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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종파별 총대주교
2.1. 알렉산드리아 교황(콥트 정교회)2.2. 알렉산드리아 교황(정교회)2.3.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가톨릭)
2.3.1. 알렉산드리아 라틴 총대주교2.3.2.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콥트 가톨릭)

1. 개요[편집]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는 기독교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수장직 가운데 하나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교회의 최고 지도자를 의미한다. 이 직위는 단순한 지역 감독직을 넘어, 교리 해석과 신학 권위, 제의 권한에 있어 로마와 안티오키아의 주교좌와 함께 고대 교회 질서의 핵심 축을 형성하였다.

초기 교회 시기 알렉산드리아는 그 지리적 위치와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라는 특성에 힘입어, 교리 논쟁과 성경 주석, 수도원 제도의 발전에 깊이 관여하였다. 이 지역의 감독은 시간이 흐르며 사실상 대주교와 같은 위상을 획득하게 되었고, 특히 이집트 전역의 감독직을 관할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회법으로 명문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리비아, 펜타폴리스 지역의 교회 행정을 총괄하는 감독좌로 확정되었다.

6세기에 들어,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한 다섯 개의 주요 주교좌에 ‘총대주교’라는 공식 칭호가 부여되었으며, 이로써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안티오키아, 예루살렘과 함께 펜타르키 체계의 일원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명예직이 아닌, 교회 내에서 권위와 독립성을 동시에 지닌 행정·교리 중심의 구조였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가 여러 교리 논쟁과 정치적 분열을 겪으며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직 역시 분화되었다. 칼케돈 공의회를 둘러싼 분열 이후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콥트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로 나뉘게 되었고, 이후 로마 가톨릭의 명목상 관할까지 더해지며 총대주교직은 종파별로 다수화되었다.

각 교회는 자국 또는 자파 전통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총대주교를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초대 감독이자 순교자인 마르코를 계승한 인물로 이해한다.

이러한 경쟁에서 보듯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직은 단지 교구 단위의 행정권한을 넘어, 고대 기독교의 형성과 분열, 교회 정통성 논쟁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해왔다. 또한 이 직책은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가 가진 고대 지성의 중심지로서의 전통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도 다양한 교파의 구조 속에서 그 상징성과 제도적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2. 종파별 총대주교[편집]

2.1. 알렉산드리아 교황(콥트 정교회)[편집]

2.2. 알렉산드리아 교황(정교회)[편집]

2.3.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가톨릭)[편집]

2.3.1. 알렉산드리아 라틴 총대주교[폐지][편집]

2.3.2.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콥트 가톨릭)[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