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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솔리두스는 로마 제국 후기에 처음 도입되어 동로마 제국을 거치는 동안 장기간에 걸쳐 사용된 고순도의 금화였다. 이 화폐는 기존의 아우레우스를 대체하기 위해 4세기 초에 새롭게 주조되었으며, 약 4.5g에 달하는 무게와 일정한 금 함량을 유지한 채 수 세기 동안 제국의 통화 체계를 뒷받침했다. 라틴어로는 ‘단단한’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그리스어에서는 ‘노미스마’, 곧 ‘화폐’라는 뜻으로 불렸다.

이 금화는 단순한 거래 수단을 넘어, 로마 세계의 조세와 군비 체계, 제국의 상업 활동 전반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였다. 특히 그 금 함량의 안정성은 국제 무역에서도 높은 신뢰를 받았고, 지중해 동서 지역을 연결하는 화폐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동로마 제국의 계승자들은 11세기까지도 이 금화를 고순도로 유지하고자 했으나, 제국의 재정 기반이 약화되면서 점차 금 함량이 감소하였다. 결국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 황제는 1092년에 솔리두스 주조를 중단하고, 이를 대신하는 히페르피론이라는 새로운 금화를 도입하였다. 이 히페르피론은 이후 서유럽 상인들 사이에서 ‘베잔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국제 상거래에 사용되었다.

솔리두스는 동로마 제국 외부의 문화권에도 영향을 끼쳤다. 동유럽의 키예프 루스에서는 이 금화를 바탕으로 ‘졸로트니크’라는 금 무게 단위를 만들었으며, 서아시아 지역의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7세기 말부터 이와 유사한 금화인 디나르를 주조하기 시작했다. 디나르는 초기에는 다소 낮은 금 순도를 보였으나, 전체적인 형식과 통화 가치는 솔리두스를 모범으로 삼았다.

한편, 서유럽에서는 로마 말기부터 중세 초기에 이르기까지 솔리두스가 금화로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통화로서의 기능 외에도, 솔리두스는 무게의 기준 단위로 활용되었으며, 로마 파운드의 72분의 1, 즉 약 4.5g에 해당하는 단위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무게 단위로서의 역할은 훗날 중세 유럽 각지의 금 측량 체계에까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솔리두스는 단순한 제국 화폐가 아닌,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다양한 정치체와 경제권에 영향을 준 구조적 화폐 체계의 원형으로 평가되며, 고대에서 중세로 이어지는 금화의 계보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자리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