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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권한3. 정원과 임기4. 선출5. 역사
5.1. 공화정 시대5.2. 제정 시대
5.2.1. 동서 분할 이후
5.2.1.1. 서방5.2.1.2. 동방
5.3. 후대에 미친 영향
6. 기타

1. 개요[편집]

Consul

집정관은 로마 공화정 시대를 대표하는 관직으로, 로마 제정 시대까지 존속했다.

2. 권한[편집]

집정관은 2개 이상의 군단(레기온)을 지휘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임페리움(Imperium)을 보유했다.

3. 정원과 임기[편집]

집정관의 정원은 2명이었고 임기는 1년이었다.

공화정 시대에 로마의 영토가 크게 팽창하고 현직 집정관만으로는 전선을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은퇴한 집정관을 '대행집정관(Proconsul)'로 지명하여 비슷한 권한을 부여하기도 했다.

4. 선출[편집]

집정관은 재산에 따른 차등투표를 실시하는 켄투리아 민회(Comitia Centuriata)에서 선출되었다.

5. 역사[편집]

5.1. 공화정 시대[편집]

5.2. 제정 시대[편집]

로마 제국 시기에도 집정관은 존속했으나, 황제에 밀려 점점 실권을 잃어갔고, 황제들이 집정관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기도 했다.

5.2.1. 동서 분할 이후[편집]

5.2.1.1. 서방[편집]
로마가 동서로 분할된 시기에도 집정관은 존속했고[1], 심지어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존속하여 동고트 왕국의 군주 및 귀족들이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이 동고트 왕국을 정벌한 이후부터는 더이상 로마 제국 서부의 집정관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5.2.1.2. 동방[편집]
동로마 제국에서도 명목상의 집정관 선출은 지속되었으나, 이후에는 그냥 황제가 자동으로 겸임하는 명예직 중 하나가 되었고, 9세기 마케도니아 왕조의 레온 6세 시대에 비로소 폐지되었다.

5.3. 후대에 미친 영향[편집]

로마 문명이 사라진 이후에도 유럽인들이 로마에 대해 가진 향수는 컸고, 일부 공화국에서 집정관직이 사용되었다.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로 집권한 나폴레옹이 Consul 직위를 부활시켜 이른바 집정정부(통령정부)를 형성하여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까지 사용했고, 당시 프랑스 제1공화국의 몇몇 괴뢰국에도 해당 직위가 사용되었댜.

오늘날 산마리노 공화국의 국가원수 직위도 정원이 2명이고 임기가 일반적인 대통령직보다 짧아서[2] 집정관으로 번역되긴 하는데, 원어(이탈리아어) 명칭은 로마의 집정관과 차이가 있다.

6. 기타[편집]

고대 아테네의 아르콘도 집정관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로마 집정관과 혼동될 우려 때문인지 그냥 그리스어 명칭 그대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외교관 직급 중 하나로 쓰이는 영사는 영문 표기상으로는 Consul이지만, 대사나 공사보다 급이 낮은 직위라 본문에서 다루는 집정관과는 위상 차이가 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신인 한성정부의 집정관총재[3], 중화민국 북양정부의 임시집정[4], 만주국의 집정[5]도 한자 표기상으로는 비슷하긴 하지만 본문의 집정관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1] 당대의 인식상으로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로마 제국이고, 단지 황제들끼리 영역을 나눈 것에 불과했다.[2] 6개월이라 로마 집정관보다도 짧다.[3] 이승만이 역임했다.[4] 돤치루이가 역임했다.[5]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