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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로마 제국 계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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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 독일어: Zweikaiserproblem
  • 영어: Problem of two emperors

동시대에 2개 제국의 군주가 로마 황제를 칭해서 불거진 외교 문제를 가리키는 용어.

왠만해선 자존심 싸움 또는 키배(...) 정도로 그치고 상대국이 국내에서 해당 칭호를 쓰는 것까진 관대하게 넘어가주는 경우가 많았으나, 진지하게 전쟁까지 불사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2. 역사[편집]

2.1. 중세[편집]

이 시기의 두 황제 문제는 대부분 동로마 제국과 그에 맞서 황제를 자칭한 제국들 간에 불거졌다.

2.1.1. 동로마 제국 VS 카롤루스 제국/신성 로마 제국[편집]

800년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가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아 로마 제국을 선포하면서 시작된 동로마 제국카롤루스 제국 - 신성 로마 제국의 분쟁으로, 다른 설명 없이 그냥 두 황제 문제라 하면 동로마-신성 로마 분쟁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2.1.2. 동로마 제국 VS 불가리아 제국[편집]

불가리아 제1제국의 시메온 1세가 불가리아인과 로마인의 차르를 칭하면서 시작된 동로마 제국과 불가리아 제1, 제2 제국의 분쟁이다.

2.1.3. 동로마 제국(니케아 제국) VS 라틴 제국[편집]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한 이후, 동로마 유민들이 건국한 니케아 제국과 십자군 국가 라틴 제국의 분쟁이다.

동시대에 동로마인이 세운 국가로는 트라페준타 제국,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테살로니키 제국도 있었기에 엄밀히 말하면 두 황제만 경쟁한 게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동로마계 국가들은 모두 탈락하고 니케아 제국만이 라틴 제국을 타도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승자가 되었다.

2.1.4. 동로마 제국 VS 세르비아 제국[편집]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이 세르비아인과 로마인의 차르를 칭하면서 시작된 동로마 제국세르비아 제국의 분쟁이다.

2.2. 근세[편집]

1453년 동로마 제국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두 황제 문제의 양상도 바꼈는데, 동로마 계승을 주장한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서로마 계승을 주장한 신성 로마 제국의 분쟁, 그리고 동시에 동로마 계승을 외친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분쟁이라는 세 황제 문제3가지 구도로 전개되었다.

2.2.1. 오스만 제국 VS 신성 로마 제국[편집]

2.2.2. 오스만 제국 VS 러시아 제국[편집]

2.2.3. 신성 로마 제국 VS 러시아 제국[편집]

2.3. 나폴레옹의 칭제와 그 이후[편집]

1804년 나폴레옹이 교황을 파리로 끌고 와서 황제 대관식을 치르면서 가톨릭 세계에는 오직 신성 로마 제국 하나만이 로마 제국으로서 존재한다는 기존의 가톨릭 세계관이 무너졌고, 뒤이어 신성 로마 황제위를 사실상 독점하던 합스부르크 가문마저 기존의 제국과 별도로 오스트리아 제국을 수립하면서 로마 제국 계승론에 기반한 전통적 황위 계승 논리, 그리고 그로 인해 불거진 두 황제 문제 역시 사실상 종식되었다.

물론 나폴레옹도 카롤루스 대제-위그 카페-나폴레옹으로 이어지는 계승론을 주장해서 어거지로나마 로마에서 정통성을 가져왔고, 오스트리아 황제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2세 본인이었으니, 로마 계승과 황제 칭호의 연관성이 완전히 부정된 건 아니었지만 이전에 비하면 황제를 칭하기 위해 필요한 정통성과 대내외적 요건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는 19세기 유럽 각국이 황제를 칭하는 황제 인플레 현상을 야기했다.

3. 관련 문서[편집]