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 개요[편집]
평민회는 로마 공화정의 네 가지 민회 중 하나로, 귀족 계층의 전횡에 맞서 플레브스의 권익을 보호하고 독자적인 정치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기원전 494년 성산 철수 사건을 계기로 성립되었으며, 이때 평민을 대표하는 호민관이 함께 제도화되었다. 평민회는 호민관이 주재하며, 법률 제정, 범죄자 기소, 호민관 및 평민 조영관 선출 등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초기에는 쿠리아 단위로 조직되었으나, 파트리키의 영향력을 배제하고자 기원전 471년부터 부족 단위로 개편되었고, 이를 통해 보다 독립적인 정치 활동이 가능해졌다. 기원전 287년 호르텐시우스 법의 제정으로, 평민회의 결의는 원로원의 승인 없이 전체 시민에게 적용되는 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는 플레브스의 정치적 지위 향상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후 신흥 유력 평민 가문인 노빌레스의 부상을 이끌었다.
그러나 공화정 말기에는 급진적 호민관들이 이 권한을 바탕으로 정치 개혁을 추진하며 원로원과 충돌하였고, 결국 술라에 의해 평민회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었다. 이후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이를 회복시켰지만, 제정 수립 후 아우구스투스가 종신 호민관 권한을 통해 평민회를 통제하면서 실질적 기능은 소멸되었다. 그의 뒤를 이은 티베리우스 황제 시기에는 평민회의 권한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며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초기에는 쿠리아 단위로 조직되었으나, 파트리키의 영향력을 배제하고자 기원전 471년부터 부족 단위로 개편되었고, 이를 통해 보다 독립적인 정치 활동이 가능해졌다. 기원전 287년 호르텐시우스 법의 제정으로, 평민회의 결의는 원로원의 승인 없이 전체 시민에게 적용되는 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는 플레브스의 정치적 지위 향상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후 신흥 유력 평민 가문인 노빌레스의 부상을 이끌었다.
그러나 공화정 말기에는 급진적 호민관들이 이 권한을 바탕으로 정치 개혁을 추진하며 원로원과 충돌하였고, 결국 술라에 의해 평민회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었다. 이후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이를 회복시켰지만, 제정 수립 후 아우구스투스가 종신 호민관 권한을 통해 평민회를 통제하면서 실질적 기능은 소멸되었다. 그의 뒤를 이은 티베리우스 황제 시기에는 평민회의 권한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며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