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분류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의미의 집정관에 대한 내용은 집정관(동음이의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 펼치기 · 접기 ]
체제
역사
분할국
잔존국
상징
정치
법률
군사
행정구역
종교
문화
문헌
건축
경제
외교
정체성
창작물
[ 펼치기 · 접기 ]
황제
Imperator Caesar Augustus
고위 관직
Magistratus
평민 관직
Magistratus Plebis
속주 총독
Rector Provinciae
원로원 속주 총독[A]
Proconsul
황제 속주 총독
Legatus Augusti pro Praetor
황제 속주 행정관
Procurator
원로원 속주 총독[B]
Proconsul
임페리움(군사 지휘권)을 가진 관직
평민이 취임할 수 있는 관직
밑줄
민회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관직
[A]
아시아와 아프리카 속주에는 전직 집정관이 파견됨.
[B]
이 속주들에는 전직 법무관이 파견됨. 그러나 호칭은 여전히 프로콘술.
1. 개요2. 어원3. 권한4. 정원과 임기5. 선출6. 역사
6.1. 공화정 시대6.2. 제정 시대
6.2.1. 동서 분할 이후
6.2.1.1. 서방6.2.1.2. 동방
6.3. 후대에 미친 영향
7. 기타

1. 개요[편집]

Consul

집정관은 고대 로마 공화정 체제에서 최고 통치 권한을 지닌 두 명의 정무관으로, 공화정 초기부터 제정 초기까지 약 500년 동안 로마 국가 운영의 중심을 담당하였다. 원래 로마 왕정의 왕권을 대체하기 위해 도입된 이 관직은 한 해 임기의 두 명이 동시에 재직하며 상호 견제와 협력 속에서 권력을 분점하는 구조였다. 이 제도는 권력 집중을 방지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하였으며, 원로원의 승인 아래 민회에서 선출되었다.

집정관의 임무는 광범위하였으며, 행정, 입법, 군사, 외교 등 로마 국가 운영 전반을 포괄하였다. 이들은 원로원 회의를 주재하고, 민회를 소집하며, 집행 명령을 내릴 권한을 가졌고, 특히 전쟁 시에는 군 최고사령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평시에는 사법권을 보유한 하급 관직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비상시에는 광범위한 독자적 권한을 행사하였다.

초기에는 귀족 계층인 파트리키만이 집정관에 선출될 수 있었으나, 점차 평민층인 플레브스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면서 기원전 4세기경부터는 평민 집정관도 선출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두 집정관 중 한 명은 평민 출신이 되는 전통이 자리 잡게 되었다.

집정관은 통상적인 임기 종료 후 원로원 의원직을 자동적으로 부여받았으며, 특히 공화정 후기에는 전직 집정관이 각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광대한 속주를 통치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집정관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치·군사 권력을 가진 최고 관직으로서, 로마 공화정 체제의 중심에 있었다.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시작된 내전과 권력 다툼 속에서 집정관 제도의 권위는 점차 약화되었으며,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원로원과 집정관직의 권한이 제국 황제로 집중되면서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이후에도 집정관은 제정기 내내 존속하였으나, 그 역할은 형식적인 명예직으로 전락하였다. 제정 후기에는 집정관에 오르는 것이 귀족 가문 출신 청년들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하나의 의례로 기능하였으며, 동로마 제국에서는 6세기 말까지 명맥이 유지되었다.

집정관은 로마 공화정의 정치 이념, 특히 권력 분산과 견제, 공공선에 대한 헌신이라는 원칙을 상징하는 제도로 평가받는다. 오늘날에도 서구 정치문화와 법제사 속에서 이 제도는 고대 공화정의 대표적 유산으로 자주 언급된다.

2. 어원[편집]

집정관이라는 표현은 고대 로마의 최고 행정 관직이었던 'consul'을 번역한 말이다. 이 단어는 라틴어 consulere에서 유래하며, 이는 '상의하다', '협의하다', 또는 '공동으로 숙고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본래 이 어근은 정치적 결정과 행정 집행에서 공동의 협의와 판단을 중요시하던 로마의 통치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consul이라는 명칭은 단순한 명령자가 아니라, 시민 공동체의 대표로서 공동의 이익을 위한 숙의와 조정을 수행하는 자를 의미하였다.

기원전 왕정이 폐지된 뒤 성립한 로마 공화정 체제는 단독 군주에 의한 권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1년 임기의 두 집정관을 선출하여 국가의 최고 행정과 군사 권한을 공동으로 수행하게 하였다. 이 제도는 권력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제도화한 것으로, consul이라는 단어가 공동 협의를 뜻하는 어원을 갖고 있는 점에서 그 정신이 드러난다.

이 관직의 명칭이 한자어 '집정관'으로 번역된 것은 주로 근대 이후 동아시아에서 서양 제도를 번역할 때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서 '집정'은 '정사를 맡다' 또는 '정치를 집행하다'는 뜻을 지니며, 관(官)은 직책을 의미하므로, 집정관은 '국가의 정사를 맡는 고위 관직'이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이러한 번역은 고유한 문화적 언어 체계 내에서 로마의 정치 제도를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요약하면, 집정관의 어원은 '공동 숙의'를 뜻하는 라틴어 consulere에서 비롯되었으며, 로마 공화정 체제의 권력 분산과 협의 통치 원칙을 반영한다. 이후 동양 문화권에서 이를 '집정관'으로 번역하면서, 행정과 권력 행사를 담당하는 고위 공직자의 의미로 수용되었다.

3. 권한[편집]

집정관은 2개 이상의 군단(레기온)을 지휘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임페리움(Imperium)을 보유했다.

4. 정원과 임기[편집]

집정관의 정원은 2명이었고 임기는 1년이었다.

공화정 시대에 로마의 영토가 크게 팽창하고 현직 집정관만으로는 전선을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은퇴한 집정관을 '대행집정관(Proconsul)'로 지명하여 비슷한 권한을 부여하기도 했다.

5. 선출[편집]

집정관은 재산에 따른 차등투표를 실시하는 켄투리아 민회(Comitia Centuriata)에서 선출되었다.

6. 역사[편집]

6.1. 공화정 시대[편집]

6.2. 제정 시대[편집]

로마 제국 시기에도 집정관은 존속했으나, 황제에 밀려 점점 실권을 잃어갔고, 황제들이 집정관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기도 했다.

6.2.1. 동서 분할 이후[편집]

6.2.1.1. 서방[편집]
로마가 동서로 분할된 시기에도 집정관은 존속했고[1], 심지어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존속하여 동고트 왕국의 군주 및 귀족들이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이 동고트 왕국을 정벌한 이후부터는 더이상 로마 제국 서부의 집정관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6.2.1.2. 동방[편집]
동로마 제국에서도 명목상의 집정관 선출은 지속되었으나, 이후에는 그냥 황제가 자동으로 겸임하는 명예직 중 하나가 되었고, 9세기 마케도니아 왕조의 레온 6세 시대에 비로소 폐지되었다.

6.3. 후대에 미친 영향[편집]

로마 문명이 사라진 이후에도 유럽인들이 로마에 대해 가진 향수는 컸고, 일부 공화국에서 집정관직이 사용되었다.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로 집권한 나폴레옹이 Consul 직위를 부활시켜 이른바 집정정부(통령정부)를 형성하여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까지 사용했고, 당시 프랑스 제1공화국의 몇몇 괴뢰국에도 해당 직위가 사용되었댜.

오늘날 산마리노 공화국의 국가원수 직위도 정원이 2명이고 임기가 일반적인 대통령직보다 짧아서[2] 집정관으로 번역되긴 하는데, 원어(이탈리아어) 명칭[3]은 로마의 집정관과 차이가 있다.

7. 기타[편집]

고대 아테네의 아르콘도 집정관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로마 집정관과 혼동될 우려 때문인지 그냥 그리스어 명칭 그대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외교관 직급 중 하나로 쓰이는 영사는 영문 표기상으로는 Consul이지만, 대사나 공사보다 급이 낮은 직위라 본문에서 다루는 집정관과는 위상 차이가 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신인 한성정부의 집정관총재[4], 중화민국 북양정부의 임시집정[5], 만주국의 집정[6]도 한자 표기상으로는 비슷하긴 하지만 본문의 집정관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1] 당대의 인식상으로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로마 제국이고, 단지 황제들끼리 영역을 나눈 것에 불과했다.[2] 6개월이라 로마 집정관보다도 짧다.[3] Cappitani reggenti.[4] 이승만이 역임했다.[5] 돤치루이가 역임했다.[6]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