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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아리우스파는 4세기 고대 기독교에서 삼위일체 교리에 반대하며 독자적인 신학 체계를 전개한 교파로, 그 명칭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성직자 아리우스에서 유래하였다. 이들은 성부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신이며, 성자와 성령은 창조된 존재로서 신성과 본질 면에서 성부와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통으로 선언된 삼위일체 교리와 충돌하면서, 기독교 세계에 오랜 분열과 논쟁을 불러왔다.

아리우스파는 성경의 일부 구절을 근거로, 성자는 시간 안에서 창조되었으며 성부에 종속된 지위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만일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본질이라면 이는 유일신 사상에 위배되며, 결과적으로 다신론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여겼다. 아리우스는 이와 같은 견해가 성경 해석뿐 아니라 논리학적으로도 정당하다고 보았고, 삼위일체론이 이성에 어긋난다고 비판하였다.

반면 니케아 공의회는 성부와 성자는 '동일한 본질'이라는 신조를 채택하며, 아리우스파의 교리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이후에도 양측의 대립은 지속되었고,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다시 정통으로 확립되면서 아리우스파에 대한 배척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 시기의 교리 논쟁은 단순한 신학적 충돌을 넘어서 제국의 정치권력과 깊이 얽혀 있었으며, 황제의 지지에 따라 교파의 부침이 결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리우스파에 속한 집단은 단일하지 않았고, 이후 다양한 삼위일체 이론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일부 집단은 아리우스의 주장을 계승하여 성자와 성부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보았으나, 다른 이들은 성부와 성자의 '유사성'만을 강조하는 온건한 입장을 취하였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호모이오스파'로 불리며, 성자와 성부의 본질이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단정하지 않으면서 기존 교리 양측을 모두 비판하였다.

이처럼 아리우스파라는 명칭은 실제로는 다양한 신학적 흐름을 아우르는 넓은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후대에는 '비니카이아적' 교리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싸움의 언어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오용을 지양하고, 아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초기 집단만을 아리우스파로 한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4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 '헤테로우시아파'는 성부와 성자 사이에 본질적 유사성조차 없다고 보았으나, 이는 아리우스의 초기 주장과는 구별되는 독립된 흐름으로 이해되고 있다.

아리우스파는 4세기 말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제국 차원에서의 정통 교리 확립과 함께 점차 소멸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사상은 고대 교회가 교리의 경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자극을 주었으며, 기독교 신학 내에서 성서 해석과 이성, 권위와 논리 사이의 긴장 관계를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