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의 1형에서 넘어옴
1. 개요
1. 개요[편집]
데키마티오는 한국어로는 '10분의 1형'이라고도 불리며, 고대 로마군에서 집단 징계를 목적으로 시행된 극단적인 군사 징벌 제도이다. 이 제도는 범죄를 저지른 부대 중 열 명 가운데 한 명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같은 부대의 동료 병사들이 직접 처형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라틴어로 '열 번째를 제거한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공포를 통한 군기 확립과 반란 진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주로 탈영, 반란, 명령 불복종, 전투 중의 비겁 행위 등 군의 근본을 흔드는 행위에 대한 응징으로 사용되었으며, 단순한 물리적 처벌이 아니라 심리적 충격과 내부 규율의 회복을 의도한 처사였다. 병사들끼리 처형을 집행하게 하는 구조는 동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전체 부대의 책임 의식을 각인시키는 수단이었다.
데키마티오가 실제로 시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공화정 초기와 중기의 기록에 대한 역사적 신빙성이 의심되기도 한다. 다만, 기원전 72년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당시 크라수스가 반란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 형벌을 실제로 시행한 사례는 사료에 의해 명확히 확인된다. 이후 1세기까지 내전 등 혼란한 시기에 몇 차례 더 사용되었으나, 서기 69년을 전후로 하여 로마군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중세와 근세에 이르러 데키마티오와 유사한 개념이 다시 등장한 사례도 있다. 17세기 유럽의 30년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중 일부 전선에서는 병사들의 불복종이나 탈영에 대해 비슷한 방식의 집단적 처벌이 시도되었으며, 이는 데키마티오의 개념이 군사 규율의 상징으로 오랜 기간 기억되었음을 보여준다.
주로 탈영, 반란, 명령 불복종, 전투 중의 비겁 행위 등 군의 근본을 흔드는 행위에 대한 응징으로 사용되었으며, 단순한 물리적 처벌이 아니라 심리적 충격과 내부 규율의 회복을 의도한 처사였다. 병사들끼리 처형을 집행하게 하는 구조는 동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전체 부대의 책임 의식을 각인시키는 수단이었다.
데키마티오가 실제로 시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공화정 초기와 중기의 기록에 대한 역사적 신빙성이 의심되기도 한다. 다만, 기원전 72년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당시 크라수스가 반란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 형벌을 실제로 시행한 사례는 사료에 의해 명확히 확인된다. 이후 1세기까지 내전 등 혼란한 시기에 몇 차례 더 사용되었으나, 서기 69년을 전후로 하여 로마군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중세와 근세에 이르러 데키마티오와 유사한 개념이 다시 등장한 사례도 있다. 17세기 유럽의 30년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중 일부 전선에서는 병사들의 불복종이나 탈영에 대해 비슷한 방식의 집단적 처벌이 시도되었으며, 이는 데키마티오의 개념이 군사 규율의 상징으로 오랜 기간 기억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