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 개요[편집]
쿠리아 민회는 고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민회로, 초기에는 왕이 소집하여 자문을 구하거나 정책을 추인받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로마가 세 부족으로 나뉘었을 때 각 부족은 열 개의 쿠리아로 조직되었고, 각 쿠리아에서 선출된 대표들이 민회를 구성하였다. 왕정 시대에는 국왕의 제안에 대한 찬반 결정, 새 왕의 승인, 사제단 선출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였다.
공화정 수립 후 쿠리아 민회는 집정관 선출, 임페리움 부여, 법률 승인, 사형 선고에 대한 항소 수용 등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그 권한은 점차 다른 민회로 이전되었다. 특히 파트리키만 투표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점차 권한이 약화되었고, 후에는 귀족의 유언장 집행과 입양 추인 등 상징적인 역할만 수행하였다.
기원전 3세기 후반부터는 쿠리아 대표 대신 릭토르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유언을 승인한 것이 마지막 주요 활동 중 하나였다. 제정 시대 이후 쿠리아 민회는 열리지 않게 되었으며, 관련 권한은 황제에게 이관되었다.
공화정 수립 후 쿠리아 민회는 집정관 선출, 임페리움 부여, 법률 승인, 사형 선고에 대한 항소 수용 등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그 권한은 점차 다른 민회로 이전되었다. 특히 파트리키만 투표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점차 권한이 약화되었고, 후에는 귀족의 유언장 집행과 입양 추인 등 상징적인 역할만 수행하였다.
기원전 3세기 후반부터는 쿠리아 대표 대신 릭토르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유언을 승인한 것이 마지막 주요 활동 중 하나였다. 제정 시대 이후 쿠리아 민회는 열리지 않게 되었으며, 관련 권한은 황제에게 이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