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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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 소재지 | 모리오카시 우치마루 10-1 | ||
하위 행정구역 | 14시 15정 4촌[1] | ||
지방 | |||
면적 | 15,275.01km² | ||
인구 | 1,157,308명[2] | ||
인구밀도 | 75.8명/km² | ||
GDP(명목) | 약 $429억(2018)[3] | ||
1인당 GDP | $34,626(2018) | ||
현지사 | |||
13석 | |||
13석 | |||
3석 | |||
1석 | |||
1석 | |||
17석 | |||
2석 | |||
1석 | |||
1석 | |||
1석 | |||
상징 | 현화 | ||
현목 | |||
현조 | |||
019 | |||
JP-03 | |||
1. 개요[편집]
2. 상징[편집]
현기(県旗)[5] | 문장(紋章) |
3. 지리[편집]
일본에서 가장 넓은 현이자 도도부현 중 홋카이도에 이어서 면적 2위를 자랑한다. 면적 1만 5,278 ㎢로 가장 작은 카가와현보다 약 8배 더 넓다.[6] 다만 대부분이 넓은 산지 인지라 인구는 많지 않다. 기후는 일본에서는 추운 편이나 한국 기준으로는 평범하다.[7] 대부분 땅이 산지라서 낙후되었으나 자연이 잘 보존되었다.
지형은 전체적으로 서고-중저-동고 형상이다. 중앙의 남북으로 긴 분지에 이와테의 주요 지역인 모리오카-하나마키-키타카미-오슈-이치노세키 라인이 몰렸고, 서쪽에 오우 산맥이 있고 동쪽에도 넓은 산지와 리아스식 해안이 있다. 지방 구분은 '연안'과 '내륙'으로 나뉘는데, 인구 대부분이 내륙에 집중되었다.
참고로 이와테현은 미개척지 비율이 홋카이도 다음으로 많다. 대부분 연안에 있는데, 혼슈 최동단으로 알려진 토도가사키(魹ヶ崎) 역시 미개척지에 있어 육로로 접근이 힘들다. 자연환경 보호 때문에 육로는 개방하는 시기가 매우 짧고, 대부분 배에 타고 멀리 떨어져서 토도가사키를 관람한다.
지형은 전체적으로 서고-중저-동고 형상이다. 중앙의 남북으로 긴 분지에 이와테의 주요 지역인 모리오카-하나마키-키타카미-오슈-이치노세키 라인이 몰렸고, 서쪽에 오우 산맥이 있고 동쪽에도 넓은 산지와 리아스식 해안이 있다. 지방 구분은 '연안'과 '내륙'으로 나뉘는데, 인구 대부분이 내륙에 집중되었다.
참고로 이와테현은 미개척지 비율이 홋카이도 다음으로 많다. 대부분 연안에 있는데, 혼슈 최동단으로 알려진 토도가사키(魹ヶ崎) 역시 미개척지에 있어 육로로 접근이 힘들다. 자연환경 보호 때문에 육로는 개방하는 시기가 매우 짧고, 대부분 배에 타고 멀리 떨어져서 토도가사키를 관람한다.
4. 하위 행정구역[편집]
5. 역사[편집]
도호쿠의 동북부에 위치한 지역이라 일본 문화권 편입이 다소 늦었는데, 헤이안 시대 초기인 8세기 말 혹은 9세기 초에 가서야 이와테 남부가 중앙조정의 영향권에 들어왔고 이와테 중북부는 아키타 북부, 아오모리 전역과 함께 헤이안 시대 후기인 11세기 중후반에 완전히 일본 조정에 편입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에미시의 영역으로, 아테루이가 활동했던 지역이다. 야마토 편입 이후에는 지금의 후쿠시마현, 미야기현, 아오모리현과 더불어 무츠노쿠니(陸奥国)로 불렸다.
11세기 말부터 12세기 후반까지는 오슈 후지와라씨(奥州藤原氏)가 히라이즈미에 거점을 잡고 조정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하여 한 세기 가까이 번영을 누렸으나, 결국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이 되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멸망했고 고도(古都) 히라이즈미는 초토화되었다. 이후 가마쿠라 시대에는 북쪽에는 난부씨(南部氏), 시바씨, 아소누마씨(阿曽沼氏), 남쪽에는 카사이씨(葛西氏), 루스씨(留守氏) 등이 곳곳에서 독립 파벌로 성장했으나 서서히 후쿠시마에서 북상한 다테씨(伊達氏)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카사이씨와 루스씨는 다테씨에 종속되었다.
에도 시대를 전후하여 남부는 다테씨의 센다이번(仙台藩)[8], 다무라씨(田村氏)의 이치노세키번(一関藩), 루스씨(留守氏)의 미즈사와(水沢)로 나뉘었으며, 북부는 난부씨의 모리오카번(盛岡藩)[9]이 설치되었다. 보신 전쟁 중인 1868년에는 오우에쓰열번동맹(奥羽越列藩同盟)이 다테번과 난부번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나 넉 달 만에 신정부군에 항복했다.
모리오카번은 결국 재정난으로 폐번치현이 이루어지기 전인 1870년에 폐번을 신청하고, 이후 모리오카현(盛岡県)이 설치되었다. 1년 후에는 이와테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876년에는 현의회가 개회했다. 1889년에는 시제(市制)가 시행되어 모리오카시, 1937년에는 카마이시시, 1941년에는 미야코시가 설치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말, 1945년 7월 14일에는 이 지역의 카마이시 제철소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사우스다코타에 의해 포격을 받았는데 이는 미국 전함으로서는 최초의 일본 본토 포격으로 기록되었다.
패전 이후에는 교통편도 나쁘고 소득도 낮으며 산업 진흥도 미진해서 자조적으로 '일본의 티베트'로 부르던 적도 있었다. 이는 1964년에 하나마키 공항이 문을 열고 1982년에 도호쿠 신칸센이 개통되면서 개선되었다.
2008년에는 이와테 미야기 내륙 지진으로 약 45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으며, 2011년에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 발생하여 현의 모든 해안에 쓰나미가 밀려와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냈다. 아직도 피해는 복구중이며, 현 차원에서 산리쿠(三陸) 지역 부흥 프로젝트와 홍보를 추진한다.
2020년 7월 29일까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시점에서도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확진자가 없는 지역으로 주목 받았으나 코로나 검사 회피 따위 의혹을 받던 중 7월 29일 부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청정 지역 타이틀은 결국 깨졌다.
11세기 말부터 12세기 후반까지는 오슈 후지와라씨(奥州藤原氏)가 히라이즈미에 거점을 잡고 조정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하여 한 세기 가까이 번영을 누렸으나, 결국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이 되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멸망했고 고도(古都) 히라이즈미는 초토화되었다. 이후 가마쿠라 시대에는 북쪽에는 난부씨(南部氏), 시바씨, 아소누마씨(阿曽沼氏), 남쪽에는 카사이씨(葛西氏), 루스씨(留守氏) 등이 곳곳에서 독립 파벌로 성장했으나 서서히 후쿠시마에서 북상한 다테씨(伊達氏)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카사이씨와 루스씨는 다테씨에 종속되었다.
에도 시대를 전후하여 남부는 다테씨의 센다이번(仙台藩)[8], 다무라씨(田村氏)의 이치노세키번(一関藩), 루스씨(留守氏)의 미즈사와(水沢)로 나뉘었으며, 북부는 난부씨의 모리오카번(盛岡藩)[9]이 설치되었다. 보신 전쟁 중인 1868년에는 오우에쓰열번동맹(奥羽越列藩同盟)이 다테번과 난부번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나 넉 달 만에 신정부군에 항복했다.
모리오카번은 결국 재정난으로 폐번치현이 이루어지기 전인 1870년에 폐번을 신청하고, 이후 모리오카현(盛岡県)이 설치되었다. 1년 후에는 이와테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876년에는 현의회가 개회했다. 1889년에는 시제(市制)가 시행되어 모리오카시, 1937년에는 카마이시시, 1941년에는 미야코시가 설치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말, 1945년 7월 14일에는 이 지역의 카마이시 제철소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사우스다코타에 의해 포격을 받았는데 이는 미국 전함으로서는 최초의 일본 본토 포격으로 기록되었다.
패전 이후에는 교통편도 나쁘고 소득도 낮으며 산업 진흥도 미진해서 자조적으로 '일본의 티베트'로 부르던 적도 있었다. 이는 1964년에 하나마키 공항이 문을 열고 1982년에 도호쿠 신칸센이 개통되면서 개선되었다.
2008년에는 이와테 미야기 내륙 지진으로 약 45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으며, 2011년에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 발생하여 현의 모든 해안에 쓰나미가 밀려와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냈다. 아직도 피해는 복구중이며, 현 차원에서 산리쿠(三陸) 지역 부흥 프로젝트와 홍보를 추진한다.
2020년 7월 29일까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시점에서도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확진자가 없는 지역으로 주목 받았으나 코로나 검사 회피 따위 의혹을 받던 중 7월 29일 부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청정 지역 타이틀은 결국 깨졌다.
5.1. 현명 '이와테(岩手)'의 유래[편집]
지명 이와테의 유래는 다양하지만 제일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모리오카시의 토켄지(東顕寺)에는 시메나와[10]가 묶인 바위 3개가 있다. 옛날 이와테산이 분화할 적에 날아온 화산탄인데, 지역 주민들이 '미츠이시사마(三ツ石様)'라 부르며 신성시하였다. 그 당시 라세츠키(羅刹鬼)라 불리는 오니가 그 지역 마을 주민과 여행객들을 괴롭히며 못살게 굴자 마을 주민들이 미츠이시사마에게 가서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는 오니를 벌해달라 부탁하였고, 그 후 라세츠키는 그 죄가로 미츠이시사마 바위에 묶여버리게 되었다.
결국 묶여버린 라세츠키는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는 마을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미츠이시사마에게 빌었다. 미츠이시사마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표시를 남겨라' 명령을 하여 미츠이시사마 바위(岩)에 손(手)자국을 찍고 서쪽인 난쇼산(南昌山)쪽으로 도망을 갔다 하여 이와테(岩手)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재도 손자국이 찍힌 바위가 모리오카시의 미츠이시 신사에 남아있다.
여담으로 오니가 떠나자 마을사람들이 기쁨에 밤낮 가리지 않고 춤을 췄다는데 그 춤이 바로 모리오카 산사 오도리(さんさ踊り)의 기원이다. 지금도 8월쯤에 모리오카 시가지에서 대규모로 개최되는 오도리 마츠리이다.
모리오카시의 토켄지(東顕寺)에는 시메나와[10]가 묶인 바위 3개가 있다. 옛날 이와테산이 분화할 적에 날아온 화산탄인데, 지역 주민들이 '미츠이시사마(三ツ石様)'라 부르며 신성시하였다. 그 당시 라세츠키(羅刹鬼)라 불리는 오니가 그 지역 마을 주민과 여행객들을 괴롭히며 못살게 굴자 마을 주민들이 미츠이시사마에게 가서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는 오니를 벌해달라 부탁하였고, 그 후 라세츠키는 그 죄가로 미츠이시사마 바위에 묶여버리게 되었다.
결국 묶여버린 라세츠키는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는 마을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미츠이시사마에게 빌었다. 미츠이시사마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표시를 남겨라' 명령을 하여 미츠이시사마 바위(岩)에 손(手)자국을 찍고 서쪽인 난쇼산(南昌山)쪽으로 도망을 갔다 하여 이와테(岩手)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재도 손자국이 찍힌 바위가 모리오카시의 미츠이시 신사에 남아있다.
여담으로 오니가 떠나자 마을사람들이 기쁨에 밤낮 가리지 않고 춤을 췄다는데 그 춤이 바로 모리오카 산사 오도리(さんさ踊り)의 기원이다. 지금도 8월쯤에 모리오카 시가지에서 대규모로 개최되는 오도리 마츠리이다.
6. 경제[편집]
신칸센 이전까지는 특별한 산업이 없었다. 그냥 현 전체가 시골. 그때는 일본 도도부현 통틀어서 경제력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신칸센이 연결되면서 산업이 조금씩 생겨나서 지금은 47개의 도도부현 중 30위 후반권이다.
7. 관광[편집]
현 면적이 워낙 크다 보니, 관광지도 여러 지역으로 나뉜다.
- 북부: 현의 중심도시인 모리오카시가 위치한다. 시내에는 특별한 곳이 없지만, 모리오카역에서 아키타 신칸센을 타거나 역 앞 버스를 이용해 도와다 하치만타이 국립공원의 하치만타이 산 또는 타자와코까지 갈 수 있다. 아키타까지 가는 열차와 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그 밖에는 약 120년 전 만들어진 코이와이 농장도 유명하다.
- 동부: 동부의 해안가는 절경으로 유명한 산리쿠 지역에 속하며 산리쿠 철도 리아스선을 이용한 관광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도호쿠 대지진의 피해 여파로 인한 지역 쇠퇴와 불편한 접근성 때문에, 산리쿠 부흥 국립공원으로 지정됨에도 불구하고 위의 지역들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편이며 철도 마니아들도 산리쿠 철도 완주는 좀처럼 하기 어려워한다. 해당 지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아마짱의 성공마저 없었다면 정말 망했을지도 모른다.
8. 정치[편집]
이와테현의 국회의원 | ||
선거구 | 정당 | 의원명 |
2025년 개선 | ||
요코사와 다카노리 | ||
2028년 개선 | ||
히로세 메구미 | ||
선거구 | 정당 | 의원명 |
후지와라 다카시 |
오자와 왕국으로 명성을 날렸던 곳이자, 일본에서 사실상 가장 반자민당 성향이 강한 곳이자, 도도부현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역이다.[11] 55년 체제 당시에는 몇차례의 선거를 빼면 자민당이 비교적 강세인 지역으로 특별히 야당의 세가 강한지역은 아니었지만 오자와 이치로가 야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야당 강세지역이 되었다. 다만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오자와 이치로가 지역구인 이와테현 제3구에서 자민당 후보에게 4.2%p차로 패배하면서, 오자와 왕국의 명성은 이제 다 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오자와가 몰아내려고 했던 시나 다케시 의원은 공산당의 11.9% 득표로 야당표가 분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후보를 14.3%p차로 누르고 압승하면서 자민당 후보의 비례당선도 허락하지 않고 당선되었다.
의외로 일본의 도도부현 중 야마구치현 다음으로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 곳 출신 총리로는 하라 다카시, 사이토 마코토, 요나이 미쓰마사, 스즈키 젠코가 있다.
야당계 현직 지사 닷소 다쿠야는 8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자민당 후보를 박살내고, 민주당이 57석(...)이라는 괴멸적인 성적을 받아들며 참패한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민주당계 정당이 자민당을 이긴 유일한 현이었으며[12] 다른 곳에서 일본 미래당이 거의 모조리 떨어질 때 오자와는 이와테현 제4구에서 14선에 성공했을 정도.[13] 때문에 민주당의 성향이 강하다. 자민당의 지지세가 확실히 약한 오키나와현은 그렇다고 민주당의 세력이 강하다는 말은 아닌데, 이와테현은 비자민당 지지층의 표를 온전히 민주당 계열에서 받아낸다. 세 지역구 중 두 곳에서도 민주당 의원이 당선되었고, 참의원의 2석도 전부 민주당 의원이다. 다만 2구는 자민당 지지 선거구로, 스즈키 젠코의 아들 스즈키 슌이치가 당선되었다.
2014년 중의원 선거에서도 오키나와현 정도를 제외한 일본 전국을 전부 자민당이 싹쓸이하는 와중에 이와테에서는 민주당은 4석 중 2석, 생활당은 1석을 얻었다. 비례대표 선거에서 생활당은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5%에 못 미치는 득표를 얻었으나 이와테에서 17.1%를 득표했다.
2017년 48회 총선거때도 이와테현 제3구에서 오자와가 당선되었다.[14]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이와테현 제3구에서 자민당의 후지와라 다카시에게 밀려 오자와 이치로가 낙선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오자와는 석패율로 구제되어 의원직을 유지하지만, 과거 현을 주름잡던 민주당과 오자와 개인의 파워가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 낙선으로 평가받았다.[15]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30년만에 자유민주당의 히로세 메구미 후보가 현직인 기도구치 에이지 후보를 22,248표, 4.0%p 차이로 누르면서 의석을 차지하였다. 아베 신조 피살 사건 이후 자민당의 지지층 결집과 더불어 오자와 이치로 후보의 막말로 인하여, 야권이 접전 우위를 차지하였던 선거구였지만, 자민당이 차지하게 되었다.[16] 그나마 2023년 9월 3일 현지사 선거에서 구 오자와 계파인 현직 닷소 다쿠야 지사가 59.2%의 득표율로 여당추천 후보를 압도적으로 앞서면서 여전히 영향력이 남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일본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의 먼 조상인 아베노 무네토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베 가문을 조슈 토박이로 착각하는데, 원래는 후슈(俘囚)[17]로써 이곳에 근거를 둔 아베노 호족의 일부가 조슈 쪽으로 건너간 것이다.
8.1. 현의회[편집]
9. 교통[편집]
공항은 하나마키 공항이 유일하다. 위상은 국제공항이지만, 국제선 노선은 타오위안에서 오는 하계편 딱 하나뿐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에어부산에서 부정기편으로 운항한 적은 있지만, 탑승객이 비행기의 절반도 못 채울 정도로 적었다.[22] 따라서 하나마키 온천 여행상품을 내놓으면서 홍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도호쿠 여행을 가더라도 센다이나 아오모리, 아키타로 많이 가는 추세다.[23]
철도 노선으로는 도호쿠 신칸센이 현 중심을 관통하고 아키타 신칸센이 현 서쪽으로 뻗어 아키타현으로 넘어간다.[24] 신칸센 역이 제일 많은 도도부현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도호쿠 신칸센에만 이치노세키역, 미즈사와에사시역, 키타카미역, 신하나마키역, 모리오카역, 이와테누마쿠나이역, 니노헤역으로 7개, 그리고 아키타 신칸센의 시즈쿠이시역까지 총 8개다. JR 재래선으로는 타자와코선, 키타카미선, 하치노헤선, 하나와선, 카마이시선, 야마다선, 오후나토선이 있다. 사철 노선으로는 IGR 이와테 은하철도 이와테 은하철도선과 산리쿠 철도 리아스선이 있다.
지역 버스 사업자는 이와테현북버스, 이와테현교통, 히가시니혼교통, 호쿠토교통[25], 다노하타교통 등이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낙후된 지방이라 많은 수가 상황이 좋지 않으며, 차량도 대부준 20세기에 만들어진 중고차이다.
철도 노선으로는 도호쿠 신칸센이 현 중심을 관통하고 아키타 신칸센이 현 서쪽으로 뻗어 아키타현으로 넘어간다.[24] 신칸센 역이 제일 많은 도도부현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도호쿠 신칸센에만 이치노세키역, 미즈사와에사시역, 키타카미역, 신하나마키역, 모리오카역, 이와테누마쿠나이역, 니노헤역으로 7개, 그리고 아키타 신칸센의 시즈쿠이시역까지 총 8개다. JR 재래선으로는 타자와코선, 키타카미선, 하치노헤선, 하나와선, 카마이시선, 야마다선, 오후나토선이 있다. 사철 노선으로는 IGR 이와테 은하철도 이와테 은하철도선과 산리쿠 철도 리아스선이 있다.
지역 버스 사업자는 이와테현북버스, 이와테현교통, 히가시니혼교통, 호쿠토교통[25], 다노하타교통 등이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낙후된 지방이라 많은 수가 상황이 좋지 않으며, 차량도 대부준 20세기에 만들어진 중고차이다.
10. 기타[편집]
- 영화 '끝난 사람'에서의 소스케의 고향이기도 하고,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 드라마 아마짱에서 주인공인 아키 및 주요 등장인물들이 이와테현의 가공의 도시인 키타산리쿠 시 주민으로 등장한다.
- 대한민국에서 에어소프트건 수집이나 서바이벌 게임이 취미인 사람들이라면 한번 이상 들어봤을 'KTW'라는 제조업체가 바로 이와테현의 하나마키시에 위치한다. 대한민국의 에어소프트건 제조업체라 할 수 있는 동산모형과는 98년 이후부터 제품개발 및 설계, 제작 등 기술제휴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 한정수량 초 고가 에어소프트건 제작 업체로 이름나 있는 업체이기도 하다. 이와테현의 산림자원을 활용하여 자사 제품의 우드 파츠를 제작하는데, 우드 질감이나 퀄리티는 최상급이다. 이 덕분에 하나마키시 내 연간 순 매출액 3위 내 업체 중 하나이기도 하며, 한 때 하나마키시 관광 특산품 판매점에 KTW에서 제작한 스펜서 카빈 에어소프트건이 전시되었을 정도.
만약 일본 여행 겸 KTW에서만 제작되는 이사카/윈체스터용 우드파츠 구입이나 자사 자체 생산품 구입, 호기심 해소 목적으로 방문하고자 하는 국내 에어소프트건 매니아가 있다면 그 목적은 접음이 좋을 것이다. 멀기도 멀지만, 소재지도 차량 없인 가기도 어렵기 때문에 동산모형에서도 제품개발 협의나 연례 미팅 때도 KTW 측에서 직접 한국으로 오거나 도쿄에 위치한 ASGK 협회 본부에서 만나자고 할 정도. 그 전에 파츠의 재고 자체도 수량 한정으로 보유하여 뭔가 직접 구입하기가 어렵다.
- 여담으로 이와테현에서는 특이하게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에다 인사를 한다고 한다. 이와테현에서만 있는 문화로, 이 덕에 이와테현의 교통사고 순위는 최하위에 머물러 교통사고 안전지역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1. 출신 인물[편집]
11.1. 실존 인물[편집]
- NSP (결성지)
- 고다 구니코 - 토노시
- 기타야마 다케쿠니 - 모리오카시
- 니토베 이나조 - 모리오카시
- 닷소 다쿠야 - 모리오카시
- 미야자와 겐지 - 하나마키시
- 사사키 미코이히비키 - 모리오카시
- 사사키 로키 - 리쿠젠타카타시
- 사와후지 레이카 - 모리오카시
- 사이토 마코토 (제 3, 5대 조선 총독, 일본 30대 총리)
- 사쿠라 미코 (버츄얼 유튜버)
- 사토 히로미 - 카미헤이군 오츠치초
- 세가와 에이시 - 모리오카시
- 슈하마 료 - 타키자와시
- 스즈키 젠코 (일본 70대 총리)
- 시나 다케시 - 모리오카시
- 시이나 에쓰사부로 - 이사와군
- 아사누마 신타로오사와 사무소/댄디 라이언 - 모리오카시
- 아보 타케시 - 이치노세키시
- 오쿠노 카야81 프로듀스 - 모리오카시
- 오타니 쇼헤이 - 오슈시
- 요나이 미쓰마사 (일본 37대 총리) - 모리오카시
- 아보 타케시
- 야에하타 유키네JTB엔터테인먼트
- 이시카와 다쿠보쿠 - 모리오카시
- 치바 코이치 (성우 겸 음향감독; 1931~2001)
- 치스가 하루카 - 모리오카시
- 카와시마 미치유키 (BOOM BOOM SATELLITES의 보컬)
- 쿠와시마 호우코아오니 프로덕션 - 이사와군 카네가사키초
- 키쿠치 유세이 - 모리오카시
- 테루이 하루카아오니 프로덕션
- 하라 다카시 (일본 19대 총리)
- 후루다테 하루이치 - 쿠노헤군 카루마이마치
- 카노 하나-AV 여배우
11.2. 그 외[편집]
12. 둘러보기[편집]
[1] 정촌(町村) 위로 10개 군(郡)이 있으나 일상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2] 추계인구, 2024년 2월 1일.[3] 2021년 8월 내각부 확정치#[4] 입헌, 국민, 사민, 공산 추천. 전 민주당 중의원(이와테현 제1구)[5] 岩手의 岩을 위아래 대칭이 되도록 찌그러뜨린 것이다.[6] 다만 한국의 경상북도, 강원도(미수복지구 제외)보다는 좁다. 일본의 면적이 남한 면적의 약 3.8배 정도임을 감안하면 일본의 행정구역들은 한국에 비해 촘촘한 편이다. 이북 5도를 고려하면 함경남도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7] 모리오카시의 겨울철 기온은 서울과 거의 비슷하나 습도가 높아서 체감기온은 약간 더 낮다. 여름철은 서울보다 확실히 시원하다.[8] 후의 다테번(伊達藩)[9] 후의 난부번(南部藩)[10] 신사나 절에서 볼 수 있는 금줄[11] 오키나와현은 야당들이 모두 뭉쳐 자민당에 대항하는 풍토 때문에 자민당이 약하지만, 이와테에선 민주당이 홀로 자민당을 박살낸다. 또, 현의회에선 오키나와현보다 이와테현에서의 자민당 지배력이 확실히 약하다.[12] 심지어 오키나와현에서도 자민당이 4석 중 3석을 차지하며 이긴 선거였다! 그와중에 그 1석은 오키나와현 제2구의 사회민주당 소속 데루야 간토쿠 의원이였다.[13] 일본 미래당 후보가 당선된 지역구는 이와테현 제4구(오자와 이치로)와 히로시마현 제6구(가메이 시즈카) 둘 뿐이다. 그나마도 전직 국민신당 대표였던 가메이 시즈카는 오자와 이치로의 복당을 비판하며 생활당으로 가지 않고 녹색바람에 입당. 국민신당은 어쩌고요[14] 원래 오자와는 이와테현 제4구가 본인의 지역구였으나 통폐합되어 사라지면서 3구로 자리를 옮겼다.[15] 일본 야권에서는 오자와의 시대는 가고 닷소의 시대가 열렸다는 여론이 많다.[16] 다만 세부적으로는 기도구치 후보는 오자와의 지역구인 이와테 3구에서는 이겼다.[17] 헤이안 시대 일본 조정에 동화된 에미시 부족장 가문들을 말한다.[18] 改革岩手. 입헌민주당 11, 무소속 4.[19] 自由民主クラブ. 전원 자민당.[20] いわて新政会. 입헌민주당 2, 무소속 6.[21] いわて県民クラブ. 전원 무소속.[22] 2015년 아시아나 마지막 전세편 운항시 탑승한 승객이 비즈니스석 좌석수보다도 적었기에 기장이 편의를 베풀어 전원이 비즈니스석에 앉아왔다는 말도 있을 정도. 단, 이는 IATA 규정 위반이다.[23] 그도 그럴 것이, 직선거리로 그다지 멀지도 않고 도로도 쭉 나 있어서 자가용으로 10분 정도면 가는 곳이, 공항에서 버스가 안 다녀서(...) 대중교통으로 가면 1시간이 걸린다. 료칸별 송영 버스가 있다고 해도 관광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24] 이 구간은 재래선을 표준궤로 개조한 구간인 데다 산악을 지나고 단선이라 속도가 느린 편이다.[25] 홋카이도 삿포로의 동명의 회사와는 별개의 회사이다.[26] 하이큐의 원작자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모교이다.[27] 하시마섬, 사도광산이 워낙에 유명해서 이 곳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도광산 이외에도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된 광산이 여러곳 존재한다.[28] 본적지, 출생지는 도쿄부 다이토구이다.[29] 인물이 아니고 말이지만 이와테 현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명마이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