진 갈등 때문으로 보인다.그래도 아들을 인정하고 함께 광고도 찍긴 했다[7].김무생 사후 무릎팍도사에 나와 후술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 아쉬운 부분은 좋은 선생을 두고도 한번도 조언을 요청하지 않았다. 항상 작품을 들어가면 혼자 끙끙 고민했다. 한 번쯤 아버지의 조언을 구할 수도 있었는데.... 또 한 번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못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후회만 남는다."고... [8] 하지만 아들은 2017년 10월 30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해 주변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 김성일 - 김반석, 김지석: 조부는 만주에서 독립의용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셨고 손자들은 각각 IQ 150의 뛰어난 스펙의 천재, 연기와 예능에서 잘 나가는 유명 배우 이다.
- 김정신 - 김인건: 아버지는 한국 농구 국가대표팀 원년 멤버이자 지도자, 행정가로 초창기 한국 농구의 기반을 다졌고, 아들 역시 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구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고, 이후에는 삼성전자 실업농구단의 장수 감독, 농구인 최초의 태릉선수촌장을 역임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다.
- 김필순 - 김덕린: 아버지는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으며, 아들은 중국에서 잘 나가는 미남 배우에 늘 멜로영화를 찍었던 그였으나 아버지께서 독립운동 도중 살해 당하신 것 때문에 이후로 항일 영화 작품만을 찍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독립운동도 지지하는 개념인이다.
- 마해송 - 마종기: 아버지는 동화작가, 아들은 시인 겸 의사로 대를 이어 문학활동을 하고 있다.
- 문재린 - 문익환 / 문동환 형제 - 문성근: 2대가 다 목사이지만 동시에 가족 모두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이 집안은 윤동주와도 연이 깊은데 바로 윤동주의 이웃사촌이기 때문. 문재린 목사는 북간도 룽징(용정) 명동촌 지역에서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했었다.[14] 그 아들인 문익환도 윤동주와 함께 일제에 항의하는 동맹퇴학에 가담함으로써 독립운동에 민주화 운동의 대부이다. 그 동생인 문동환 목사도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그리고 문성근은 배우로서 크게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사생활도 깨끗하고, 사회적으로도 소신있는 발언을 자주하여 큰 호평을 듣고 있다[15].
- 박봉성 부자: 아버지는 유명한 만화가였고, 그의 아들 역시 주축이 되어 박봉성 프로덕션이란 이름으로 계속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 배국민 - 배호: 아버지는 중국을 거점으로 하여 광복군 제 3지대출신으로 항일활동을 하던 독립투사로 1977년에 건국포장 추서되었고 아들은 1960년대 후반을 풍미한 가요계의 전설 중 한 명인 가수이다. 하지만 두 부자는 안타깝게 병으로 요절했다.
- 서근배 - 최승현: 외할아버지는 소설가, 외손자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자 래퍼,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물론 대마초 흡입이 크나큰 흑역사이긴 하지만..
- 설민경 - 황재균: 어머니는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로 금메달까지 따셨고, 아들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야구선수로 금메달을 땄다. 여담으로, 황재균의 아버지도 테니스 선수셨다.
- 안성기 - 안다빈: 아버지는 아역 때부터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국민배우이고 아들은 미국에서 미술 작품활동하는 예술가이다.
- 안인수 - 안태훈, 조마리아 - 안중근: 조부는 진해현감, 아버지는 서당 훈장님, 아들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독립운동가이다. 사격실력이 뛰어나서 사냥도 잘했으며, 이토 히로부미를 멀리서 명중시킬 정도로 먼치킨 급의 실력자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체포 후 사형을 앞뒀음에도 덤덤히 받아들이고, 사형 집행 후에도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가 되었으며 그들을 하드캐리 하는 등 수많은 활동을 했다.
- 안재형 & 쟈오즈민 - 안병훈: 부모는 올림픽에서 메달까지 딸 정도로 유명한 탁구선수였고, 아들은 프로 무대에서 3번 우승한 골프선수다.
- 여홍철 - 여서정: 아버지는 아시안게임 도마 2관왕을 달성하고 자체 개발한 기술이 있을 정도로 훌륭한 선수이며 딸 또한 2018 아시안게임에서 32년만에 도마 여자부 금메달을 획득했다.
- 유기연 - 유일한, 유특한 - 유재라, 유일선/유승필[22]: 할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상인이요, 또한 유일한과 유특한을 키워낸 인물이고, 아버지는 유한양행의 창업자이자 독립운동가. 딸 역시 전 재산을 모두 환원했고, 아들 유일선 변호사 역시 처음에는 손녀 등록금마저 받지 않으려 했고, 받고 나서는 등록금 쓰고 남은 돈을 모두 빈민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숙부인 유특한 유유제약 창업주는 형 수준은 아닐지언정 도덕적으로 기업을 꾸렸고,[23] 그의 아들 유승필 역시 유유제약의 회장이다. 다만, 친일 경력이 있는 유명한을 끼면 호부견자다.[24]
- 윤두호 - 윤영하: 두 부자 모두 북한으로부터 조국을 지켜낸 공을 세운 해군.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들은 젊은 나이에 전사했다.
- 이소선 - 전태일: 아들의 분신 이후, 어머니는 노동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노동환경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다.
- 이순신 - 그 밑의 후손들: 충무공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사 최고의 성웅이시고 아들, 조카 또한 그의 밑에서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5대손 이봉상은 이인좌의 난 당시에도 투항을 거부하고 충절을 지키며 목숨을 잃었으며[28], 이후로도 정묘호란, 병자호란, 병인양요 등지에서 충무공의 후손들이 참전한 기록이 남아있다. 더욱이 12대손 중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 전쟁에도 참전한 분이 계신다. 현존하는 충무공의 직계후손 중에도 해군 제6항공전단 61초계기전대장으로 근무 중인 이진용 대령이 있고, 이분의 아들(!)도 해군사관학교 생도이며, 자식은 아니지만 같은 항렬의 친척 여생도도 있다. 그야말로 집안 전체가 국가유공자.
- 이자춘 - 이성계 - 진안대군, 정종, 태종 - 세종대왕 - 세종의 적자들: 조선 초반을 이끈 먼치킨 부자 라인. 이자춘은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탈환하는데 공을 세웠고, 이성계부터 세종까지야 말할 건덕지도 없고, 세종의 다른 적자들 모두 한 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했었다. 문종은 세종과 가장 근접한 인물이고, 평판이 안 좋지만 나름대로의 장점은 있었던 수양대군,[29] 예술가였던 안평대군, 품행은 좋지 않았지만 화포 전문가로 화차 개발에도 형과 함께 한 임영대군,[30] 어학, 산술 등 다방면으로 뛰어났던 광평대군, 무예나 화포에 소양이 있었던 금성대군 등. 그리고 세종은 이 아들들의 능력 역시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아마 조선 왕실에서 이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단종도 세종에게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라, 문종이 어느 정도 장수하고 단종이 제대로만 자랐으면 먼치킨 5대까지 갈 가능성도 높았다. 게다가 이성계의 장남인 진안대군은 고려의 충신이었고,[31] 정종은 무인으로써 아버지를 따라 공을 세웠으며, 인간미 넘치고 효성 깊은 군주였다. 참고로 이성계-정종/태종-세종대왕은 다른 의미로도 호부호자인데 바로 자식 수(...) 태종과 정종은 각각 12남 17녀/15남 8녀로 역대 조선 국왕 중 자식 수 1위/4위를 차지하며, 세종대왕은 18남 4녀로 5위이자, 가장 아들이 많은 왕이다. 이성계도 8남 5녀로 적지 않다.
- 이종범 - 이정후: 아버지는 바람의 아들로 유명한 전설적인 한국 야구의 레전드이며, 아들은 고졸 데뷔 이후 눈부신 활약을 펼치면서 신인왕에 올랐다. 그리고 여홍철-여서정 부녀처럼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아버지는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리스트, 아들은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리스트이다.
- 이회영 - 이종걸: 전술한대로 백사 이항복의 후손들로 할아버지는 재산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산을 독립운동에 기부한데다가 조선시대 후기에 애국 계몽운동 및 신민회에 참여하는 등 일제 강점기의 폭압에 항거한 대표적인 독립유공자이다. 손자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몇몇의 과오가 있었긴 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 시절, 원내대표로 일한 적이 있으며 19대 국회때 테러방지법에 항의하는 필리버스터에 많은 활약을 하여 필리버스터의 유종의 미를 거둔 장본인이며 타임지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 150명 중 93위에 들기도 했다. 그의 사촌형인 이종찬도 국회의원과 국가정보원장으로 활동했다.
- 이황과 후손들: 이황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능한 유학자이며 말년에는 도산 서원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그리고 그의 후손 중에서 15대손인 이육사는 일제에 굴하지 않는 대표적인 항일 시인이었다. 또 이육사 뿐만 아니라 기암 이중업 선생과 그의 아버지, 삼촌을 비롯한 다른 후손들도 독립 운동에 참여했고 일제에 발각되고 체포되어 수감되기도 했다. 기사 지금의 후손들 중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도 몇몇 있다.
- 임동철 - 임정욱, 임진욱 외 형제들: 서울 버스업체 동아운수 사장.
- 장준하 - 장호권, 장호성, 장호준 : 아버지 장준하는 독립운동가이면서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싸우던 재야 정치인이었고, 장남 장호권은 아버지의 정적이었던 박정희의 자녀들인 박지만과 박근혜, 박근령이 저지른 잘못들과 본인들과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사과는 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았던 그들을 맹렬히 비난하던 강직한 사내였다. 차남 장호성은 서울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였고 3남 장호준은 미국 코네디컷 주 한인 교회의 담임목사로 재직하면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박근혜 정권 규탄 집회를 벌이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 200만원과 한국 여권 효력 정지 5년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장호준에게 소환 명령을 내렸지만 그는 여권 효력 정지를 이유로 거절하였다.
- 장재식 - 장하준, 장하석: 아버지 장재식 역시 서울법대에 행정고시를 시작으로 산업부 장관과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할 정도로 스펙이 대단한 데다 6.25 전쟁 학도병 참전 및 4.19 혁명에 참가하였다. 거기다 아들들인 장하준과 장하석 역시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과 런던 대학에서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더욱이 이 집안이 대단한 게 할아버지들 역시 독립운동에 매진하였을 뿐더러 해방 후 농지법 개혁에도 의욕적으로 참가하고, 6.25 전쟁에도 일가족이 자진 참전할 정도로 한국의 몇 안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집안이라고 한다.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 후손들: 연세대학교의 설립자로 유명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자신의 집을 고아원 겸 교회 건물로 내놓을 정도로 청렴결백한 인물이었고, 그의 후손들도 4대째 대인배인 보기 드문 집안이다. 자세한 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문서 참고.
2.2. 해외[편집]
- 골디 혼 - 케이트 허드슨: 어머니와 딸 모두 유명한 배우.
- 구스타브 1세 바사 - 칼 9세 - 구스타프 2세 아돌프: 조부 구스타프 바사는 스웨덴의 독립을 이룩한 영웅. 그 아들 칼 9세는 스웨덴의 행정을 발전시킨 인물.[37] 그 아들 구스타프 아돌프는 스웨덴 역사 최고의 명군, 근대 유럽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이름을 남긴 영걸.
- 그레고리 펙 - 이튼 펙: 할아버지는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미남 영화 배우. 손자도 그를 닮아 상당히 미남에 배우로 활동 하고 있다.
- 냇 킹 콜 - 나탈리 콜: 아버지와 딸 모두 뛰어난 가수.
- 데이브 토머스 - 웬디 토머스: 아버지는 웬디스의 창립자였고 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기업을 운영하는 중.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 장남 하릴랄을 제외한 차남.삼남.사남.양자 데사이[39] 간디의 자식들은 장남을 제외하곤 전부 인도 독립운동에 힘을 보텠다. 양자인 데사이는 간디와 함께 예라브다 감옥에 갇혀있던 시절 사망했으나 비서역할을 하며 간디를 도왔고 나머지 세 아들들은 간디가 소금행진 당시 갇혀있을때 사람들을 모아 아버지의 뒤를이어 행진을 계속하였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 도쿠가와 히데타다 - 도쿠가와 이에미츠: 물론, 창업군주인 이에야스에 비해 히데타다는 군사적인 면에서나 기타 능력에서도 모자란 게 한참 많았으나, 아버지가 물려준 막부 정권을 견실하게 운영하고 후계자에게 물려줘 에도 시대를 연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보여준다. 더욱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여 몰락한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들이나, 아버지와의 터울이 많아 아버지로부터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변명이 있으나 성인이 되었어도 아버지의 리즈 시절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을 보면... 이에미츠 역시 히데타다 대에 다져지지 않은 제도를 잘 정비해서 막부를 안정시켰다. 이 3부자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아오이 도쿠가와 3대》라는 사극으로 다루었을 정도다.
- 돈 코스카렐리 - 클로이 코스카렐리: 아버지는 영화감독, 딸은 비채식인도 참여하는 요리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비건 요리사.
- 돈지뉴 - 펠레: 비록 부상 때문에 일찍 은퇴하긴 했지만 아버지 역시 축구선수였다. 대신 아들에게 최선을 다했고 아들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근데 입방정은 답이 없다
- 로빈 라이트 - 딜런 펜: 어머니는 영화 배우, 딸은 모델 활동을 하고 있다.
- 로베르토 클레멘테 - 로베르토 클레멘테 주니어: 아버지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정도로 훌륭한 야구선수이자 지진으로 고통받는 니카라과 국민들을 위해 구호 활동을 하다 젊은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의인. 아들은 평범한 사회인이지만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구호 활동에 참가하는 훌륭한 사람이다.
- 론 하워드 -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아버지는 감독, 딸은 배우로 활동 중이다.
- 레이비냐 - 루카스 레이바 : 숙부와 조카 모두 뛰어난 축구선수.
- 마리 퀴리 - 이렌 졸리오퀴리, 이브 퀴리: 어머니 마리 퀴리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에다 두 번(물리, 화학) 노벨상을 탄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다. 장녀인 이렌 졸리오 퀴리 역시 남편 프레데레크 졸리오퀴리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 노벨상 유일무이하게 가족 전체가 다 수상했다. 차녀인 이브 퀴리는 어머니나 언니와 동일한 과학자의 길을 가지는 않았지만[42] 역시 유명 작가, 언론인, 피아니스트이며 유니세프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인격적으로도 존경받을 만한데, 마리 퀴리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X선 사진을 통해 많은 부상병을 살렸고, 장녀인 이렌은 남편 프레데레크와 함께 나치 독일에 맞서 레지스탕스를 지원했으며, 차녀 이브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유니세프 활동으로 훈장까지 수여받았다.
- 로렌조 부폰 - 아드리아노 부폰 & 마리아 스텔라 마소코, 단테 마소코 - 베로니카 부폰, 겐달리나 부폰, 지안루이지 부폰: 운동 선수 집안이다. 종조부는 종손자에 앞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설적인 골키퍼였다. 아버지는 역도선수, 어머니는 투포환 및 원반 던지기 선수로 현역 시절 3번이나 우승했다. 외삼촌은 국가대표 농구선수였고. 그리고 딸들은 국가대표 배구 선수였고[43] 아들은 이탈리아와 유벤투스의
잔류의지를 자랑하고 매 경기 때마다 상대 선수들의 유니폼 쟁탈전이 일어나게 하는[44]전설적인 명 골키퍼.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콘스탄티노스 11세 : 아버지는 죽어가는 로마 제국의 수명을 반 세기가량 연장시킨 비운의 명군이었고, 장남은 서방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동서교회 통합이라는 초강수를 둘 정도로 제국을 위해 헌신적인 황제였다. 안타깝게도 요안니스 8세는 바르나 전투의 패전과 모레아 유린으로 인한 충격으로 1448년 사망했다. 다섯째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역시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데 실패했을지언정 뛰어난 성품으로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고 1453년 제 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제국을 수의 삼아 장렬히 전사함으로써 천년제국의 최후와 함께 영원히 전설로 남았다.
- 마리오 베시노 - 마티아스 베시노 : 아버지는 요절하긴 했어도 프로 축구선수였기 때문에 경기장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고, 아들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며 소속팀을 극적으로 챔스로 보내줬다.
- 마지뉴 - 티아고 알칸타라, 하피냐 아우칸타라: 아버지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1994년 미국 월드컵 우승 멤버였으며 아들들도 대를 이어 명 축구팀들에서 뛰고 있다.
근데 형제가 국적을 두고 갈렸다
- 묘이 아키라 - 묘이 미나: 아버지는 일본 3대 대학병원이라 불리는 오사카대학병원의 교수이시고, 딸은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걸그룹의 비주얼 멤버 중 하나.
- 무라사키 시키부 - 다이니노 산미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 사비하 괵첸: 양부, 양녀 관계이지만 여기에 서술한다. 아타튀르크는 비록 독재자이긴 했으나, 터키의 주권을 지켜내고 강력한 세속주의 정책과 문자 개혁, 복지정책으로 국민들을 계몽시킨 터키 공화국의 영웅이고, 그의 양녀인 사비하 괵첸은 20세기 최고의 공군 조종사 100위 안에 들어가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 미겔 앙헬 나달, 토니 나달 - 라파엘 나달: 삼촌과 조카 사이. 미겔 앙헬은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이자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이었고 토니는 조카 라파엘을 세계적인 스타 테니스 선수로 만든 코치.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 아버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고전 음악의 신동이고, 아들도 아버지의 명성에 걸맞는 재능과 명성을 얻었다. 다만, 아버지는 심하게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고, 아들 모차르트는 그에 비해서 사생활에 흠이 없었지만 사후에 아버지의 명성에 가려져 철저하게 묻혀졌다.
- 새리야 나이트 -
페이지: 프로레슬링계의 호부 밑에 견자 없다. 어머니는 남편과 같이 운영하는 인디 레슬러 단체 WAW(World Association of Wrestling)의 선수였고, 딸인 페이지는 기존의 밝고 치장하는 디바들과는 다르게 유일무이한 다크 히어로 이미지에 백안과 흑발이 대조를 이루는 독특한 비주얼과 좋은 기량으로 '안티 디바', '디바 오브 투모로우'라는 별명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WWE 메인로스터로 승격되는 동시에 디바들 중 최고 악역인 AJ 리를 약 1분만에 페이지 터너를 거는 동시에 최초로 최연소 디바스 챔피언에 오르는 대이변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기량 하략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약 복용으로 웰니스 프로그램에 적발된 것과 여러번의 트인낭, 그리고 챔피언 벨트를 능욕하는 행동을 한 사진이 발견되어 호자라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평가가 많아졌지만 현지 인기는 아직 높은 편이기에 취소선으로 처리했다.
- 세인스버리 가 - 엘라 우드워드: 19세기 중엽에 설립된 세인스버리 슈퍼마켓은 영국에서 두번째로 가장 큰 슈퍼마켓 체인이다. 그리고 이 집안의 외손녀는 모델 활동을 하다 난치병에 걸려 은퇴해야 했으나 자연식으로 완치했고 이를 전파하는 성공적인 요리 블로거이다.
- 스티븐 로버트 라웃 부자: 아버지도 아들 얼굴의 합성을 관대하게 넘어갔고, 아들은 직접 붕탁제 특전 영상에 직접 출현해 조금 화가 났을 지언정 자신의 얼굴을 사용해도 된다고 선언했다. 스티븐의 얼굴이 어디에 쓰이는지 생각해본다면...
- 스텔란 스카스가드 -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구스타프 스카스가드,빌 스카스가드 그외 자식들 - 설명이 필요없다. 오죽하면 스웨덴의 최고수출품은 이케아와 스카스가드 가문 이라는 농담이 있을정도다.(...)
- 아사히 테루코 - 칸다 마사키 & 마츠다 세이코 - 칸다 사야카: 할머니와 아버지는 유명한 배우, 어머니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의 전설적 아이돌이고, 딸은 어머니의 배경만 믿지 않고 차근차근 올라와 겨울왕국 일본판 더빙 이후로 본격적인 상승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 - 지아다 데 로렌티스 : 당숙은 SSC 나폴리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린 장본인이자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물이며 조카딸은 유명한 요리사.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한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급의 천재 과학자고, 아들은 엔지니어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 에우세비오 디 프란체스코 - 페데리코 디 프란체스코 : 아버지는 축구선수 출신 축구감독으로 수십년 만에 AS 로마를 챔스 4강에 올렸으며, 아들도 아버지 뒤를 이어서 세리에 A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중이다.
- 오드리 헵번 모자(들): 어머니는 설명이 필요 없는 당대 최고의 미인 여배우 중 한 명으로서 활약하였고, 은퇴 후 구호 및 봉사 활동 등으로 더욱 이름이 빛났다. [50] 그녀의 자식들 또한 어머니의 뒤를 이어 자선 사업을 하고 있으며, 특히 션 헵번의 경우 2015~16년에 한국에도 뜻깊은 활동을 하였다.
- 요한 슈트라우스 1세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요제프 슈트라우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고전 음악계에서 이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다만, 가족 관계는 심하게 막장이었다고 한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아버지는 고전 음악계의 보스 급의 위상을 가지고 있고, 아들은 피아노 등 건반 악기의 대가. 이 외에도 바흐 집안은 쟁쟁한 음악가들이 존재한 음악 가문이었다.
- 제임스 밀 - 존 스튜어트 밀: 철학자, 교육자로 꽤 알려진 아버지에 경제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정치가, 식물학자, 곤충학으로도 활약한 먼치킨 아들.
- 조니 캐쉬 - 로잔느 캐쉬: 아버지야 말이 필요 없는 미국 컨트리계의 전설 아닌 레전드고, 딸도 아버지의 명성에 미치지 못할 뿐이지 활동 기간이 거진 40년이 다 되어가는 컨트리 가수다.
- 존 보이트 & 마르셀린 버트란드 - 안젤리나 졸리: 부모님과 딸 모두 유명한 배우. 다만, 한때는 존 & 안젤리나 부녀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 체사레 말디니 - 파올로 말디니: 아버지는 60년대의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징하는 최고의 명선수였으며, 아들은 올 타임(All-Time) No.1 레프트백으로 인정받고 있다. 더불어서 부자가 동시에 AC 밀란 레전드.
- 카를 마르텔 - 피핀 3세 - 카롤루스 대제: 할아버지는 이슬람의 북침을 막아내 이베리아 반도에서까지만 머물게 했고[55] 아버지는 왕위 쟁탈 과정에서 논란이 있긴 해도 정통성을 얻었으며 손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케케 로스베리 - 니코 로스베리: 부자가 모두 F1 챔피언.
- 토마스 발카사르 -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구티에레스(치차로) - 치차리토: 외할아버지는 1954년 월드컵에 국가대표 선수로 나왔던 사람이고, 아버지는 1986년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로 나왔으며 소속팀에서 주장도 했다. 어린 치차리토를 안은 사진 치차리토 본인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월드컵에 멕시코 국가대표로 나와 3대가 국가대표라는 영예를 얻게 됐다.
- 카르노 집안: 아버지 라자르 니콜라스 마르그라트 카르노(1753~1823)는 프랑스 혁명 전쟁 당시 장군이자 정치인이자 수학자로 업적을 남겼으며, 또한 아들인 니콜라 레오나르 사디 카르노(1796~1832)도 그 짧은 일생동안 군인이자 음악가이자 과학자로서 열역학 이론을 성립하여 후세에 열역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카르노 기관으로 이름을 남긴 다재다능한 위인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아들인 라자르 이폴리트 사디 카르노(1801~1888)는 정치인으로 프랑스 국회의원을 지냈고, 여긴 손자들까지 상당했는데 이폴리트의 아들인 마리 프랑수아 사디 카르노(1837~1894)는 프랑스 대통령[61]이었다. 또 다른 손자인 마리 아돌프 카르노(1839~1920)도 화학자, 광산 기술자, 정치가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잇는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다.
- 페터 노이슈테터 - 로만 노이슈테터: 아버지는 마인츠의 레전드급 선수이고 아들은 샬케에서 준수한 미드필더
노예로 활약 중이다.
- 프레드릭 알트 - 제임스 켄지 로페즈알트: 아버지는 하버드대학교 의대 출신의 저명한 유전학자 겸 면역학자이고 아들은 요리책으로 상도 탄 유명한 요리사.
- 피에르 오바메양 -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아버지는 가봉 국가대표팀에서 80경기나 뛴 레전드고, 아들은 가봉 국대를 넘어 분데스리가를 폭격하는 중이다.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 장 르누아르 - 알랭 르누아르: 둘 다 훌륭한 예술인이다. 아버지는 그림으로 미를 표현했고 아들은 영화로 미를 표현했다. 장 르누아르의 아들 역시 중세 영문학에서 이름을 남겼다.
-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 - 프랭크 램파드: 아버지는 웨스트햄의 레전드이고 아들은 첼시
와 맨시티의 레전드이다.
- 해리 레드냅 - 제이미 레드냅: 아버지는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일단 커리어만큼은 EPL에서 손에 꼽을 감독이고, 아들은 리버풀 레전드이다.
-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부자가 모두 세계적인 가수다. 아버지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프로 축구선수로 뛰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가수로 전업했다. 아들은 아버지보다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현재 최고의 라틴 팝 가수 중 하나며, 특히 남미에서 가공할 인기를 누린다.
[1] 표준어에서는 '호부견자'만 실려 있으므로, 호부견자에서 파생된 걸로 보이는 견부호자, 호부호자, 견부견자는 비표준어이다.[2]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이 생일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을 향해 위선자들이라며 폭언을 퍼붓고 쫓아내자 웨인 기업의 이사 한 명이 인격자였던 선친 토머스 웨인의 이름을 먹칠했다는 의미에서 해당 표현을 쓴다.[3] 물론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는 광고를 낸 친일 흑역사가 있었다.[4] 친부는 구본능, 양부는 구본무이다.[5] 구본무 前 회장은 앞서 아들을 사고로 잃었기 때문에 구광모를 양자로 삼았다.[6] 2005년 4월 16일 폐렴합병증으로 별세.[7] 안타깝게도 이게 부자가 함께 찍은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8] #.[9] 예명으로 본명은 김지수이다.[10] 하정우의 본명이다.[11] 차현우의 본명이다.[12] 본명 홍경일.[13] 다만, 이 경우는 다소 애매한데,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본기」에는 '一云(각주 달겠다는 소리. 或云이라는 표현도 많이 쓰인다)~' 이라 하여 '그 아버지 우태(優台)는 북부여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이고'라 되어 있다. 온조의 아버지를 우태라고 할 경우, 호부호자라고 할 수 있을지 애매.[14] 룽징의 문재린 목사의 사랑방은 안중근 의사도 독립 투쟁 중에 다녀간 것으로도 유명하다.[15] 문성근의 정치적 발언을 두고 배우인 김지미가 '배우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배우로서의 일에만 전념해야 된다'고 깠으나, 정작 본인은 배우로서의 일에 충실했기는커녕 사생활이 엄청나게 문란해서 논란을 낳았던 데다, 드러내놓고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세간에서 내로남불이라고 비웃음만 샀다.[16] 가수 싸이의 본명이다[17] 홍익문고의 찬장을 본인이 직접 다 짜셨다고 한다![18] 홍익인간할 때 그 홍익 맞다. 널리 이롭게 하는 대상은 바로 손님, 직원, 출판사, 가족. 2009년 운명하신 아버지의 유언이라고.[19] 보통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들은 심도 있는 프로그램을 맡기가 힘들다. 게다가 윤태진 아나운서의 말에 의하면 남팬들은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가 어리면 예쁘다고 좋아하면서도 속으로는 '네가 뭘 알아?'라는 시선으로 보고, 이제 그들의 말대로 뭘 알 짬이 되면 너무 나이 들었다고 싫어한다고.[20]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헌액된 최초의 아시아계 배우였다.[21] 여담으로 임금으로서는 별 거 아니어도 왕무도 왕건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호부호자격이다.[22] 유승필은 유재라, 유일선 남매랑 사촌이라 이런 표기를 했다.[23]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유특한도 형인 유일한 박사에 많이 묻혀져서 그렇지,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이었다. 형이 기습적으로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문자 그대로 트집잡을 게 아무것도 없었던 일화가 유명한데, 유특한도 전두환을 같은 이유로 경악시킨 바 있었다. 그리고 유일한 박사가 창립한 유한양행과 유특한이 세운 유유제약은 기업 윤리를 FM 수준으로 준수하기로는 두 회사가 대한민국에서 넘사벽급 투톱을 자랑하고 있다. 그야말로 난형난제다.[24] 그의 친일 경력 때문에 유일한 박사를 비롯한 형제들이 동생 유명한을 창씨개명한 이름인 '야나기하라 히로시'라고 부르면서, "나는 유명한이라는 동생을 둔 적은 있어도, 야나기하라 히로시란 놈은 모른다!"라며 개무시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 사람은 내내 투명인간 취급을 받다가 6.25 전쟁 중에 죽었다.[25] 예명은 공승연이다. 그래서 동생 정연이 한 때 공정연으로 알려지기도 했다.[26] 막내 딸이 쯔위와 함께 게스트로 나왔을 때 그를 언급했다. 덤으로 이길 자신 있는 셰프가 샘킴인 것도 덤...[27] 대결 전에 두 딸의 응원영상이 나왔으며 당연히 엄청 흐뭇 하셨다.[28] 그나마 이 인간은 충무공의 후손들 중에서 가장 무능한 축에 속하는 인물이다![29] 평판만 생각해서 수양대군을 호부견자의 케이스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한데 수양대군이 세종 치세의 과학, 문화 사업에서 업적을 쌓은 것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다.[30] 여자를 너무 밝힌 게 흠이긴 했지만 이건 집안 전체가 거의 다 그랬다. 예외라면 문종 정도?[31] 단, 이것은 야사에서 나오는 기록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아니다.[32] 그것도 위암 4기였다! 젊은 사람일수록 암에 죽는 확률이 매우 크다. 당장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도 그녀와 같은 병으로 요절하였다.[33] 본명 김희숙.[34] 본명 장연교[35] 단, 백제는 태종 무열왕 말기에 멸망했으며,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초기에 멸망했다.[36] 상속세는 무려 1500억이며 5년간 성실히 납부하겠다고 언급했다.[37] 그러나 공포정치를 펴 귀족들의 반감을 샀고, 폴란드 - 리투아니아 연방과의 전쟁에서는 졸전을 거듭했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38] 심지어 아시아 본인은 미투 운동의 시발자 중 하나였다.[39] 할릴랄이 빠저있는이유는 호부견자 항목 참고.[40] 제갈량, 장완, 동윤, 비의.[41] 일전에 알베르트 괴링이 무장친위대라는 글귀가 있는데, 아마 이분과 헷갈린 듯 하다.[42] 이를 두고 이브는 "저는 우리 가문의 수치에요~"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43] 비정상회담에서는 지안루이지의 고모라고 말했는데 친누나들이 맞다. 겐달리나는 1973년생으로 지안루이지보다 너덧 살 더 많다.[44] 대표적인 사례가 마누엘 노이어. 부폰의 유니폼을 노렸으나 처음엔 토마스 뮐러에게 뺏기고 다음 번엔 루카스 포돌스키에게 뺏겼다. 그래서 부폰이 나중에 따로 유니폼을 보내줬다고.[45] 모리 데루모토는 우유부단해 가문을 말아먹었다. 킷카와 히로이에는 동군에 내통해 가문을 구하긴 했지만, 안 그랬으면 서군이 이겼을 것이라고 서군 팬들에게 까인다. 3형제의 막내 타카카게는 친자가 없었고, 양자는 세키가하라의 배반으로 두고두고 까인다. 그래도 이 모리 3세대 세 명 다 능력은 괜찮았다. 데루모토와 히데아키는 내정에 재능을 보인 기록이 있고, 히로이에도 마찬가지. 어찌보면 인기가 딸린다 해야 할지도?[46] 이 명군 라인의 경우, 창업자 오스만 1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무리가 없다. 오스만부터 쉴레이만까지의 군주들 열 명 모두 암군이나 폭군은커녕, ‘평타 쳤다’ 라고 말하기도 아쉬운 인물들로 가득하기 때문. 물론 바예지드 1세의 경우 말년에 티무르에게 깨졌기는 하지만, 불가리아 제국을 정복하고 발칸 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의 권위를 확고하게 세우는 등 그 이전까지의 업적은 훌륭한 편이었다. 게다가 이들 모두 부자상속이었기에, 호부호자라는 말에도 들어맞는다.[47] 그 점들 덕에 일본 현지는 물론이고 국내 팬들로부터 좋은 평가와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48] 그리고 사실 고디 가문이 미국의 명문 중 하나다.[49]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한국어 판으로 약 2000페이지이다.[50] 그리고 개고기에 대해 백인우월주의가 섞인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던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일침을 날렸다.[51] AC 밀란의 전설 프랑코 바레시의 형이다.[52] 다만 여희와 관련한 실정이 있어 미묘할 수 있다.[53]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많다.[54] 근데 이건 농담이 아니다. 어머니는 큰아들 임신 3개월 때까지 선수로 활동했다.[55] 만일 이 때 뚫렸으면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 대륙, 나아가 한국까지 알라를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원복 교수가 말한 바 있다.[56] 본명 메구로 토라이치[57] 본명 카도니시 야이[58] 국내에선 <무엇을 먹을 것인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59] 참고로 부부 관계가 아니라 친부과 양부이다.[60] 아이러니하게도 무네시게가 큰 활약을 떨친 곳이 조선이었다.[61] 다만 암살당했다.[62] 단, 샤 루흐 즉위 이후에도 각지에서 반란이 계속되었다. 샤 루흐가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건, 문예에 능해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반면 군사에도 능해 각지를 순회공연할 수 있었기 때문. 샤 루흐의 아들인 울루그 베그는 아버지의 문화적 소양을 그대로 물려받았지만, 군사적 재능은 다 날려먹은 관계로 즉위 2년만에 끔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